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완벽에 가까운 사람들 - 미친 듯이 웃긴 북유럽 탐방기
마이클 부스 지음, 김경영 옮김 / 글항아리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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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완벽에 가까운 사람들



지구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믿음직하고 성공한 사람들을 만나면 인간의 자연의 자연스러운 본능은 오점을 찾고, 엑스레이로 금간 부분을 찾는다. -중략-

북유럽 지역은 우리 모두가 그런 것처럼 자신들만의 문제와 난관, 그리고 비뚤어진 기벽과 약점을 가지고 있다. 537쪽



영화 <카모메 식당>을 보면 핀란드를 떠올렸을 때 자극적이지 않은 음식 '연어'가 떠올라서 헬싱키에 가정식 식당을 운영하게 되었다고 반농담조로 말하는 사치에가 나온다. 그런가하면 '갓챠맨'주제가를 알고 있다는 이유로 자연스럽게 그녀와 동거하고 식당일을 돕게되는 토미, 그리고 나중에는 미도리까지 등장한다. 책 리뷰를 쓰면서 특정 영화의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거의 완벽에 가까운 사람들>의 저자 마이클 부스가 이 책을 집필하게 된 상황이나 그들이 핀란드로 직접 와서 확인하기 전까지 핀란드의 안과 밖의 모습이 조금 달랐기 때문이다. 아내 업고 달리기, 기타소리 흉내내기 등 수십년간 부모의 병수발을 들었던 미도리의 눈에 핀란드 사람들은 여유롭고 걱정이라곤 없을 것처럼 보였다고 했다. 그렇지만 막상 헬싱키에 도착했을 때 같은 일본사람 사치에와 토미를 제외하고 긴밀하게 관계를 맺게되는 여인은 식당을 바라보며 험상궂은 표정을 짓다가 사라지는 리사다. 별걱정 없어보였던 그들도 결국 한가지씩의 고민은 다 가지고 있구나 깨닫기까지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마이클 부스도 마찬가지다.


몇년 전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에서 있을 때 만우절 기사라고 여겨질 만큼 '덴마크가 세계에서 제일 행복한 나라'라고 소개된 것에 전혀 납득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본인이 느끼기에 덴마크는 '축축하고 따분하고 생기 없는 작은 나라'(6쪽) 였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덴마크가 위장을 기가막히가 잘하는 나라며, 덴마크 뿐 아니라, 핀란드,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마지막으로 스웨덴을 포함, 총 5개 나라의 진짜 모습을 책으로 쓰기로 결심한다. 그 덕분에 어렵지 않게, 지루하지 않게 우리가 자연과 함께 하는, 조용하지만 국민들의 삶은 평온 그자체라고 믿으며 유토피아로까지 착각했던 북유럽 5개국을 만나볼 수 있다.



물론 수많은 요인이 합쳐져 국민 정서를 만든다. 내가 지나치게 단순화하고 있기는 하지만, 고립성을 향한 이 같은 편협주의 적 충동과 그에 수반되는 민족낭만주의 성향은 덴마크스러움의 결정적 요소다. 이는 모든 덴마크인이 지금도 외우는 다음의 말로 요약된다.

"밖에서 잃은 것은 안에서 찾을 수 있다." 40쪽


위의 발췌문의 말은 덴마크 시인 홀스트가 쓴 말인데 과거에 덴마크는 스웨덴에게 영토를 빼앗기기도 하고, 1801년에는 영국 함대로 부터 시민 2000여명이 민간이 폭격을 당하기도 했다. 또 1864년에는 프로이센에게 슐레스비히와 홀슈타인을 독일로 넘겨주었다. 여기가 끝이 아니다. 2차 세계대전에는 독일 연합국으로 분류될만큼 독일에게 농산물과 병력까지 지원하기도 했다. 이렇게 수난과 수탈의 가혹한 역사를 가진 덴마크인들의 태도는 순응에서 머물지 않고 위의 표현처럼 좋게 말하면 순응, 나쁘게 표현하자면 퇴화상태로 머물게 된다. 이런 삶이 가능하다는 것이 '세금에대해 불평하지 않는다'는 사실만 봐도 알 수 있다. 심지어 세금을 낮추겠다고 공약하는 정치가도 없다. 이들은 세금을 많이 내는 것이 마치 좋은 집, 좋은 차를 통해 자신의 부를 과시하는 것처럼 여기기 때문이다.



