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의 101가지 사용법 - 연필, 이 단순한 도구의 놀라운 쓰임새
피터 그레이 지음, 홍주연 옮김 / 심플라이프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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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배터리도 필요 없고 사용설명서도, 온라인 지원도 필요 없다. 연필을 연필 그 자체일 뿐 아무것도 붙어 있지 않다. 그렇다. 이토록 간단하다. 바로 그것이 대단한 점이다. 이런 도두가 솜씨 좋은 손에 들어가면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낸다. 6쪽



솜씨 좋은 손에 들어가면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그렇지 못한 나와 같은 이들에게 큰 절망을 안기는 것도 연필이라고 말하고 싶다. 서두를 이렇게 시작해버리면 이 책을 꽤나 시니컬하게 읽었을거라 생각하겠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애초에 이 책을 읽었다는 것 부터가 연필을 보통이상으로 좋아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지 않은가. 피터 그레이의 <연필의 101가지 사용법>이전에도 연필을 주제로 한 책은 있었다. 가장 최근이라고 적고, 실제 출간월을 보고 깜짝 놀란 가이필드의 <연필의 힘>도 연필이 가지는 예술적 능력의 무한대를 보여준 책이다. 참고로 올해 1월에 출간 된 책이다. 표지색이 둘다 노랗기 때문에 의도치않게 비교하면서 읽느라 시간이 다소 걸리긴 했다. 어쨌거나 지금은 <연필의 101가지 사용법>에 관한 리뷰를 적고 있다. 미리 읽은 독자로서 추천하자면 우울하거나 정말 시간이 더디갈 때 읽기를 권한다. 처음에는 피식하며 웃다가 나중에는 이 책 뭘까 싶어지지만 결말은 이 책에 등장하는 다양한 연필사용법 중 사는동안 실제 해볼 수 있는 방법의 갯수, 이미 사용해본 경험의 수를 헤아려보게 된다. 결국 책이라는 것은 자기경험을 토대로 추억하는 것 아닐런지.

우선 경험해본 것 부터 나열해보자면, 가장 첫 번째 책에 밑줄긋기다. 저자는 당장 자신의 책 부터 밑줄을 긋거나 그림을 그려넣는 등 이 책을 자기만의 작품으로 만들라고 권한다. 사실 이전과 비교했을 때 책을 구매하는 데 들이는 비용이 엄청나게 늘어났다. 예전에는 도서관에서 빌려읽거나 하던것을 밑줄긋는 버릇이 생기면서 그렇게 된 건데 밑줄을 긋다보니 자연스럽게 메모나 그림같은 것을 그리게 되니 점점 더 저자의 책을 읽는 독자에서 하나의 작품이라고 보긴 어렵지만 습작이 되어가는 '창조자'의 입장으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단점이 있다면 이런저런 낙서와 그림을 그리다보니 오히려 타인에게 책을 빌려주기는 어려워졌다. 내 속을 너무 많이 보이는 것 같은 부끄러움이랄까. 이외에 선긋이, 스케치 이런 것들은 달리 방법이라고 까지 하기는 좀 어렵다는 판단하에 필기도구로서의 연필사용법은 가뿐하게 스킵하고 넘어가겠다. 줄자대용으로도 사용해봤고, 섬어라운드 기술로 연필도 돌려봤으며, 그냥 애매해서 귀에 꽂았을 뿐인데 저자는 이를 두고 귀를 장식하기 라는 방법으로 수를 늘려놓았다. 아주 해맑게 귀에 연필을 꽂은 일러스트를 그려놓고선 말이다. 속옷은 아닌데 더러운 오물을 연필을 이용해 옮겨본 적도 있고, 고백할지 말지 망설였으나 벌레를 죽이는 데(책에서는 '정확히 짚어주기'라고 표현함)이용도 해봤고, 셀로판 포장지 뿐 아니라 다양한 포장지를 뜯기 위해 연필을 사용한 적도 있었다. 어릴 적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동전그리기나, 숨은그림 찾아내기 등의 방법도 아마 읽다보면 피식하게 될 것이다. 밑줄긋기와 함께 가장 빈번하게 사용하는 용도는 51번째 활용방법인 '머리 고정하기'로 회사에서도 종종 연필을 삔처럼 활용한다. 의외로 자연스럽게 업스타일 헤어를 연출할 수 있기 때문에 머리삔이 있을 때도 일부러 연필을 사용할 정도다. 대략 자주 혹은 해봤던 연필 활용도가 이정도라면 앞으로 해보고 싶은 활용방법은 다음과 같다. '베스트셀러 집필하기'. 어쩌면 이 방법은 연필을 가지고 풍경을 스케치하고 캐리커처를 그리는 것처럼 연필을 가지고 할 수 있다는 것은 알지만 누구나 할 수 없다는 것도 아는 서글픈 방법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책을 좋아하고 연필을 사랑하는 이들 중에서 이것만큼은 꼭 해보고  싶지 않을까 싶어서 적어보았고,음료를 젓는다거나 껌처럼 씹는 건 어릴 때도 흑연의 독성을 꽤나 무서워해서 시도하지 않았던 방법이라 아마 앞으로도 이 방법은 안해볼 것 같다. 이 리뷰만 읽어도 의외로 연필을 가지고 할 수 있는 것이 많다라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스케치하기 등의 유사한 방법을 제외했는데도 말이다. 꼭 기억해야 할 연필사용법이 있다면 퇴비로 활용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좋은 퇴비를 만들려면 주방에서 나온 '녹색'쓰레기와 깍은 잔디 외에도 같은 양의 '갈색'물질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낙엽이나 판지, 나뭇조각 같은 것 말이다. 그러니 연필 깍은 부스러기와 몽당연필도 그냥 버리지 말고 한데 모아놓자. 268쪽


