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시골생활은 처음입니다
바바 미오리 지음, 홍주영 옮김 / 끌레마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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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리도 시골생활은 처음입니다

내 나이 만으로 스무살이 되기 전 부모님께서 귀농하셨다. 그게 벌써 20여년이 다 되어간다. 처음 몇 년간은 시골에서 나고 자란 아버지조차 도시생활에 이미 익숙해진 몸과마음을 농촌에 맞추시느라 고생을 많이 하셨다. 그보다 더 고생을 한 건 서울깍쟁이로 살다가 남편따라 시골로 내려간 엄마였다. 그래서였는지 10년 동안은 내게 시골로 내려오지 않겠냐는 말을 농담으로도 하시지 않았다. 그러던 부모님이 3년 전부터 도시에서 고생하지 말고 내려와 함께 살자는 말씀을 종종하신다. 그사이 주변에 도심생활을 청산하고 귀농하신 이웃분들도 제법 생겨 한 발짝 물러나 보고 있으면 보통 사람들이 이상으로 삼는 '전원생활'이 유지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치만 막상 귀농을 결심하기에는 머뭇거려지는 것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책 <우리도 시골 생활은 처음 입니다>의 저자 바바 미오리씨는 정말 솔직하게 전원생활의 현실을 들려주고 있다. 우선 귀농하면 삼시세끼 모두 직접 재배한 재료를 가지고 유기농 식단으로 챙겨 먹을것 처럼 보이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물론 직접 재배한 식재료를 많이 활용하기도 하고 이웃과 나누기도 하지만 도시에서 못지 않게 마트도 자주 들릴 수 밖에 없다. 저자가 아예 귀농하지 않고 번거로울 것이 분명한데도 도심과 농촌을 오가는 까닭도 어느 한곳에 안주하는 것 보다 훨씬 낫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계를 위해 반드시 농사를 지어야 하는 것과 땅의 이로움과 아이들에게 자연을 선사하는 정도에서 그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땅에서 기운을 얻으면 평일 내내 도시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고 반대로 농촌에서는 반드시 모든 것을 제 손으로 일궈야 하는 부담을 주말이라는 제한적인 시간에서만 해도 되니 양쪽 모두가 휴식이 되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니이니와 나는 벌레를 좋아하는 편이다. 아무리 징그럽게 생긴 벌레라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감정이입이 되어 함부로 죽일 수 없다.115쪽

 저자에게 부러운 점이 있다면 벌레 혹은 인간에게 해롭다고 정의내려진 대상을 바라볼 때 두려워하거나 겁먹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완전한 귀농을 거부하는 까닭 중 가장 큰 이유가 벌레가 싫어서인 내게는 그보다 더 부러운 것은 없다. 해충제를 뿌렸을 때 몸부림치는 모습이 무서워 왠만하면 벌레와 함께 지내자는 규칙을 세우기까지 했다니 여러모로 좋은일을 하는 셈이기도 했다. 생명을 중시한다는 것은 그 어떤 보은보다 그 가치가 크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농촌보다는 그래도 도시를 더 좋아한다는 미오리씨의 큰 딸도 지렁이를 맨손으로 잡는것은 거뜬하게 할 수 있다고 하는데 지렁이를 보기만 해도 깜짝깜짝 놀래는 내게는 너무 먼 이야기다. 제인구달의 <희망의 씨앗>을 읽을 때 어린시절 지렁이가 좋아서 침대에 데려와 함께 자려고 했다는 일화를 읽을 때 느껴지는 징그러움과 부러움이라고나 할까. 사실 벌레를 무서워하지만 않는다면 당장이라도 시골로 내려갔을 것이다. 저자의 말처럼 시골에 내려가면 마흔살도 스무살처럼 '아가씨'대접을 받을 뿐 아니라 새를 비롯 여러 동물들과 자연스럽게 벗으로 지낼 수 있는 신비로운 체험까지 가능하다.


