미국 자본주의의 통찰 I - 칼라일
댄 브리어디 지음, 이종천 옮김 / 황금부엉이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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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에 한 회사가 탄생합니다. 당시 회사의 창업자들은 품격있는 회사 이름을 짓고 싶었고, 창업자들이 자주 만나던 칼라일호텔에서 회사의 이름을 정합니다. 이 신생회사 칼라일은, 15년도 안되어 백악관보다 더 많은 정치적 커넥션을 자랑하고, 130억달러를 굴리는 세계에서 가장 위력적이고 성공적인 사모투자회사가 됩니다. 하지만 그 성공비결은 세계적 히트상품이나 기술혁신 등이 아닌 연고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칼라일은 그 강력한 인맥을 바탕으로 특별하고 독특한 투자 스타일을 가지게 되었는데, 방위산업이나 통신, 에너지, 헬스케어처럼 당국의 규제가 까다로운 분야에 오히려 포커스를 맞추고 정부예산이나 정책 트렌드를 예측하여 베팅합니다. 이 방식은 칼라일이 정부에 많은 영향력을 가지고 있기에 가능한 방식입니다. 이렇게 성장한 칼라일은 1961년 아이젠하워가 경고했던 군산복합체의 모습을 지니고 있습니다.

칼라일의 시작은 정부의 특별세제에 생긴 구멍으로 시작됩니다. 당시 알래스카의 상원의원 테드 스티븐스가 내놓은 이 아이디어는 파국에 직면한 알래스카 기업들의 손실을 세금감면을 원하는 다른 기업들에게 판다는 아이디어였습니다. 가령 1천만달러의 손실을 본 알래스카 회사의 적자를, 이익이 너무 많아 막대한 세금을 물어야 하는 다른 기업에 700만달러에 되파는 것입니다. 그러면 손실을 구입한 회사는 1천만달러의 세액공제를 받는 아이디어였습니다. 정부를 제외하고 모든 사람들이 돈을 버는 이 아이디어에 칼라일은 돈 냄새를 맡았고, 10억달러의 이익을 만들어냅니다. 칼라일은 이 자본금으로 사모투자회사의 길로 접어드는데 초기엔 그렇게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합니다. 당시 강력한 라이벌 투자회사들이 많았고, 호된 신고식을 치르기도 합니다. 하지만 칼라일은 하나의 진리를 놓치지 않았는데, 고급 금융의 세계에서 성공하려면 정치적 족보와 영향력 있는 친구들이 많이 필요하다는 것이였습니다. 이는 설령 투자가 크게 실패하더라도 지속되었는데, 칼라일 경력에 커다란 오점으로 남은 인플라이트 에어라인의 기내식 사업 사건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칼라일은 큰 돈을 잃었지만, W라고 알려진 젊은 텍사스인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그는 훗날 미국 대통령이 되는 조지 W 부시였습니다.

이런 안면자본주의(Access Capitalism)의 대가였던 칼라일이 끌어들인 명사들은 누가 들어도 알만큼 유명한 인물들이었습니다. 닉슨 대통령의 인사담당관이었던 프레데릭 말렉, 대통령 조지W부시, 그의 아버지이자 대통령인 조지H부시, 국방장관 프랭크 칼루치, 국무장관 제임스 베이커, 예산관리국장 리차드 다르맨, 세계적인 투자 전문가 조지 소로스, 영국수상 존 메이저, 한국의 국무총리 박태준, 필리핀의 피델 라모스 대통령, 태국총리 아난드 파냐라춘, 오사마 빈 라덴 가문, 국방장관 도널드 럼스펠드, 해군 군납업체 선정을 담당하던 멜빈 파이슬리, 사우디아라비아의 억만장자 알왈리드 빈 탈랄 빈 압둘 아지즈 알 사우드 왕자, 사우디아라비아의 파드 국왕, 사우디아라비아의 국방상 술탄 빈 압둘아지즈 등이 있습니다. 이런 엄청난 인맥을 바탕으로 칼라일은 승승장구하게 됩니다. 칼라일은 1991년 미국의 최대은행이었던 씨티코프의 위기를 아랍왕자와의 인맥을 연결해 구해줌으로서 일약 신문의 1면을 장식하게 됩니다. 칼라일은 주로 기업의 인수와 매도를 통해 성장했는데, 이런 과정엔 칼라일 그룹과 한국 한미은행의 일도 있었습니다.