놀라운 사실은 이런 방법도 있는데 하며 은근슬쩍 자기만의 연필 활용법이 한 두가지씩은 떠오른다는 것이다. 내게도 이 책에서 언급하지 않은 방법이 있는데 저자가 사랑하는 아내를 표현할 때 말한 것처럼 여기서는 나 역시 밝힐 수 없는 방법이다.(설마 같은 방법?) 연필을 좋아해도 혹은 별 감흥이 없어도 누구나 읽어도 좋은 책, 특히 서두에 밝힌 것처럼 아주 지루하거나 책을 읽는 척은 하고 싶은 데 실제로는 그다지 읽고 싶지 않을 때조차 권하는 이유를 이 리뷰를 통해 알 수 있게되길 바란다. 아, 정말 놀라운 연필의 활용도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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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은 여름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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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렇게 낯선 나라에서 모국어로 된 정보를 들여다 보고 있자니 손에 스마트폰이 아닌 스노볼을 쥔 기분이었다. 유리볼 안에선 하얀 눈보라가 흩날리는데, 구 바깥은 온통 여르인 시끄럽고 왕성한 계절인, 그런.  -<풍경의 쓸모>중에서.-


소설집의 경우 수상작 혹은 기발표작이 표제가 되어 등장하는 데 김애란의 [바깥은 여름]은 위의 발췌문 <풍경의 쓸모>에서 등장하는 내용으로 그나마 가장 표제와 유사한 단어들이 등장하지만 치 7편의 이야기가 동시에 말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을 표현하는 듯 싶다. 타인의 슬픔이 어느정도 인지 결코 알 수 없고 제대로 알려고도 하지않고 심지어 그들의 슬픔을 자양분 삼아 '그보다는 덜 슬픈'하루하루를 견디고 있다고 생각되었다. 전 작품에서 우리는 생명의 상실을 간접 경험한다. 아이를 잃은 부모, 남편을 잃은 아내, 아빠를 잃은 아들 혹은 누군가의 생명을 빼앗은 내 아이. 울고 싶은 날이 많은 요즘 가까스로 울지 않으려고 버텨가며(왜 이렇게까지 읽어야 했는지는 모르지만)읽는 데 [건너편]을 읽을 때는 더는 참지 못하고 책을 덮고 울어버렸다. 책을 읽은 시간보다 울지 않으려고 발버둥친 시간과 기어이 울음이 터져 눈물을 훔치고 진정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이 걸렸다. 200여페이지. 고작 200여페이지를 읽는 데 4시간이 넘게 걸린 까닭, 장소를 바꿔가며 읽을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심지어 마지막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작품은 이미 읽었던 작품이었는 데도 그랬다.