덴마크에 관한 이야기만 적었을 뿐인데 왠만한 책 한권 분량의 리뷰가 나왔다. 심지어 아직 덴마크에 대해서도, 다 꺼내놓지 못했는데도 말이다. 위의 내용을 보더라도 대략 한 나라의 역사를 들려주면서 어쩌다 외부인이 보는 이미지와 실제 모습의 차이가 느껴지는지는 대략 이해할 수 있을것이다. 무엇보다 제목이나 분위기로 보자면 그들의 라이프스타일, 감성적 성향이 주를 이룰 것 같지만 마치 패권의 역사, 스칸디나비아의 청사진을 위한 영국인의 분석으로 느껴질 만큼 진중한 부분도 있다. 그래서일까. 읽다보면 아, 하게 되는 5개국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토미나 미도리처럼 현지에 갔을 때 의외라는 식의 반응은 보이지 않게 될 것이다. 물론 영국인 저자가 아닌 한국인의 시선으로 보면 또 다르게 느껴질 수도 있을거란 가정에 더 큰 기대로 이 나라들을 여행하고 싶어질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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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라시 한국사 - 아는 역사도 다시 보는 한국사 반전 야사
김재완 지음 / 쌤앤파커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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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고 재미있는 역사책, 찌라시 한국사


역사가 재밌구나를 알게 된 게 아마도 서른 이후였던 것 같다. 어릴 때 납량특집으로 해주는 '전설의 고향'류의 사극외에는 잘 안 볼만큼 역사는 곧 지루함, 임기과목이란 공식이었는데 서른 살,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시민을 대상으로 10주 정도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것이 역사의 흥미를 붙이게 된 계기였다. 성적과 무관하게 여유를 가지고 공부할 수 있어서 그랬을 것이다. 그리고 그보다 더 재미있게, 어느 한편으로는 순수하게 국사에 재미를 느끼게 해주는 책이 바로 <찌라시 한국사>다. 드라나 영화로 제작될 만큼 인기있는 역사적 사건도 있고, 처음 알게 된 미스테리한 사건들도 있는 데 들려주는 방식이 조금씩 다르다. 그알못 처럼 사건을 파헤쳐가며 추리소설 분위기를 내는 경우도 있고, 역사속 인물이 화자가 되어 자신의 억울함을 성토하듯 쓴 역사이야기도 있다. 특히 대중적으로 알려진 매체와 비교하며 이해를 돕는 등 저자의 노력이 곳곳에서 느껴졌다.





우선 목차를 보기만 해도 대략 이 역사책이 가진 매력을 느낄 수 있다. 끌리는 제목 중 단연 '어둠의 서막, 연산군 비긴즈'를 손꼽고 싶다. 사실 엄청 불행한 사람이기도 하고, 백성이나 신하의 입장에서 보면 분노할 일이긴 한데 하나의 스토리로서 보자면 연산군은 그야말로 왠만한 히어로즈문에 등장하는 굴곡진 히어로들과 별반 차이가 없다. <극한 직업, 광해의 이복동생으로 살아가기>의 제목도 만만치 않다. <그것도 알고 싶다, '고려 미제 살인사건'>은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된 건데 몽골 사신 저고여의 죽음을 다룬 것이다. 마치 그알못 제작진이 등장한 것처럼 몽골과 고려조정 중 누가 사신을 살해했는지 각자의 입장을 들려주고, 단순히 역사를 전달하는데서 그치지 않고 그 과정에서 진정한 범인은 누구일지 추측할 수 있도록 당시 상황을 전달한다. 물론 역사를 재미위주로만 보는 것은 사실 위험하긴 하다. 언젠가 다른 책 리뷰에서 쓴 것처럼 지나치게 오락성만 강조한 역사공부는 달을 가르키는 손가락만 기억하고 정작 달을 생각하지 못하게 되는 아둔함을 낳기 때문이다. 그런 우려와 달리 책을 읽다보면 저자가 사실에 근거하여 집필한 흔적을 옅볼 수 있다.



