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 없는 세상을 위하여
무하마드 유누스 지음, 김태훈 옮김 / 물푸레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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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도상국에 가보면 어느 도시에나 길모퉁이마다 채소와 과일을 파는 노점이 즐비합니다. 이러한 노점을 운영하는 사람은 대부분 여성으로 이들은 작은 손수레나 방수포 위에 토마토, 양파 등을 올려놓고 판매합니다. 이들은 보통 새벽에 도매업자에게 외상으로 물건을 받아와 저녁까지 팔고 그 돈으로 외상을 갚는 식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선진국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사업을 합니다. 가난한 노점상이 부유한 사업가와 다른 점이 있다면 갚아야 할 돈의 규모입니다. 그리고 그 규모의 차이는 이자와 큰 연관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상식적으로는 많은 돈을 빌릴수록 이자율이 높을 것 같지만, 사실은 그 반대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빌리는 돈의 이율은 매우 높습니다.

이처럼 높은 이율 때문에 탄생한 것이 바로 소액금융기관입니다. 인도 최대의 소액금융기관 스판다나의 대표 파드마자 레디가 스판다나를 창립한 사연을 들어보면 소액금융기관의 의의를 알 수 있습니다. 매일 일하지만 이자를 해결하느라 재산을 모을 수 없었던 넝마주이에게 손수레를 살 돈을 빌려주자 몇 주만에 손수레 수십 개를 살 돈을 모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넝마주이는 빈곤의 덫에 걸려 있었습니다. 하지만 은행은 가난한 사람에겐 돈을 빌려주지 않고, 사채업자의 돈을 쓰자니 이자가 너무 높았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소액금융은 굉장히 단순한 아이디어입니다. 가난한 사람에게 그들이 경제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이자를 물려도 적잖은 이윤을 올릴 수 있고 빈곤의 덫을 탈출할 수 있습니다. 이율을 조금만 낮춰도 복리의 위력으로 대출자의 인생은 달라집니다. 이러한 소액금융의 창시자가 바로 방글라데시의 경제학자 무함마드 유누스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일반은행이나 신용협동조합 같은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리는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 인도의 경우 금융기관에서 정식으로 대출받은 경우는 6.4퍼센트에 불과했습니다. 경제활동 분야와 나라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이러한 양상은 어디에서나 똑같이 나타납니다. 결국 가난한 사람들은 높은 이율을 내야 하는 대부업을 이용합니다. 이러한 대부업은 일반적으로 연이율 최소 40퍼센트에서 최대 200퍼센트 사이에 형성되어 있습니다. 즉, 가난한 사람은 부자보다 더 높은 이율을 부담하고 있고 그 이용빈도도 굉장히 높습니다. 하지만 투자자가 크게 환영할 만한 수준의 이율로 돈을 빌리려는 사람들이 수백만 명에 달하는데도 투자자는 돈 가방을 싸들고 이들에게 몰려가지 않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돈을 빌릴 때 높은 이자를 물어야 하는 이유로 흔히 내세우는 것이 채무불이행 가능성이 크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비공식 대부업의 채무불이행률은 그리 높지 않은데, 파키스탄의 예를 보면 채무불이행률의 중간값은 2퍼센트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문제는 이처럼 낮은 채무불이행률이 저절로 이뤄지는 게 아니라는 점에 있습니다. 대부업자는 돈을 회수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 전역의 대부업자가 여러 유형의 고의적인 채무불이행을 방지하기 위해 사용하는 방법이 담보물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바꿔 말하면 대출자가 내놓은 담보물의 가치가 클수록 대부업자가 빌려주는 돈의 액수가 커집니다. 즉, 사람들은 부자에게만 돈을 빌려줍니다.

대부업자가 대출금을 제대로 회수하려면 대출자와 관련해 많은 정보를 확보하는 것은 물론, 대출 결정을 내리기 직전까지 대출자의 신용을 비롯해 여러 가지 정보를 확인해야 합니다. 대출해준 이후에도 대출자를 계속 주시하고 계획한 곳에 돈을 쓰고 있는지 확인하고 제대로 사업을 하도록 재촉해야 하는데, 이러한 노력에는 시간과 비용이 들기 때문에 당연히 이율이 올라갑니다. 이러한 소요비용은 대출금 규모와 비례하지 않기 때문에, 다수의 사람에게 소액의 금액을 대출하는 것은 소수의 사람에게 큰 금액을 대출하는 것보다 이율이 올라갑니다. 또한 이율이 높아지면 대출자가 대출금을 상환하지 않을 방안을 찾고자 하는 유인이 커집니다. 그러면 대부업자는 대출자를 더욱 신중하게 감시해야하고 이는 비용이 더 늘어나게 합니다. 결국 이러한 악순환은 이율 상승을 폭발적으로 치솟게 합니다.