<건너편>에서 울음이 터진 까닭은 사랑이, 혹은 사람(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사람의 마음)이 변하는 것을 너무나 잘 알아서였다. 타인의 실수와 배신이 안도감을 준다는 것이 무엇인 줄 알아서, 나쁜놈 되기는 싫은 진짜 '나쁜놈'을 알아서 울었다. 그 나쁜놈이 나라서 눈물이 쉬이 멈추지 않았다. <침묵의 미래>는 상상해본 적은 없지만 충분히 있을법한 내용이라 읽으면서 소설가의 역할과 의무에 대해 생각해본 작품이었다. 고로 울지는 않았지만 언젠가 여기에 등장한 어떤 단어들 때문에 이따금 정신이 아득해지리란 것을 알아서 먹먹했다. 누군가가 누군가를 멸종시키기 위해 '보존'이란 명목으로 가두는 것. 언어라는 것이 누군가와의 관계, 저 혼자 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함께 살기 위한 수단인데 우리는 그 수단을 지금 어떻게 쓰고 있는지도 생각해본다. 수단과 목적이 뒤바뀐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는 얼마쯤 행복한지도 생각해본다. <풍경의 쓸모>는 소설을, 한국소설을 많이 접하지는 않았지만 소설집에서 한 번쯤 등장하는 소재라서 새롭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두에 떡하니 발췌문을 올린 것은 순전히 <바깥은 여름>이란 키워드 때문이다. <가리는 손>도 놀랍지는 않지만 결말도 예상되지만 가장 소름끼치는 작품이라서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그야말로 타인의 상실이나 아픔을 스노우볼 저편에서 바라보듯한 현실을 가장 가깝게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다. 마지막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는 지난 번에 읽었을 때도 간단하게나마 감상을 남기려다가 포기했는 데 이번에도 먹먹하지만 뭐라고 활자로 표현할 수 없다. 하지만 이번에는 시리를 불러내지 않았다. 울고 싶은 나날이긴 한 데 지난 번에 읽었을 당시보다는 덜 울고 싶은 때라 그럴 수도 있고 이미 앞의 작품을 읽으며 울어버려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결론, 김애란 작가가 계속 글을 써주면 좋겠다. 왜냐면 계속 읽고 싶으니까. 설사 나를 울리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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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 독서 - 마음이 바닥에 떨어질 때, 곁에 다가온 문장들
가시라기 히로키 지음, 이지수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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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절망의 기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알려주는 책은 없었습니다. -프롤로그 중에서-

 

독서를 통해 위로를 얻었다 혹은 마음이 어느 정도 편안해졌다는 감상을 남길 때가 있다. 하지만 절망의 기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알려주는 책도 있었다. 저자의 말을 부정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동조하기 위해 이 글을 쓴다. 왜냐면 그 단 권의 책이 다름 아닌 성서였기 때문이다. 요약하자면 성서를 제외한 그 어떤 책도 내게 절망의 기간을 어찌 보내라고 말하지 않았고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섣부른 위로도 어려운 그 기간, 감히 같은 인간끼리, 유한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가 서로에게 어떻게 말할 수 있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망 독서>가 맘에 와 닿았던 까닭은 반드시가 아니라 이렇게 한 번이라는 따뜻함 덕분이다. 절망을 바다에 비유했을 때 빠지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기보다는 천천히 심연으로 가라앉는 것과 비슷하다고 말한다. ‘심연이라는 단어를 쓴 것은 지난 해 읽었던 배철현 교수의 <심연>이란 책을 떠올라서였다. 그 책에서는 자신의 깊은 곳을 들여다보라고 권하는데 마찬가지로 <절망 독서>의 저자도 무리하지 말고 찬찬히 들여다보라고 말한다.