언젠가 아이들의 주체성을 훨씬 존중해주어야 하는 시기가 오면 어쩌면 우리 부부만이 미나미보소에 다니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할 수 있다면 더 먼 미래에는 손주들도 데리고 다닐 수 있기를, 180쪽

대충의 내용만 보자면 온 가족이 저자의 바람대로 따라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게 되기까지는 가족구성원간의 사랑이 바탕이 되어야한다. 서두에 밝힌 것처럼 도시 나고 자란 엄마가 농촌에 처음 내려갔을 때는 불편함을 넘어선 고통이 따랐었다. 그때 엄마가 견딜 수 있었던 것도 사랑의 힘이었다고 밖에 말 할 수 없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내게 느껴진 것도 농촌생활을 통해 얻어지는 자연의 힘과 가치보다는 엄마를 이해하고 따라주는 세 아이와 힘들 때마다 의젓하게 아내의 손을 잡아주는 남편의 사랑이었다. 무작정 귀농하는 것 보다는 좀 불편하고 번거롭더라도 이 책의 저자처럼 두지역을 오고가는 방식으로 먼저 시도해보고 가족들과 조율한 끝에 결정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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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몬드 (양장) - 제10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손원평 지음 / 창비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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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남자는 왜 그랬을까.

텔레비전을 부수거나 거울을 깨뜨리지 않고 왜 사람을 죽인걸까.

왜 더 늦기 전에 누군가가 나서서 도와주지 않았을까.

왜.

 65쪽


*



소설 아몬드는 출간 전 연재부터 챙겨보던 소설이었다. 처음에는 표지에 그려진 주인공 윤재의 모습이 너무 무표정해서 사실 윤재가 범죄를 일으키는 소설이라고 생각했었다. 이렇게 생각했다는 것이 책을 읽는 내내 부끄럽고 이 세상 어딘가에 살아가고 있을 실제 '윤재'들에게 미안했다. 타인의 아픔과 슬픔에 공감하지 못하는 윤재는 사람들로 부터 따돌림을 당한다. 하지만 타인의 아픔과 슬픔을 '공감'한다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들었다. 공감만 할 뿐 나서서 도와주지 않는다면 아예 그런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윤재와 다른 점이 무엇일까 싶었기 때문이다. 위의 발췌문은 윤재가 사회에 대한 분노를 애꿎은 시민들을 향해 뿜어버린 남자에 의해 엄마와 할머니를 잃었던 사고를 당하면서 느끼는 감정이다. 누군가의 아픔에 공감한다는 것은 역으로 자신의 아픔에 타인이 공감해주기를 바란다는 의미다. 실제로 유사한 사건들을 보면 피의자 자신은 엄청나게 힘들고 괴로운데 아무렇지 않게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을 보고 순간적인 화를 참지못해 범죄를 저질렀다고 고백한다. 그런가하면 곤이의 경우는 또 다르다. 곤이는 자신의 슬픔에 공감해주길 강요하거나 그렇지 못한것에 대해 화를 내기보다는 타인의 공감을 이끌어내지 못하는 자신의 상황에 화를 낸다. 그것은 마치 자해와 같았다. 강해지기 위해 악마와 다름없는 상대를 직접 찾아나서는 것 역시 그만큼 곤이가 의존적이라는 사실만 깨닫게 될 뿐 이다. 그렇다면 그나마 보통의 기준으로 정상적인 사람은 '도라'라고 볼 수 있다. 제꿈을 위해 반항도 하지만 결국 가족들의 응원을 기대하는 모습은 10대 소녀의 모습에서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적확한 모습이었다.


*


청소년 소설을 읽을 때면 난 늘 죄의식에 사로잡힌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화책을 읽는 것처럼 너무 웃겨서 배를 부여잡을 만큼 재미있었던 완득이도 그랬고, 우아한 거짓말 또한 읽은 뒤 한참을 방황했었던 기억이 난다. 아몬드 또한 마찬가지다. 초반에 윤재 엄마와 외조모가 윤재를 정상적인 아이처럼 보일 수 있도록 교육시키는 과정은 웃음이 날만큼 재미있지만 전체적으로 보자면 어두운 내용이다. 특히 후반부로 갈수록 윤재와 곤이의 삶 자체가 위태로워질 때즘이면 두 아이 모두를 잃게 될까봐 심장이 오그라드는 불안함마저 느끼게 되었다. 앞서 언급한 작품들이나 윤재와 곤이의 삶을 위태롭게 만드는 것은 작품속에 직접적으로 등장하는 '위험인물'이 아닌 '어른들'과 '사회'다. 독자인 나는 하필이면 어른이자 그 사회의 일원으로 숨쉬고 있으니 죄의식을 어찌 느끼지 않을 수 있을까. 몇 년 전 <우아한 거짓말>리뷰를 쓸 때 말미에 우리에게 책임이 있다고 적었는데 역시나 <아몬드>를 읽고 난 후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런 나를 볼 때마다 역시나 청소년 소설은 정작 읽어야 할 독자가 청소년이 아니라 어른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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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하나 위로 둘
동그라미 지음 / 경향BP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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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지 않은 사람은 있을 수 있어도 상처가 없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한 번쯤 사람과 사랑에 상처받는다. 하지만 시간은 흘러가고 빈자리는 채워지는 것이다. 121쪽

 

마음의 겨울마저 떠날 보낼즘 만나게 된 책, 상처 하나 위로 둘.



