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볼
마이클 루이스 지음, 김찬별.노은아 옮김 / 비즈니스맵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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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야구팀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는 매우 가난한 구단입니다. 오클랜드 구단이 선수들에게 지급하는 총 연봉은 2002년 기준으로 4194만 달러로, 오클랜드가 경쟁해야 하는 다른 구단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수치입니다. 2002년에 애너하임은 6275만 달러를, 시애틀은 8608만 달러를, 텍사스는 1억 691만 달러를 지급했습니다. 가격이 선수들의 실력을 반영한다면, 오클랜드는 단연 리그 최하위를 달려야 했습니다. 하지만 오클랜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오클랜드는 텍사스에 비해 반도 안되는 연봉을 지급하면서도 텍사스와 승차31을 벌리며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에서 리그 우승을 차지합니다. 그리고 20연승이라는 신기록과 4년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이라는 결과를 냅니다. 그 힘은 채드윅부터 시작해서 빌 제임스가 창시한 세이버메트릭스의 힘이였고, 그것을 메이저리그에 접목시킨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단장 빌리 빈의 힘이였습니다.

과거의 야구 스카우터들은 기록의 중요성에 동의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선수들의 과거 기록이 앞으로 그 선수가 얼마나 성장할 수 있을지의 가능성을 보여주지는 못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관념은 비과학적이고 비합리적인 부분을 낳았는데, 문제는 메이저리그 선수를 물색하는 방식에 있었습니다. 당시 스카우터가 선수를 찾아내는 방법은 수만 킬로미터를 운전해 싸구려 모텔에 묵고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끼니를 때워가며 넉 달간 고등학교와 대학 선수들의 경기를 평균 200회씩 관전하는 식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중에서 199회는 보통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하며, 그러다 200회의 경기 중 단 한번 우연히 아무도 알아보지 못한 뛰어난 선수를 찾아내는 것이였습니다. 그런 선수를 알아보는 것은 첫눈에 반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이러한 스카우터들의 평가를 기본으로 진행되는 신인 드래프트는 당연히 실패율이 매우 높았고, 50명을 뽑고 2명만 성공해도 기뻐하는 실정이였습니다. 과거엔 야구선수들의 연봉이 높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실패가 심각한 타격을 주진 않았지만, 갈수록 높아지는 연봉은 점점 선수를 잘 뽑아야 한다는 필요성을 제기했습니다.

야구인들의 주관적인 평가에서 벗어나 통계 분석을 통해 야구 이면의 합리성을 밝힐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은 1845년 박스스코어라는 개념을 고안한 핸리 채드윅에서 시작합니다. 하지만 채드윅은 통계의 의미를 파고드는 일보단 통계의 대중화에만 매달렸기 때문에 볼넷의 의미를 잘못 고안하는 등 여러 문제점이 있었는데, 이때부터 타율은 선수의 공격력을 평가하는 핵심 지표가 되었습니다. 그후 경제학과 문학을 전공하고 스토클리밴캠프 식품공장의 야간 경비원으로 일하던 빌 제임스는 야구 데이터 역사에 핵심적인 역할을 합니다. 그는 자비로 『1977년 야구개요:18개 항목의 야구통계 독점 제공』이라는 68쪽 분량의 책을 출판했는데, 급진적이고 독창적인 주장이 담겨 있었습니다. 책을 통해 야구의 통계가 부적절할 뿐만 아니라 거짓도 섞여 있음을 말하며 야구의 통념에 대한 공격을 시작합니다. 그는 꾸준히 책을 냈고, 득점생산력이라는 모형[RC=(안타+볼넷)*총루타 수 / (타수+볼넷)]을 제시하기도 합니다. 빌 제임스 말고도 딕 크레이머, 피트 팔머와 같은 사람들도 야구에 관한 새로운 이론을 검증했는데, 팔머와 크레이머는 출루율과 장타율을 합친 OPS라는 지표를 개발하기도 했습니다. 빌 제임스는 이러한 연구 분야에 세이버메트릭스라는 명칭을 붙였고 점점 많은 호응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을 실제로 도입하기란 매우 어려웠습니다. 1999년 플로리다 말린스를 사들인 존 헨리라는 부자도 빌 제임스의 오랜 독자였고 팬이였습니다. 그는 가상 야구 게임에서 제임스의 방법을 활용해 즐겼고 실제로 높은 승률을 자랑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소유한 실제 야구팀은 제임스의 방식과는 상관없이 움직였습니다. 헨리가 당면한 문제는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측면을 포함하고 있었는데, 구단주가 되어 전적으로 새로운 방식을 도입하겠다는 것은 기존의 감독과 스카우터, 선수를 포함해 팀의 모든 관계자를 소외시키는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랬다간 구단주라 할지라도 결국 조직으로부터 외면당하고 맙니다. 하지만 도입 시도는 그 후 샌디 앨더슨으로 이어집니다. 다트머스대학과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한 샌프란시스코의 변호사 샌디 앨더슨은 야구를 해본적도 없었지만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단장으로 부임합니다. 현장에 뛰어든 앨더슨은 야구를 이해하려 애썼고 경기중의 작전부터 선수 평가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은 야구인의 연륜과 경험을 토대로 하기보단 과학적 조사 방식, 통계를 기반으로 둔 데이터 분석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애슬레틱스의 구단주는 전혀 돈을 쓰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앨더슨은 가장 효율적으로 돈을 써야 했기 때문에 그러한 필요성이 더 컸고, 앨더슨은 출루율이라는 단 하나의 통계를 중심으로 구단의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냅니다. 하지만 그의 변화는 마이너리그에서만 이루어졌을 뿐 메이저리그에서는 통제력을 발휘할 수 없었습니다.