 

절망했을 때는 우선 그 절망의 감정에 푹 잠겨야 하고, 지나치게 빨리 극복하려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야만 제대로 된 극복을 할 수 있으니까요. 65

 

종교와 관련된 이야기를 리뷰에 자꾸 언급하는 것이 신앙을 가지지 않은 다른 독자에게, 심지어 이 책의 저자에게도 실례인줄 알면서도 한 번 더 언급하자면 근래 들었던 강론 중에 좌절하는 것이 결코 가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 절망하는 것도 죄, 혹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권장하거나 응원할 만한 일은 결코 아니지만 왜 절망하는지, 왜 그 절망으로부터 쉽사리 빠져나올 수 없는지 절망에 빠진 그 자리에서 찾아내지 않으면 저자의 우려처럼 후폭풍이 무섭게 다가올 수도 있다. 본문에서 인용한 셰익스피어의 말처럼 슬픔은 혼자 오지 않고 반드시 한 패를 데리고 온다는 것을 기억해 두면 좋을 것 같다.

 

절망에 빠졌을 때 라쿠고를 들으면, 처음에는 커다란 웃음소리가 녹음되어 있어서 이런 걸 들을 기분이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지도 모릅니다. 본인은 울고 싶은 기분이니까요. 하지만 점점 위하감이 없어질 것입니다. 라쿠고의 웃음은 절망의 곁으로도 다가와주는 웃음이기 때문입니다. 170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저자가 위로를 얻었던, 충분히 절망의 시간을 누릴(?)수 있도록 몇 권의 책들의 서평이 담겨있는 줄 알았다. 그래서 이전의 유사해 보였던 책들처럼 추천리스트를 만들고, 도서관이나 서점에 들려 그 중 몇 권을 구입하는 작업들로 위로를 구하려고 했었는데 이 책과 나의 리뷰 서두에 밝힌 것처럼 이 책은 결코 저자의 방법 혹은 독서리스트를 답습하라고 쓴 책이 아니었다. 음악을 듣다가, 영화나 드라마를 보다보면 절망의 이유가 다 다르듯 뜻하지 않은 장면, 노랫말에서 우리는 절망을 이겨낼 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추천하고 싶은 책들보다 절망의 기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에 대한 책이라는 말에 동조하지 않을 수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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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의 몰락 - 신자유주의는 어떻게 차별과 배제를 정당화하는가
리사 두건 지음, 한우리.홍보람 옮김 / 현실문화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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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 신자유주의는 어떻게 차별과 배제를 정당화하는가

 

신자유주의라는 키워드를 접할 때면 슬라보예 지젝의 새로운 계급투쟁을 떠올리게 된다. 사실 그 책을 읽기전까지 신자유주의에 대한 사전적인 의미만을 알았을 뿐 실제 역사속에서 신자유주의가 어떤 가면을 쓰고 존재했는지를 알지 못했던 것이다. <평등의 몰락>의 저자 리사 두건은 신자유주의를 두고 다음과 같이 말하는 데 어쩌면 이 책을 통해 저자가 하고자 하는 핵심이라고 생각된다.