한참 아플 때는 같이 울어줄 책이 필요했다. 시간이 지나면 울음과 함께 슬픔도 잦아든다. 그럴때는 갑작스럽게 분위기를 바꾸는 것 보다는 차분하게 빛으로 이끌어주는 책이 간절해진다. 빛이라는 것은 새로운 사랑도 아니고, 그저 시간에 몸과 맘을 내 맡기는 것도 아니다. 적당한 위로와 함께 약간의 추억을 꺼내어도 더이상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는 확신을 줄 수 있는 그런 책이다. 저자이름이 '동그라미'다. 저자 약력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평범한 문장을 써 내려가도 누군가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만족하는 삶을 살고 있다.'라고. 사실 평범하다는 것은 정말 힘들고 어려운 얘기며 동시에 '공감'할 수 있는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목차만 봐도 힘이 된다. 나의 아픔을 들어준다는 챕터1, 나의 아픔을 위로로 대신해주겠다는 챕터 2. 그리고 마지막은 '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로 끝맺는다. 사람을 위로 할 줄 알고 들어줄 줄 아는 그야말로 사랑에 아파본 적이 있는 저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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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도깨비에서는 명대사가 정말 많았다. OST도 드라마 못지 않은 인기가 있었는데 가수 에일리가 부른 '첫눈처럼 가겠다'란 곡이 특히 사랑을 많이 받았다. 마치 그 드라마와 노래가 배경처럼 들리는 듯한 글이 있다. '눈 내리던 어느 날'. 어느 시인은 비오는 것을 핑계로 전화할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이 책의 저자 역시 눈온다는 핑계로 연락을 하고 싶다고 말한다. 하지만 결국 취할 수 없다. 그렇게 마음이 녹아내린다는 표현에 책을 들고 있던 내 손도 떨렸다. 비슷한 맥락에 '최고의 핑계'라는 글은 떨리는 손만큼이나 마음을 흔들고 지나갔다. 눈과 비만큼이나 괜찮은 핑계는 '연말'이다. 굳이 헤어진 연인이 아니더라도 연말을 핑계로 어정쩡한 관계의 사람들에게 연락을 취하는 경우가 있다. 그 최고의 핑계를 차마 연락할 수 없다는 말 끝에 '내 지난 사랑아'라고 적혀있었다. 내 지난 사랑아. 저자가 쓴 문장을 내 마음속에 꾹꾹 눌러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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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하나 위로 둘

*​

 


책을 읽다보면 이목구비가 없어 표정을 알 수 없는 일러스트가 중간중간 등장한다. 표정이 없지만 분위기만 보더라도 어떤 표정인지 짐작할 수 있다. '늦은 밤'편에는 홀로 이불을 덮고 달뜬 하늘을 바라보는 여자그림이 그려져 있다. 가장 힘든 시간이 어쩌면 깊은 밤에서 새벽으로 넘어가는 시간이 아닐까 싶다. 예전에는 실연하고도 학교를 다녀야 하고 직장에 나가야하는 처지가 안타까웠는데 오히려 그럴 수 있는 상황이 견딜만 한다는 것을 이제사 깨닫는다. 그렇게 '오늘도 내 새벽에는 당신이 있다. (96/9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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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말처럼 과하지 않아 더 내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이런 책을 읽을 때 만큼은 그야말로 이 세상에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이 나혼자뿐이 아니란 사실에 조금 기쁘기까지 하다. 그리고 언젠가 덤덤해지는 날, 이 책에 적힌 내용들에 낯간지러움을 느끼는 날이 오리라는 것을 믿고 있다. 그날이 오기 전까지 좀만 더 이 새벽 그와 함께 이 책이 내 곁에 있을 것 같다.



내용도 구성도 참 좋았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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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미스소니언 사진전 in 대구> 관람 이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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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아시아 제44호 2017.봄 - 사오싱Ⅱ ShaoxingⅡ
아시아 편집부 엮음 / 도서출판 아시아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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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계간 ASIA 아시아 44 / 2017 봄호


몇 년전 한수산님의 <까마귀>라는 작품을 접했을 때 실제 있었던 역사적인 사건이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것이 허구였으면 싶을만큼 마음이 아팠었다. 그렇게나 아팠던 마음도 잠시, 어느새 군함도와 관련된 모든 것이 희미해질 무렵 군함도 1,2권 완결 소식을 서점사이트를 통해 접했다. 그리고 계간 아시아 44호, 2017년 봄호 '나는 어떻게 쓰는가'편이 한수산 작가의 인터뷰로 채워졌음을 보고 반가웠다.


