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경제 - 금융위기와 한국경제
유종일 지음 / 생각의나무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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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의 튤립버블, 영국의 남해회사버블, 프랑스의 미시시피회사 버블, 일본의 부동산버블, 미국의 닷컴버블 등의 역사는 금융위기가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항상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제도와 정책이 변화하고, 그에 따라 금융위기의 빈도와 양상도 달라졌는데, 외환위기의 경우 꾸준히 점증해온 반면, 은행위기는 1945년을 기점으로 해서 거의 사라졌다가 1973년부터 다시 증가했습니다. 금융자유화는 자유화에 따른 효율성 증대라는 장점과 동시에 존 윌리엄슨이 지적하듯이 거의 예외 없이 크고 작은 금융위기를 야기한 단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가장 최근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건은 1996년의 감독규제 완화법, 1999년의 은행개혁법 등의 주요한 금융규제 완화 법령뿐만 아니라 2004년 증권거래위원회가 통합감독프로그램을 마련해 총부채가 순자본의 15배 이내여야 한다는 규제를 철폐함으로서 투자은행들이 수익추구를 위해 위험을 크게 확대시킨 것이 서브프라임의 폭탄으로 작용했습니다. 결국 금융위기의 원인도, 해법도 정치에 있기 때문에, 경제이론만 봐서는 현실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금융위기는 자산 버블과 유동성 버블로부터 비롯됩니다. 닷컴 버블 이후 미국은 경기침체에 대응하기 위해 초 저금리를 장기간 유지함으로써 거품발생의 토양을 마련했고, 부시 행정부는 부유층을 위한 감세와 규제완화라는 경기부양을 시도합니다. 또한 정치적, 사회적으로 저소득층에게 주택소유를 권장함으로서 모기지 시장에 편법과 대출을 조장합니다. 주택담보대출로 인한 부동산거품, 이라크전쟁으로 인한 감세정책과 재정적자, 집값이 오르는 것을 이용해 소비에 열중하는 소비자는 결국 달러화 하락과 인플레를 불러왔고 이자율을 인상하면서 버블이 붕괴되어 버립니다. 본래 금융기관은 저축과 투자를 연결시켜주는 중개기능과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기능을 가지는데, 1980년대 이후의 금융주도 자본주의는 재테크와 투기에 열중했고, 민간부문 고용비중으로 5%밖에 안되는 금융산업이 전체 이익의 40%를 차지하는 고수익 시장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고수익에는 고위험이 뒤따릅니다. 전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들이 모인다는 월스트리트의 금융가들이 원래는 위험을 통제하기 위해 발전한 금융의 증권화와 파생상품의 발달을 위험을 증폭하는 기제로 만들어버린 것은, 결국 탐욕이 앞서면 판단력이 흐려진다는 진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미국의 금융위기는 우리나라에도 영향을 미침으로써 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점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한국경제는 IMF위기 이후 10년간 지속적인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했고, 세계 수준급의 외환보유고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흔들리는 이유는 구조적으로 취약하기 때문입니다. 대외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아서 외부충격에 매우 약하고, 식량자급도 또한 낮아서 심각한 사태를 불러올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한국경제의 재벌중심경제가 가져온 양극화구조는 대기업의 정규직 고용 축소, 생산성격차, 비정규직의 확대 등은 인적자원에 대한 투자를 왜곡시켜 성장잠재력을 훼손하고, 사회갈등을 조장하여 위기극복의 원천인 국민적 단결을 저해합니다. 또한 양극화는 소비성향이 높은 저소득계층의 소득비중을 줄이기 때문에 내수부진을 초래하고, 이는 대외의존과 부채의존을 초래함으로써 구조적 문제를 가속화시킵니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과거에 비해선 대기업과 은행의 재무구조가 건전화되고 기업지배구조가 개선된 부분도 있지만, 한계 또한 뚜렷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여전히 시장만능주의적 사고와 성장지상주의적 정책마인드는 성장을 위해 분배와 안정을 희생시키고 있습니다. 하지만 분배와 안정이 훼손되면 결국 성장에도 타격을 줍니다.