빌리 빈은 1999년부터 오클랜드의 단장으로 취임했습니다. 그는 젊었을 때 정말 뛰어난 신체능력을 가졌고, 야구에서 대성공할 수 있는 재능을 지녔습니다. 결국 그는 프로 야구선수가 되었지만, 그는 정신적인 부분에서 프로선수가 되기엔 벅찼고, 결국 선수생활 도중 프런트로 자리를 옮깁니다. 앨더슨은 빌리 빈을 자신의 보좌관으로 삼았고, 빌리 빈 또한 세이버메트릭스의 영향을 받습니다. 그는 단장이 되었지만 수많은 문제에 직면합니다. 4000만 달러의 예산으로 2억 2600만 달러까지 쓸 수 있는 구단과의 승부에서 승리해야 했습니다. 당시 메이저리그 선수들의 평균 연봉은 230만 달러였는데, 오클랜드는 150만 달러도 채 줄수 없었습니다. 그는 어린 선수나 시장에서 과소평가된 기존 선수를 찾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재능있는 선수들은 부자 구단이 모조리 쓸어갔을것 같았지만, 빌리 빈에겐 여전히 기회가 남아 있었습니다. 빌리가 단장으로 취임할 당시에도 야구계는 서서히 OPS라는 새로운 지표에 눈길을 주고 있었습니다. OPS는 출루율과 장타율을 단순하게 합산한 수치인데, 단순하기는 해도 팀의 득점을 예측하는데 다른 어떤 공격 부문의 통계보다 훨씬 정확한 지표였습니다. 하지만 두 가지 기록을 단순히 합산하는 방식은 이 둘이 동등한 중요성을 지녔다는 식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었습니다. 빌리의 보좌관인 폴은 그것이 부조리하다는 결론을 내렸는데, 그의 공식에 따르면 출루율 증가는 장타율 증가보다 세 배나 큰 가치가 있었습니다. 당시 선수의 출루 능력은 다른 능력에 비교해 대단히 낮게 평가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출루, 다시 말해 아웃을 피하는 능력은 수비 능력이나 빠른 발과는 비교도 되지 모했으며 장타력에 비해서도 하찮게 여겨졌는데, 그 덕분에 팀의 승리에서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출루율 좋은 선수를 헐값에 사들이는 것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아마 프로야구계의 누구도 동의하지 않겠지만 브랜트는 미국 최고의 타자일 겁니다. 내가 정말 신나는 이유가 뭔지 아세요? 사람들은 그 선수가 치명적인 단점이 있어 고려할 가치도 없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것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겁니다." - 폴 디포디스타 

