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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외로움을 두고 왔다 - 시로 추억하는 젊은 날
현새로 지음 / 길나섬 / 2016년 3월
평점 :
책을 읽으면서 가장 기쁠 때가 언제일까. 혹은 가장 슬플 때는 또 언제일까. 내게는 마치 내 마음을 옮겨놓은 듯한 글을 만났을 때 그러하다. 사진작가 현새로의 [거기, 외로움을 두고 왔다]를 읽으면서 기뻤고 슬펐다. 연배는 10년 넘게 차이나지만 글을 읽으면 읽을수록 자꾸만 나의 유년시절, 학창시절, 런던을 여행할 때 느꼈던 찰나의 외로움과 적막속으로 끌고갔다. 처음에는 가지 않으려고 했다. 그녀의 글에서 그저 시를 알고, 사진을 느끼려고만 했는데 어느샌가 끌려가던것이 제발로 이제는 먼저가서 그녀의 글들을 기다렸던 것 같다. 기형도 시인의 [질투는 나의 힘] 중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라는 시구를 골라낸 그녀는 중학생시절 추억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시절 자신은 누군가를 사랑한 적이 없었다고, 또래의 친구들은 왠지 자신과 수준이 맞지 않는 것 같았다는 말에 공감했다. 사춘기 시절 누구나 다 그랬다고 하지만 반드시 그렇지만도 않다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친구들과 밤새 수다떠느라 부모님께 혼난 추억을 가진 사람도 있고, 부모님 눈치보느라 혹은 자신의 꿈을 위해 미친듯이 공부했던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저자와 나처럼 도서관에 처박혀 제대로 이해할 수도 없는 고전을 읽어내며 저 혼자 뿌듯해했던 추억을 가진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그녀는 그렇게 행동했던 것이 가난을 감추기 위해서라고 말해주었고 이와 관련된 사진으로 런던에서 사진 공부를 했을 당시 교수님 집에서 찍었던 자신의 모습을 책에 실었다. 늦은 오후즘으로 느껴지는 빛이 가득한 방에 카메라 앞에 선 모자쓴 그녀의 모습은 그녀가 처음으로 자신을 사랑하게 되었을 때라고 말했다. 아무도 없었던 그곳에, 혼자서 모든 것을 감당해야 했던 그 시절 비로소 자신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었고, 그랬기에 사랑할 수 있었던 때라 말해준 그녀덕분에 나는 내 자신을 가장 사랑했던 순간이 언제였을까 생각해본다.
어쨌든 음악은 사람과 달랐다. 주머니가 아무리 가벼워도 음악 앞에서는 부끄럽지도, 자존심이 상하지도 않았으니까. 그렇게 나는 음악을 들었고, 음악은 소리 없는 내 울음을 들어 주었다. 104쪽
라디오와 관련된 추억을 담은 페이지에 실린 시는 신동엽 시인의 [노래하고 있었다]로 '달리는 열차'안에서 창가를 바라보고 앉아있는 부분과 관련된 이야기를 들려준다. 다른 주제에서 언급한 것처럼 시인은 버스를 타고 장시간 도시를 구경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나도 그렇다. 더불어 나 또한 달리는 열차안에서 미래가 아닌 과거속으로 하염없이 빠져들어가는 것을 좋아하는 데 이때 내게도 가장 필요한 것은 음악이었다. 저자는 라디오를 대신해 언니가 사준 워크맨이 그 공간을 채워주었듯 내게는 휴대폰 속 음악이 허전한 마음을 음악으로 가득 채워주었다. 책도 좋고, 영화도 좋고, 카운셀링을 받는 것도 좋지만 역시나 가장 저렴하면서도 효과적인 마음치료는 '음악'이라는 말에 고개를 오래도록 끄덕이게 만들었다.
나는 절대 고독 속에 여행하면서 완벽하게 홀로됨을 즐겼다.
그 순간만큼은 누구의 딸도 아니고 아내도 아닌,
그저 한 인간으로 그 공간에 존재했다. 150쪽
[거기, 외로움을 두고 왔다]는 읽는 동안 사무치게 외로워질 수도 있고, 미칠듯한 기쁨에 주체하지 못할 수도 있다. 서문에 밝힌 것처럼 저자의 이야기에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싶다. 유년시절 저자처럼 외롭지 않았고, 학창시절 저자처럼 배고프지 않았다고 해도 우리는 늘 언제나 '꿈'앞에서 한없이 약해진다. 그럴 때 우리는 꿈에 다가가기 위해선 과감하게 외로움을 던져버리는 수밖에 없다. 그럴 때 우리를 도와주는 것이 다름아닌 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가장 좋은 시라고 할 순 없지만 가장 맘에 드는 시는 이미 충분히 세상에 나와있는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시를 좀 더 좋게 만드는 현새로와 같은 저자의 도움이 늘 필요하긴 하다. 그녀의 글만큼 맘에드는 사진도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