저 역시도 역사 문외한 시절이 있었기에, 독자들의 눈높이에 맞는 책을 어떤 역사 전공자보다 쉽게 쓸 수 있다고 자신했습니다. 하지만 스토리 전개는 쉽게 풀어가지만 철저한 고증은 물론이고, 시대를 투영할 수 있는 올바른 역사 정신으로 한 꼭지, 한 꼭지 풀어내려고 노력했습니다. - 에필로그-


정정화 지사와 관련된 내용은 읽으면서 안타까웠던 인물 중 한 분이시다. 바로 앞에 리뷰를 남겼던 <아무도 기억하지 않았다>의 정찬우라는 인물처럼 독립군으로 활동하던 정지사가 전쟁과 분단이라는 안타까운 사건으로 인해 존경은 커녕 이념문제로 조국에서 버림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순서상으로는 <찌라시 한국사>를 먼저 읽었기 때문에 소설을 읽으면서 다시금 마음이 저릿해지기 까지 했다. 위의 저자가 했던 말 그대로, '올바른 역사 정신으로 한 꼭지, 한 꼭지'썼다는 것이 다시금 느껴진 부분이다. 역사를 잘 알아야 하는 이유는 굳이 누군가의 이야기를 빌리지 않아도 다들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시험을 보기 위한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면, 어디까지가 허구고, 진실이 무엇인지 헷갈리고 싶지는 않지만 쉽게 공부하고 싶은 이들에게 <찌라시 한국사>를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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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기억하지 않았다
안재성 지음 / 창비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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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기억하지 않았다 / 안재성 장편소설


안재성 작가의 소설 <아무도 기억하지 않았다>의 중심줄거리는 북쪽에서 교사로서 활동하던 정찬우가 전쟁발발 후 당의 명령으로 인민군과 시민들의 사기를 북돋기 위해 군과 함께 남하하면서 겪게되는 고초를 다룬다. 만주로 유학을 갈 만큼 총명했던 학문 뿐 아니라 민족에 대한 열정과 인성 자체가 바른 인물이었다. 가족과 일부러 헤어진 것도 아니었고 그저 친일파가 권세를 누리는 남쪽에 대해 큰 호감이 없었기에 당에서 명령한 일도 별다른 거부감 없이 수행하였다.


얼마 후 정찬우 일행은 둘씩 짝지어 진주 읍내 중학교와 농업전문학교에 가서 강연을 하느라 바빠졌다. 진정한 민주주의란 남조선식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 북조선식 사회주의이며 남조선의 과거 역사교육은 왕을 중심으로 한 노예사상이라는 내용이었다. 59쪽


왕을 중심으로 한 노예라는 표현이 틀리진 않지만 당의 명령으로 거주지나 직업에 제한을 받는 북조선식 사회주의가 반박할 만한 민주주의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글픈건 왕을 중심으로 한 노예가 현재는 재벌, 돈을 중심으로 한 노예로 바뀌었다는 것 뿐이다. 전쟁 초반에는 북쪽이 우세였기에 군과 함께 다니며 계절음식을 먹는 등 마치 전시상황이 아닌 것 같은 분위기로 이야기는 시작되지만 서울을 지나면서부터 날아드는 총과 유엔과 미군이 하늘에서 뿌려대는 총알에 정신없이 쫓기게 되면서부터 독자인 내게도 전쟁의 참혹한 상황이 전해졌다. 그런 상황속에서 판단이 흐려진 군간부들은 조금이라도 당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즉결처분을 명하는데 그때마다 파리보다 못하게 사라지게 될 생명을 살려낸 것이 정찬우였다. 그가 권력을 좋아한다고는 할 수 없지만 권력을 제대로 이용한다고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하루아침에 민심이 바뀌다니. 우리가 서울에서 보았던 민중들의 표정은 전부 거짓이었을까? 서울역 광장에 모여 있던 의용군은 모두 강제로 끌려나온 이들이었을까? 인민군이 다시 오면 이번에는 또 인민군 만세를 부를 것인가? 103쪽