 

세계 대중을 위한 평화와 번영의 선구자인 체하지만, 신자유주의적 정책 입안자들은 사실상 특정한 곳에서만 평화를 창조했을 뿐이고, 다른 곳에서는 전쟁을 창조했다. 57

 

이 책의 주된 사건 내용을 세대별 중심사건을 통해 알게된 것도 큰 도움이 되었지만 이 보다 더 큰 도움이 되었던 것은 몇 해 전부터 갑자기 쏟아지듯 출간된 페미니스트 서적들 속에서 중심을 잃고 이 책 저책 읽으며 혼란스러웠던 머릿속을 정리해 해주었다는 사실이다. 사실 게일루빈의 <일탈>처럼 두께에서 사람을 압도하는 책을 성실하게 읽고 다른 책으로 넘어가기란 쉽지 않았다. 그래서 페미니즘의 출발과 선발대 여성들의 일화와 성과는 외울 수 있어도 20세기 전후에 활동했던 페미니스트들의 이야기는 스킵당한 체 근래 활동중인 페미니스트들의 에세이로 넘어왔기 때문이다. 물론 이 책의 여성의 평등만을 논하는 것은 아니다. 신자유주의가 가면을 쓰고 억압했던 것은 자본과 맞물린 불평등이었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발전적 분석들은 어떻게 그 많은 지역 연합, 문화 프로젝트, 민족주의 의제, 경제정책이 불균등하고 종종 예측 불가능하게 갈등과 모순으로 가득 차서 세계 자원의 위를 향한 재분배를 위해 함께 작동했는지를 질문해야 한다. 157

 

이렇게 발전된 분석들이 필요한 까닭은 책의 서두에서 말해준 것처럼 이런 분석없이는 저자가 세속적 신앙이라고 까지 말한 신자유주의가 지금껏 해온 악습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물질적 불평등 만이 공적이고 계급을 나뉘는 것이 아니라 인종, 젠더, 성적 불평등 역시 더 미룰 수 없는 계급불평등이며 공적인 부분이라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배경이 미국사회를 중심으로 쓰여졌기 때문에 과연 이 책의 내용이 한국사회에 얼마나 결부될 수 있을지 의심스러운 예비독자들은 역자후기에 다음의 말을 읽으면 도움이 될 것 같다.

 

이는 마치 두건치 뉴팔츠 콘퍼런스에 대한 공격을 공공교육에 대한 신자유주의 구조개혁의 일환으로 분석했듯이, 한국에서의 성소수자, 이주민, 여성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한국 시민의 관용 부족, 성숙한 시민의식읠 부족, 4은 미개함으로 분리하여 이해하는 것을 넘어서, 자원 재분배에서의 불평등 및 이와 교차하는 젠더, 인종, 섹슈얼리티의 문제로 함께 고민하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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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7월 22일 오후2시.

중림동 약현성당옆 가톨릭대학교 교회음악대학원 최양업홀에서 박승찬 교수님의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삶의 길을 묻다>출간 기념강연회가 열렸다. 다행히 근무가 없는 주말이라 이벤트를 보자마자 신청해두긴 했는데 워낙 유명한 분이시기도 하고, 장소가 성당바로 옆이라 신자분들이 많이 참석하실 것 같아 살짝 조마조마하긴 했다.

 

 

역시나, 강연회장에 갔더니 수녀님도 많이 와계셨고, 특히 가톨릭출판사 가족회원분들도 많이 계셨다. 출판사에서 시원한 생수와 간식을 제공해준 덕분에 강연 내내 과자까먹는 소리가 들리긴 했지만 크게 불편할 정도도 아니었고, 오히려 간식덕분에 오후2시라는 애매한 시간 오히려 강연에 몰입할 수 있었지 않았나 싶다. 출판사에 배려에 그저 감사할 따름.

 

강연내용은 기대하고 갔음에도 불구하고 정말 좋았다.

우선 박교수님께서 방송중에 하셨던 말씀은 가급적 제외하시고 오로지 해당 강연을 위한 준비를 해오신듯했다. 참고사진이나 도표는 물론 출간 기념강연회인 만큼 책에 포함된 자료였지만 방송을 통해 보고 오신 분들도 지루하지 않을 수 있게 준비를 꼼꼼하게 해오신 것 같아 놀랍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다.