소설 [군함도]는 수면 위에 떠 있는 얼음덩어리일 뿐입니다.

작품을 수면 위에 떠 있는 얼음이라고 할 때, 물속에 잠겨 있는 보이지 않는 얼음에는 개인의 삶을 와해시키고 인간을 인간답게 살지 못하게 하는 거대한 죄악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작품은 물 위의 얼음으로 물속에 잠긴 얼음을 독자에게 환기시키면 되는 것입니다. 139쪽


소설 군함도는 이전에 발표했던 <까마귀>를 2권 분량으로 축소한 것이다. 인터뷰 내용을 읽어보니 작가의 마음은 이렇듯 축소하는 방식의 개작이 아니라 오히려 15권 분량으로 늘리려고 했다는 것을 알았다. 작가 뿐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그런 바람이 있었다. 그런 바람을 접고 2권으로 개작된 까닭이 위의 발췌문에 등장한 '얼음'을 좀 더 뚜렷하고 분명하게 전달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까마귀를 읽은 독자들은 알고 있겠지만 군함도와 관련된 지상의 일들 뿐 아니라 주변인물들의 작은 이야기도 찾아가 들어보고 싶을만큼 한 사람 한 사람이 애틋하게 다가온다. 등장인물 중 어느 누구도 그렇게 스러져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었다. 아직 완간된 <군함도>를 읽기전이지만 저자 스스로 만족감을 드러낸 만큼 기대가 된다.


소개된 시들 중에서는 근무하는 곳이 도서관이라서 였을까. '주리나 하산'의 시 <도서관>의 작품이 눈에 띄었다. 만약 근무하기 이전에 이 시를 접했다면 나와 생각이 같은 사람, 도서관을 제대로 표현해낸 작품이라고 좋아했을 것 같다. 하지만 현실의 도서관은 시인의 눈에 비친것처럼 '학자의 정수, 문인의 호수/ 진리의 도시, 자유로운 목소리의 안식처'(176쪽)과는 거리가 멀다. 시인이 사는 나라의 도서관은 그러할지 몰라도 지금 내가 현장에서 마주하는 도서관의 풍경을 떠올리자면 진정한 의미의 학자도 문인도 없다. 직업란에 당당하게 문인이라고 적는 이는 원하는 책이 없다며 한바탕 소란을 피우기도 하고, 박사논문을 준비해야 한다면 같은 책을 장기간 혼자 독점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시를 접하다 그새를 못참고 현실을 떠올리는 내가 참 밉지만 현실은 어쩔 수 없다. 공무원준비, 어학시험 대비를 위해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공부를 하는 이시대의 젊은이들이 모이고, 집에 있으면 아내에게, 며느리에게 잔소리를 듣느다며 아침밥만 겨우 드시고 도서관에 나오는 어르신들까지 우리가 떠올리던 도서관은 과연 어디로 간것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밤늦게까지 마지막 페이지를 천천히 눈 뿐 아니라 마음에 담아가는 이용자들을 보며 '한국문학을 읽는 기쁨'편에 소개된 배리 웰시의 한국문학이 분명 그가치가 높고 뛰어남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소개가 되지 못해 읽히지 않는다는 의견에는 동조하지 않을 수 없다. 배리 웰시가 지적한 또 한가지는 한국문학의 표지가 그렇게 매력이 없는 것이 아니란 사실이었다. 사실 번역문학의 경우 원서와 비교할 때 늘 표지가 맘에 들지 않았는데 외국인들의 입장에서는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는 사실이 반갑게 느껴졌다. 한국문학을 널리 알릴 수 있는 방법 중 가장 효과적인 것은 분명 해외문학상 수상일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국민 부터가 많이 읽고 나서서 알려야 하지 않을까 싶다. 리뷰를 영어로 써본다더가 SNS에 표지나 공감가는 문구를 올리는 수준의 부터 관련업계에서 적극 권장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이렇게 리뷰를 적고보니 이전과는 달리 계간 아시아44호는 꽤나 현실적으로 고민하면서 읽었구나 싶다. 어찌되었든 이번 호도 맘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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