국군과 인민군의 우열상황에 따라 민심이 변하는 것이 정찬우의 눈에는 배신감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들 민중들 중 하나였을 나의 입장에서는 그저 안타깝고 안타깝기만 했다. 한국전쟁과 관련된 영화나 소설, 실제 전쟁에서 벌어졌던 대량학살 사건을 알면 알 수록 더욱 그랬다. 도대체 이들의 자유는 누가 보장하는가. 그게 권력이든, 사유재산이든 가진자들이 말하는 진정한 자유를 위해 오히려 자유를 빼앗긴 것은 민중이었으니까.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곳이 감방이었다. 자살을 할 수 없도록 위험한 물건을 소지하지 못하게 하고 또 감시하는 곳이 감방이었다. 목숨을 끊기 위한 노력은 살아남으려는 노력보다 훨씬 힘들었다. 221쪽


사방에서 터지는 폭탄을 피해 얼어붙은 시체옆에 눕고 관에까지 들어가야 했던 정찬우에게 '살고자 하는 희망'도 '삶의 포기'도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누가봐도 그의 사람됨이 느껴지지만 전쟁과 남을 짓밟고서라도 살아남겠다고 생각하는 이기적인, 이기적이란 말조차 아까울 정도의 비이성적인 존재들은 포로가 된 그를 가만두지 않는 포로생활 동안 그에게 잠시나마 살고자 하는 의지가 보였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재판을 통해 10년형이 선고받은 그는 다시금 전쟁한 가운데에 서있는듯한 탄식만 남겨졌다.



사실 소설을 읽는 내내 전쟁중에 참혹하게 죽어간 사람들의 상황을 읽을 때보다 박창섭과 같은 비인간적인 것(?)들의 장면이 훨씬 읽기 괴로웠다. 더 답답했던 것은 뻔히 보이는 그런 간교함과 모략을 어째서 북이나 이남이나 제대로 판단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비단 전쟁처럼 목숨이 달린 상황이 아니고서도 충분히 그런 사람들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에 화가나서 도대체 내가 이 소설을 왜 읽으며 화를 내고 있나 싶기도 했다. 그런 생각이 든 순간 이 소설의 제목 '아무도 기억하지 않았다'가 정찬우나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나에게 하는 말이라고 느껴졌다. 이미 지난 일, 내가 어쩔 수 없는 일들에 왜 분노하면서 화를 내고 있을까. 민중들의 변심에 배신감이 아닌 동정심이 생겨난 까닭도 어쩌면 내 삶만 중요하다는 생각, 적어도 박창섭처럼 타인에게 직접적으로 해를 가하진 않았다는 교만이었다. 괴로워도 기억해야했다. 이 소설을 두고 조해진 소설가는 다음의 평을 남겼다.


'이 소설은 잊혀진 전쟁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당도한, 한 사람의 끝나지 않을 오열이다.'


이 울음을 받아낸 소설가의 노고가 헛되지 않도록, 그보다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이 자유를 위해 희생되었을 많은 이들을 위해 기억해야 한다고 나를 타일렀다. 그리고 혹시라도 이 책을 읽기 전, 전쟁소설이 주는 괴로움과 어두움이 두려워 피하려는 당신에게도 권하고 싶다. 고통없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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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7번째 기능
로랑 비네 지음, 이선화 옮김 / 영림카디널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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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HhH>의 작가 로랑비네의 두 번째 소설, <언어의 7번째 기능>은 롤랑 바르트의 죽음의 배후자가 있다는 설정에서 출발한다. <사랑의 단상>이라는 명저를 남긴 그는 1980년 2월 25일 교통사고 난 뒤 한달 후 사망했다. 사고사가 아닌 타살로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과정에서 사고당시 바르트의 지갑이 분실되는 설정이 필요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수사관 바야르(읽는내내 '바야흐로' 와 자꾸 혼동되어서 황당하기도 하고 우습기도 했다.)가 사건을 파헤치려고 시도하지만 기호학자이자 철학자인 바르트와 그의 주변인물들을 철알못(철학을 잘알지 못하는)수사관 혼자서는 무리라 '시몽'이라는 젊은 철학교수를 파트너로 영입한다. 시몽은 영화 007을 기호학적으로 분석하는 강의와 함께 등장하는 데 이때부터 자연스럽게 영화 007과 바야르, 그리고 시몽의 수사과정이 자연스럽게 비교된다. 물론 시몽이 바야르의 직업과 가정환경 등을 분석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마치 셜록을 보는듯한 재미도 누릴 수 있다.