현실적으로 극심한 소득 불균형은 극심한 사회 불평등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그리고 사회 불평등은 단순히 부러움과 수치심 문제가 아니다. 이는 국민들의 생활방식에 실제로 부정적인 영향을 가져온다. 중산층 가정이 자녀를 좋은 학교에 보내기 위해 실제 형편보다 무리해서 집을 사고, 능력보다 많은 빚을 지는것은 큰 문제다. 불균형이 심해지면서 일류 학군들은 줄고 있으며, 집값은 점점 더 오르는 추세다. 이들 중산층은 욕심이 많거나 멍청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자녀에게 점점 더 불평등해지는 사회에서 기회를 마련해 주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빚을 지게 된 것이다. - 폴 크루그먼 

세계적으로 민주화는 대체로 실질임금의 상승과 복지의 확대를 낳고, 이에 따라 소득분배가 개선되고 대다수 서민들의 삶이 나아진다는 것이 일반적인 경험이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민주화 이후에 오히려 양극화가 계속 심화되고 고용구조가 악화됨에 따라 민주화의 영향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이어졌습니다. 결국 시장경제 또한 민주적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오늘날 선진국은 예외없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시행하고 있지만,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반드시 함께 발전하지는 않습니다. 러시아, 중국, 한국, 베트남처럼 독재와 관치경제가 발전하는가 하면, 홍콩, 싱가포르처럼 독재적이거나 권위적인 정부가 자유로운 시장경제를 펼치기도 합니다. 또한 시장경제가 발전해야 민주주의가 발전한다는 일반적인 시각과 달리 칠레의 경우는 시장경제 후에 민주적으로 사회주의 정권이 탄생하기도 합니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양자 간에는 일정한 긴장관계가 존재합니다. 민주주의에서는 평등이 근본적인 이념인 반면에 시장경제는 불평등을 수용해야 잘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가 경제성장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는 논란이 있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경제민주화는 경제성장에 매우 커다란 도움이 되었습니다. 부분적으로는 민주주의의 발전이 경제정책의 과잉정치화를 초래해 지나친 분배 요구나 각종 비효율적 규제를 낳아 자본축적을 저해하고 경제의 효율성을 감소시키는 경우도 있었지만, 민주주의는 대체로 자기수정 능력을 보여주었을 뿐만 아니라 경제성장에 큰 기여를 합니다. 재산권과 인권을 보호하고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을 보장하는 것은 효율적인 자원배분의 전제조건이며, 경제주체들에게 의욕을 불러일으킵니다. 또한 잠재적으로 저소득층의 인적자본 투자를 실현시켜 보육, 교육훈련 등의 사회적인 제공 및 인적자원의 질을 향상시켜 경제성장에 기여할 수 있게 합니다. 또한 소득분배의 평등화는 소비수요를 안정시킴으로써 경제성장에 크게 도움을 주는 것으로 평가됩니다.

정치적 민주화는 이루었지만, 박정희시절부터 지속되어온 정부주도형 경제개발정책과 재벌육성은 경제의 불안정성과 불균형 발전이라는 문제점을 낳았으며, 결국 당시에 구축된 성장시스템은 지속불가능한 것이였고 이는 IMF위기를 불러오게 됩니다. 인권과 재산권의 보호 등은 개선되었지만, 재벌총수들의 대형 경제범죄에 법원은 관대한 판결을 내리는 등 법치주의는 아직 미흡한 상황이며, 외환위기 이후에 시장자유화는 크게 진전됬지만 여전히 관치의 행태는 남아있습니다. 출자총액제한제도 완화와 금산분리 완화 등은 기업지배구조가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저자는 현재 한국이 급속환 산업화, 정치민주화까지는 이루었지만 경제민주화가 시작되는 단계에서 구조적, 정치적 요인들로 인해 진척이 더디며 오히려 후퇴하는 경향마저 보인다고 지적합니다. 진정으로 성장잠재력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경제민주화가 필요하며 이는 시장 자체를 배격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의 독재를 거부하는 것이며 공정한 시장이 가져오는 효율성과 정당성을 최대한 수용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 바탕 위에서만이 민주적 평등의 이념을 확장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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