이렇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은 가족이나 이웃, 고용주, 인근의 대부업자들에게 돈을 빌리는 경향이 많습니다. 자신과 가까운 사람일수록 돈을 갚아야 하는 강제성이 작용하고, 관리비용이 적게 들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더 낮은 이율이 형성됩니다. 이러한 요소들 때문에 은행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주지 않습니다. 정보를 수집하는 비용도 비용이지만, 불법적인 방법으로라도 대출금을 회수하는 방법을 쓰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무하마드 유누스의 공로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좀 더 합리적인 이율로 돈을 빌려주자는 아이디어를 냈을 뿐 아니라, 빌려주는 방법을 알아낸 것입니다.

소액금융은 진솔하게 표현하면 사회적 목적을 위해 탈바꿈한 대부업입니다. 때문에 기존의 대부업이 가진 모습을 어느정도는 가지고 있습니다. 소액금융기관은 전통적인 대부업자와 마찬가지로 고객을 밀착 감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소액금융기관은 집단으로 대출받는 것을 요구함으로써 대출자들끼리 서로 곤경에 처했을때 돕게 하며, 공동체 내부의 인맥관계를 이용해 채무불이행을 막습니다. 대부업자와 다른 점은 물리적인 위협을 가하지 않으며 상환방식이 일괄적이라는 차이가 있습니다. 돈을 회수하는 방법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소액금융기관은 특별히 교육 및 훈련 수준이 높은 사람을 고용하지 않아도 되므로 상환금 회수비용이 낮습니다. 이는 대부업의 관리비용을 감소시켜 이율을 감소시킵니다. 물론 소액금융기관의 이율이 일반은행과 같은 수준은 아니지만, 기존에 가난한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었던 다른 대안에 비하면 낮은 수준입니다. 이러한 장점 덕분에 기존의 가난한 사람들의 금융체계에 비하면 훨씬 용이하게 빈곤의 덫을 탈출할 수 있게 합니다.

하지만 소액금융기관도 한계가 있는데, 일정 규모 이상의 대출, 즉 중소기업과 관련된 대출은 어렵다는 점입니다. 소액금융기관은 상환 의무 이행을 무엇보다 우선시하게 되었기 때문에, 채무불이행 기회를 열어 주면 낮은 이율을 만들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는 어디까지나 소액금융업의 규정이 낮은 이율로 많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줄 수 있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곧 가난한 사람들이 소액금융의 대출을 받아서 할 수 있는 일이 한정적이라는 것입니다. 좀 더 나은 발전을 위해선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의 혁신이 요구되지만, 중소기업을 위한 대출방식은 어디까지나 기존 은행의 구조 문제로 귀착됩니다. 은행은 대출의 논리에 따라 중소기업보단 대기업으로의 대출을 선호하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소액금융기관은 소비재 구입을 위한 대출은 승인하지 않습니다. 일부 기관은 대출금을 소득 창출이 가능한 자산에 지출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 결과 소액금융기관이 가난한 사람에게 미친 가장 뚜렷한 영향은 차, 군것질, 담배, 술의 소비가 줄어들은 것인데, 소액금융기관을 통해 추가로 소액대출을 받은 가정의 경우, 이들 물품에 대한 월 지출총액이 가구당 5달러 이상 감소했습니다. 이는 가구 평균 지출의 85퍼센트에 해당합니다. 모로코의 소액금융기관 알 아마나에서도 이러한 경향을 확인할 수 있는데, 사교와 관련된 지출을 줄이고 대신 저축을 늘렸습니다. 저축의 증가의 장점을 고려하면 이는 소액금융의 또 다른 장점입니다. 소액금융은 가난한 사람이 장기목표를 세우고 이를 달성할 수 있도록 돕는 여러 방법 중 하나입니다.

소액금융 운동은 여러 가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주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했습니다. 소액금융기관이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얼마나 변화시켰는지는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소액금융업이 지금과 같은 규모에 이르렀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성과라 할 수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운동 가운데 이처럼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 운동은 극히 드뭅니다. 이러한 공로 덕분에 소액금융의 창시자인 무함마드 유누스는 2006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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