"숫자 00, 더블 제로는 살인 허가를 표시하는 기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숫자의 상징을 뛰어나게 적용한 예를 볼 수 있습니다. 살인 면허를 숫자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끼? 10? 20? 100? 백만? 죽음은 양으로 환산할 수 없습니다. 죽음은 '무'의 상태이며, '무'를 뜻하는 숫자는 바로 '0'입니다. 49쪽


바야르가 수사를 시작하고 처음 만나러 가는 인물은 미셸 푸코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그 푸코가 맞고 이후에는 자크 데리다, 움베르트 에코처럼 이름은 들어봄직한 철학자, 배우들이 대거 등장한다. 어디까지가 사실일까? 바야르만큼이나 철학을 알지못하기 때문에 철학자의 진짜 모습이 무엇인지 의뭉스럽지만 읽다보니 등장인물의 실존여부보다 시몽과 함께 사건을 파헤쳐가는 과정이 더 재미있다.


롤랑 바르트는 죽어가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마도 어머니를 생각했을 것이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115쪽


실제 바르트가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애도 일기>라는 책을 쓰기도 했는데 타살이라고 가정한 이 소설에서는 단연 그런이유가 아니다. 도대체 이렇게까지 철학자를 시작으로 대통령까지 바르트의 죽음에 관여하게 된 까닭은 무엇인가. 책의 제목, '언어의 7번째 기능'을 바르트가 알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법적이고도 주술적인 기능인데 단순히 그 기능을 알았다고 해서 그를 죽음으로 까지 몰고간것이 아니라 그 사용법까지 바르트가 알았기 때문이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기호학'의 역할도 있지만 만약 특정 인물 한사람이 언어의 7번째 기능을 이용하게 된다면 어떨까? 단순히 불필요한 물건을 사들이거나 사기를 당하는 수준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시몽은 구원이라는 말을 믿지 않았다. 지상의 임무라는 말도 믿지 않았다. 하지만 미리 정해진 운명이란 없다는 것을 믿었다. 아무리 변덕스러운 사디스트 소설가의 손에 맡겨졌다 할지라도, 운명은 아직 정해져 있지 않아고 믿었다. 603쪽


신이 마치 언어의 7번째 기능을 이용하는 존재이고, 그런점에서 소설가는 신이나 다름없다고 볼 수도 있다. 아니면 이와 반대로 인간이 언어를 이용하고 해석하기 때문에 인간의 운명을 정해지지 않았다고 볼 수도 있다. 에필로그에 등장하는 다급한 상황에서도 기호학자로서의 학자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상대방을 분석해 위기를 모면하는 시몽의 모습이 바로 이를 증명한다. 


철학자들과 좌파들에게 적대감을 가졌던 바야르가 언어학 관련 세미나에 흥미를 느끼는 등의 변화를 지켜보는 재미도있고, 007의 제임스본드가 영국과 'M'의 총애를 받듯 현 대통령의 지시로 프랑스 뿐 아니라 해외까지 범인을 쫓는 장면과 빈번하게 등장하는 노골적인 성적 표현등은 그야말로 한 편의 영화를 연상케했다. 007 제임스본드와 셜록을 넘나들며 사건을 파헤쳐가는 바야르와 시몽의 활약, 그리고 그들 주변에서 자신들의 장기를 맘껏 표출하는 실존인물과 가상인물들을 마주하다보면 어느새 두껍게만 느껴졌던 600여페이지의 소설이 끝나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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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 교토
주아현 지음 / 상상출판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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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 교토

주아현 지음


한달 정도 한 도시에 머무는 것, 랜드마크를 찾아다니는 게 아닌 그냥 일상생활자로서의 여행은 개인적으로도 정말 좋아하는 여행 방식 중 하나며, 서른을 넘긴 이후 혼자떠난 여행은 최소 보름 이상이었다. 주아현의 <하루하루 교토>는 저자가 2017년 4월 한 달 동안 교토에서 머물렀던 기록이 담겼다. 저자말처럼 교토 여행책은 대부분 역사가 깃든 수학여행같었던 것과는 좀 다르다. 도쿄라고 해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 같다. 어쩌면 그런 이유로 옛스러운 교토의 풍경을 기대했던 이들에게는 아쉬울 수도 있을 것이다.

