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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롯 - “예수는 정치적 혁명가였다” 20년간의 연구로 복원한 인간 예수를 만나다
레자 아슬란 지음, 민경식 옮김 / 와이즈베리 / 2014년 3월
평점 :
품절
이 책이 언제 발행이 되었는지 까먹었다.
내 기억으로는 올해는 아닌었던 것 같고, 작년으로 기억하는데 가물가물하다.
평소 성격같으먼 악착같이 찾아내겠다만 뭐 별로 그러고싶지도 않다.
원래 사려고 했던 책인데 뒤로 밀리고 밀리다 결국 안 사고
얼마 전 도서관에서 빌려봤다.
책을 그렇게 자세히 엄청 신실하게 읽지는 않았다.
카톨릭 세례를 받았지만 성당을 안 간지 10년이 넘었고
(동네 지나가다 자주 보기는 하지만 정작 미사보러 안 간다.)
기독교/개신교/교회라 불리우는 것은 원래 싫어했는데
대학교를 하필이면 어쩌구 하는 기독교단에서 운영하는 곳에 간 이유로 더 싫어졌다.
4년동안 나에게 예수님 믿으라고 강요를 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싫어하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암튼 대학교 다닌면서 학교 내에서 학생이 "예수님 믿으세요~" 라며 전도하러 다니고
같은 학과 동기 여럿이 나에게 "예수님은 너를 사랑하셔" 라고 말을 하고
몇몇 생각없는 교수가 말도 안되는 헛소리로 "예수를 찬양하라" 외쳐 대셔서
4년 동안 말도 안 되게 짜증이 났고
이를 물리치기위한 방편으로 신학공부를 엄청 열심히 했다.
신학이라는 것을 제대로 공부를 하게 되면 "예수는 없다"는 결론에 이르니까
한국의 기독교란 매우 안타깝게도 미국의 청도교 영향을 많이 받은터라
성경에 쓰여져 있는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문자주의 기독교이다.
그런 바람에 "동성애는 죄다" "동물은 인간을 위해 태어났다"라는 사고를 온 인류에 전파하려고 무진장 애를 쓴다.
그러나 유럽의 기독교를 보면 해석주의 기독교이다.
그 시절 왜 그런 단어를 썻고, 그 단어의 의미가 어떻게 되었고, 여러가지 뜻이 있는 단어라면 실제로 예수는 왜 이런 단어를 사용했느가? 이렇게 사고한다.
그러다보니 성경이 쓰였던 시대와 현재 시대의 성경 해석을 다르게 해야한다. 이런 것도 있다.
"예수는 동성애를 혐오하지 않고 오히려 받아들였다" 같이 문자주의와 해석이 다른것이다.
뭐 그건 그거고 젤롯을 읽다보니 그 시대에서 예수가 실제로 어떤 사람이었느냐
성경에 나와있는 말씀 중에서 요한서 베드로서 등등 "서"에 따라 왜 단어가 조금씩 달라지고 문맥이 달라지고 역사적 사실이 달라지느냐 이것저것 분석했는데.
내가 의문점이 드는 것은 도대체 왜 예수의 존재 자체가 중요한가? 이다.
어차피 난 예수라는 존재가 누구든 실제 존재유무랑 상관없이 기독교 근처에도 가지 않을 예정이고, 천주교에는 초딩중딩 때 믿었던 거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예수를 믿는 사람도 예수가 없으면 더 이상 교회 안 갈거고 성당 안 갈건가?
예수가 있던 없던 믿을 것 아닌가?
그럼 도대체 예수의 존재 유무가 왜 중요한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