그렇게 해서 사들인 선수들은, 기존의 야구팀 관계자나 기자들이 보기엔 그야말로 스포츠 선수의 자격이 떨어지거나 별 쓸모없다고 판단한 선수들이였습니다. 빌리가 드래프트나 트레이드 등을 통해 얻은 선수들은 제러미 브라운, 브랜트 콜라마리노, 제이슨 지암비, 스콧 해티버그, 짐 메시어, 채드 브래드포드 등과 같은 선수들이였습니다. 제러미 브라운이나 브랜트 콜라마리노는 지독한 뚱보였고, 스콧 해티버그는 포수였는데 부상때문에 송구를 할 수 없었습니다. 짐 메시어는 절뚝거리며 걸었는데, 양쪽 발이 모두 내반족이었습니다. 제이슨 지암비는 리그 최고를 자랑하는 출루율이 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야구계의 관념으로 보기에 반쪽짜리 선수들였던 그들이 내놓은 결과는 그야말로 최상급이였습니다. 당시 공격력에서 제이슨 지암비보다 뛰어난 타자는 배리 본즈가 유일했고, 해티버그의 볼넷 비율은 메이저리그 최고 수준이였습니다. 브래드포드는 130킬로미터밖에 되지 않는 공을 던졌는데, 당시 마크 맥과이어와 새미 소사의 홈런 경쟁이 치열했을 무렵이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채드 브래드포드에게는 홈런을 쳐내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너무 작거나 마르거나 뚱뚱하거나 느리다는 이유로 야구계에서 무시당했던 선수들이였지만, 빌리 빈은 오직 야구 결과를 잘 낼수 있는 선수들을 찾았고, 결국 빌리 빈이 옳았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빌리 빈의 방식도 한계가 있었습니다. 포스트시즌 제도는 왜 야구계가 과학적 연구의 성과나 합리적인 구단 운영 방식에 그렇게까지 반발하는지를 부분적으로 설명해줍니다. 플레이오프에서는 합리적인 운영 방식이 수포로 돌아가고 마는데, 정규 시즌과 달리 단기전에서는 표본 사이즈가 너무 작아 예상밖의 일들이 벌어지기 때문입니다. 세이버메트리션인 피트 팔머의 계산에 따르면 실력에 따라 좌우되는 점수는 경기당 1점이지만, 운에 따라 좌우되는 점수는 경기당 4점이나 됩니다. 장기간에 걸쳐 시즌을 치르다 보면, 각 구단에 운이 공평하게 돌아가고 결국 실력 차이가 빛을 발합니다. 그러나 단기전은 다르며, 5차전 경기라면, 가장 형편없는 팀이 최고의 팀을 이길 확률은 15퍼센트나 됩니다. 빌리 빈도 "내 역할은 플레이오프에서는 통하지 않거든요. 내 역할은 플레이오프에 올려놓는 데까집니다. 그 뒤에 벌어지는 일은 빌어먹을 운에 달렸죠." 라고 인정합니다. 가장 중요한 포스트시즌에서 과학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메이저리그의 시즌 운영 방식은 결국 합리성을 조롱할 수밖에 없도록 짜여 있습니다. 또한 빌리 빈의 한계는 스스로에게도 원인이 있었습니다.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성공과 『머니볼』의 충격은 다른 구단에게도 새로운 가치를 받아들이게 해 오클랜드가 과거와 다르게 싸고 우수한 선수를 구하기가 힘들어졌기 때문입니다.

빌리 빈은 과거부터 소수의 매니아를 중심으로 이어져온 세이버메트릭스를 메이저리그에 접목했고, 성공했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주목하지 못한 진짜 가치에 주목했고, 가치에 투자함으로써 투자 대비 최고의 성과를 거둡니다. 이는 곧 야구계가 무능한 부분이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하지만《사커노믹스》에서 말하듯이 '축구 클럽이 무능한 것은 무능해도 괜찮기 때문이다.'는 평가는 야구에도 적용됩니다. 야구는 사업체라기보다는 사교클럽에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빌리 빈은 사교클럽의 단점을 찌를 수 있었습니다. 예전에 교보문고를 돌아다닐 때 《만약 고교야구 여자 매니저가 피터 드러커를 읽는다면》이라는 인상깊은 제목의 책을 본 적이 있습니다. 만약 저 책이 제목을 듣고 제가 예측한 내용이 맞다면, 여자 매니저는 피터 드러커를 읽는게 아니라 이《머니볼》을 읽는게 더 나을 것입니다. 물론 머니볼의 교훈은 야구판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해와 편견에 눈이 멀어 진실된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는 것은 수없이 많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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