이곳의 말소리, 책 넘기는 소리, 그릇 소리, 수도꼭지에서 쪼르르 흐르는 물소리, 드르륵 문을 여닫는 소리가 모두 하나의 음악인 듯, 그 어우러짐이 듣기 좋기만 하다. 이 공간 속에는 우리 모두가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조용한 행복의 기운이 흐르고 있었다. 31쪽



저자가 교토에 머무는 동안 매일 같이 방문한 곳은 카페다. 한국에서부터 미리 계획을 하고 찾아간 곳도 있고, 숙소 근처라 우연찮게 들렸다가 뜻밖에 행운처럼 알게 된 곳들도 있다. 어쨌거나 한달 동안 머물면서 카페에 가는 일이 뭐 대수냐 하겠지만,(책에서 저자도 이 부분을 언급했다) 그것이 내가 살고 있는 현지가 아닌 낯선 도시에서의 일과라면 또 다르다. 카페에나가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사람들과 잠시나마 소소한 대화를 나누다가 해가 질 무렵 마트에서 장을 보는 것 만큼 그 도시에서 '생활자'로서의 역할이 또 어디있으랴. 물론 이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한 시간에 한 대가 다닐 정도로 날잡고 가지 않으면 안되는 시골마을을 가기도 하고, 텍스트로 접하는데도 마음이 설레어 올 정도로 가보고 싶은 장소도 등장한다.


가모가와에서 나무와 풀, 물 흐르는 소리에 집중하며 피크닉을 즐기는 순간은 그야말로 천국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중략-

교토에 온다면 이곳을 두 번 이상은 꼭 방문해야 한다. 하루는 가게에 앉아 시간을 보내고, 또 하루는 가모가와에서 커피 피크닉을 해보는 것.

어느 것 하나 놓칠 수 없을 정도로 좋다. 좋다는 말을 수십 번씩 하게 되는 곳. 63쪽

가모가와. 가모가와. 아. 아직 교토를 가본 적이 없는 내게 반드시 가야할 장소로 가모가와를 머릿속에, 마음속에 꼭꼭 새겨둔다. 커피피크닉이라니 생각만 해도 정말 좋다. 그곳에서 저자가 그랬듯 나도 좋다라는 말을 연발하면서 피크닉을 즐길 수 있다면 좋겠다. 혼자였던 저자가 외로워도 외롭지 않다라고 책 곳곳에 적어둔 것처럼 나또한 그럴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게 된다. 저자가 사진을 좋아하고 요리를 배우는 학생이라서 그런지 사진 한 장 한 장이 지나치게 광고사진 같지 않으면서도 그녀의 글과 잘 어울린다. 카페방문이 대부분이라 아이스아메리카노 사진이 많지만 결코 지루하지 않다. 통얼음을 넣어주는 곳, 대접처럼 큼지막한 잔에 담아주는 곳 등 다양하다. 그리고 저자의 말을 빌자면 거의 대부분 맛있다고하니 점점 더 교토를 가고 싶어진다.


흔히들 자신이 살면서 만난 가장 좋은 것들을 인생옷, 인생음식 등으로 표현하는 것처러 이곳은 나에게 인생카페였다. 이 공간이 유별나게 특별한 것도 아니었고, 이곳에 온 지 고작 5분밖에 되지도 않았는데 모든 게 다 좋게만 느껴졌다. "좋다."라는 말을 혼자 몇 번이나 중얼거렸는지 모르겠다. 89쪽


여행에세이는 언제읽어도 좋다. 특히 <하루하루 교토>는 그동안 다뤄지지 않은 장소를 볼 수 있어 좋았고, 여행을 통해 엄청난 걸 깨달았다며 유난떨지 않아서 더 좋았다. 사치스럽다고 느껴지지 않는데도 겸손하게 여행에 있어서만큼은 이라며 전제를 붙이는 소박하며 성실한 저자의 마음이 곳곳에 묻어난다. 그야말로 한 달 간 자신에게 충실한 여행을 하고 돌아온 것이 좋았다. 책으로 출판 할거니까 자랑하듯 쓴 흔적이라고는 찾을 수가 없었다. 아마 그런 저자의 마음이 겉으로도 드러나서 카페주인들이 그녀에게 이런저런 말을 걸고 싶었던게 아닐까 싶다. 교토에 가고 싶은 마음은 한 가득이지만 그 어떤때보다 편안하 마음으로 읽었던 <하루하루 교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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