전통적인 사모투자회사로서도 승승장구한 칼라일이였지만, 칼라일이 가장 잘 할수 있는 분야는 바로 방산산업이었습니다. 사우디 왕가와의 인맥으로 미국의 중동군사전략에 있어서 칼라일은 빼놓을 수 없는 위치가 되었고, 미국 군대와 정부에 가진 인맥들은 칼라일의 방산산업 투자에 날개를 달아줍니다. 이런 칼라일의 투자는 때론 실패할뻔한 투자를 할 때도 있었는데, 그것은 미 육군이 구상해온 최첨단의 차세대 거포, 크루세이더 였습니다. 칼라일은 이 거포를 만든 유나이티드 디펜스를 인수했는데, 인수 몇개월만에 이 거포가 시대에 뒤떨어진 무기라는 평가가 떨어졌습니다. 모든 군사전문가들이 이 무기를 혹평했고, 칼라일은 200억달러에 달하는 계약을 잃을 위기에 놓였습니다. 크루세이더는 곧 쓰레기 하치장으로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칼라일그룹이 나서자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칼라일의 장기, 정부-군-방산업체로 이루어지는 철의 삼각지대(Iron Triangle:책의 제목)를 작동한 것입니다. 칼라일의 로비는 상하원을 막론하고 아낌없이 투자되었고, 크루세이더의 폐기는 계속 미루어졌습니다. 그리고 결국 운명의 9월 11일. 그 날을 계기로 군사예산은 대폭 증액되었고, 크루세이더 역시 추가예산을 받아 칼라일은 손해를 보지 않고 되팔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어떤 의도에서건 군산복합체가 정부협의체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잘못 주어진 권력은 파국으로 치달을 수 있으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우리는 이 부당한 유착관계로부터 파생된 권력이 우리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협하도록 방치해서는 안된다. - 아이젠하워 

이런 칼라일의 모습은 우리에게 퇴직 관료가 특정 기업의 이해를 위해 일하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칼라일의 구조는 대단히 치밀합니다. 칼라일은 굳이 로비스트를 따로 고용할 필요도 없습니다. 전직 대통령인 아버지 부시가 현직 대통령인 아들 부시에게 조언하는것이 로비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말하기 힘든게 사실입니다. 드러나지 않을뿐더러 드러난다고 해도 법적으로 문제 삼기 어려운 부분이 많습니다. 끊임없는 논란과 구설수 속에서도 칼라일 그룹이 별다른 위기를 겪지 않고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모순적인 상황은 바로 미국의 딜레마이기도 합니다. 주로 미국의 서민층이 가입하고 있는 미국 최대의 연기금 펀드인 캘퍼스(Calpers)도 칼라일의 주요 투자자 중 하나인데, 이는 곧 미국 시민들이 안고 있는 욕망과 양심의 딜레마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칼라일의 이야기는 남의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칼라일이 우리나라의 은행과 관련해 큰 이익을 남기고 갔을때 일어난 이해하기 힘든 금감위의 결정에 칼라일, 그리고 칼라일과 유사한 형태의 인맥자본주의 회사인 김앤장 법률사무소와 법무법인 세종이 있었습니다. 김앤장엔 이헌재 전 부총리를 비롯 최경원 전 법무부 장관, 박정규 전 청와대 민정수석 등 수많은 정부,검찰인사들이 포진되어 있습니다. 이런 기업들의 영향력은 실로 막강해 멀쩡한 은행이 부실은행으로 둔갑해 헐값에 팔려나갈지라도 법적으론 아무 문제도 없고 통제할 방법이 없습니다. 저자는 책을 통해 이제야 본 궤도에 오른 이 칼라일이라는 회사를 통해 이런 안면자본주의 회사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사회가 어떻게 대응해 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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