 

사실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을 지난 가을 읽었었다.

리뷰참조 : http://happysohh.blog.me/220832451562

(*알라딘 서재에 리뷰를 등록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강연 브레이크 타임에 찾다가 알게됨^^:;)

 

교수님께 사인을 받을 때도 말씀드렸지만 사실 엄청난 감동을 받았다거나 그렇지는 못했다. 리뷰를 다시 읽어봐도 잘몰랐던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에 대해 좀 더 알게되었다는 정도일 뿐 아! 하는 뉘앙스는 없는걸보니 내 기억이 맞는듯. 암튼 그랬던 아우구스티누스 성인과 어머니 모니카 성녀의 이야기가 교수님을 통해 전달될 때는 또 다른 기분이 들었다.

 

강연내용을 정리하자면,

 

하느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모두 다 들어주시는 것은 아니다.

그토록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던 모니카 성녀 역시 모든 기도에 응답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도를 열심히 하면 하느님께서 다 들어주신다고, 우리의 기도보다 몇 배로 돌려주신다고 믿고 있고, 만약 그렇지 않을 경우 크게 낙담하여 어떤 이는 분노하며 주님을 원망하기도 한다. 모니카 성녀님은 어땠을까? 사실 아우구스티누스의 삶도 삶이지만 어머니 모니카 성녀의 삶을 우리의 신앙생활과 비교해보자면 얼마나 부족한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오롯이 내 자신을 위해, 마치 요술램프 지니를 대하듯 주님을 대할 때가 많고, 기도의 횟수와 시간이 응답과 비례한다고 착각할 때도 많았다. 크게 보았을 때 주님께서는 모니카 성녀가 원했던 가장 중심이자 핵심이었던 아들 아우구스티누스가 주님안에 살길 바라던 기도를 들어주셨다. 물론 바로 응답해주신 것은 아니고 20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지만 그 과정 중 어느것 하나 성인이 되는 단계에서 불필요했던 시간은 없었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그런 인간적인 면모 덕분에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에게 애착을 갖는 사람들이 많은 것처럼 그 긴 시간중 어느 한 부분도 주님의 계획에 어긋나있거나 모니카 성녀의 기도를 모른척 하지 않으셨음을 알 수 있었다.

 

또 한가지,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주님을 사랑할 때 우리는 내가 바라는 것을 이뤄주시는 '수단'으로 사랑할 때가 있다. 돈이나 물질은 '수단'으로 사랑하는 것이 맞다. 이웃을 더 돕기 위해, 자연을 보호하기 위해, 돈 자체에 관심을 갖는 것은 수단으로서 사랑해야 한다. 수단과 목적이 바뀌지 않도록, 무엇보다 내 입장에서만 사랑하지 않도록 내가 정말 사랑하는 대상이 무엇인지, 그 대상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생각해봐야 한다는 말씀에도 공감할 수 있었다.

 

 

강연을 마치고 질의응답시간에는 사전에 신청자들의 질문을 받아 진행되었는데 거의 대부분의 질문이 개인적으로도 궁금했던 내용들이라 마치 강연의 연장선처럼 다가왔다. 나의 과거를 되돌아보고, 인생그래프를 그려보는 작업을 해본다던가, 교육자의 입장에서 학습자의 관심이 어디에 있는지, 그들이 정말 학습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연구하고 함께 고민해봐야 한다는 등의 내용들이었다.

 

많은 분들이 사인을 받으셨고, 중간 중간 포토타임도 함께 진행되었지만 사인을 기다리는 독자분들도, 사인을 하시는 교수님도 시종일관 미소를 잃지 않아 분위기 자체가 정말 좋았다. 좋은 강연과 좋은 독자분들이 함께 했던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삶의 길을 묻다>출간 기념 강연회, 날씨와 상관없이 주일을 평화롭게 보낼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알라딘과 가톨릭출판사 그리고 박승찬 교수님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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