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도둑 가족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6
고레에다 히로카즈 지음, 장선정 옮김 / 비채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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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 <어느 가족>의 원작소설 <좀도둑 가족>.

제목 모두 '가족'이란 단어가 들어가지만 사실 법적으로 따져보자면 이들은 '가족'이라기 보다는 어쩌다 함께 살게 된 '공동체'에 가깝다. 공동체라고 해야 더 맞을 것이다. 정서적 유대감과 공통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혈연'관계도, 법적으로 부양이나 보호의 의무를 가진 관계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여러가지 의미에서 분명 가족이긴 하다.

 

"사랑하니까 때린다는 말은 다 거짓말이야."

노부요는 삼십년 전 자신의 경험을 떠올렸다. 어조가 어딘가 자신의 엄마를 닮아 있었다.

"좋아하면 이렇게 하는 거야."

노부요는 린을 꼬옥 안아주었다. 뺨과 뺨이 찌부러질 만큼 힘껏 끌어안았다. 136쪽

 

 

위에 올려둔 본문내용은 가정폭력으로 인해 제대로 먹지도 못하는 아이 린과 그의 엄마가 되어준 노부요의 모습이다. 영화 <미쓰백>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았을 것이다. 영화 미쓰백이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어린 여자아이를 보호하게 된 과정을 담았다면 좀도둑 가족은 더 많은 이야기를 내포하고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혹은 사회가 생각하는 '정상적인'관계는 없다. 아이에게 도둑질을 알려주고, 학교를 다녀야 할 딸이 해서는 안되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데도 같이 웃고 위로해주기만 한다. 아이가 올바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돌봐주어야 하는 곳이 가정이라면 이들은 결코 가정이라 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가족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서로를 폭력으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대하기 때문이다. 위의 발췌문을 가져온 까닭도 여기에 있다. 좋아한다면 안아주는 것이다. 지금 상대의 행동이 옳지 않더라도, 설사 그것이 범죄라 할 지라도, 그리하여 세상 모두가 비난하더라도 가족이라면 안아줄 수 있어야한다. 잘했다고 칭찬해주고, 더 나쁜짓을 하도록 유도하는 부분은 분명 잘못되었지만 적어도 사랑한다면, 좋아한다면 남과 다르게 안아줄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쉽게 사랑한다고 말하고 좋아한다고 말하고 네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정작 상대가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갈 때 조차 비난대신, 조언하기에 앞서 꼬옥 안아줄 수 있는지 묻는다면, 혹은 그런적이 있는지 묻는다면 난 자신있게 그렇다고 말할 수 없다.


그때 나는 분명 엄마였다. 욕실에서 내 화상 흉터를 쓰다듬어주던 손길, 옷을 태우면서 한 포옹, 흐르는 눈물을 바라보던 그 아이의 눈, 바닷가에서 잡은 작은 손.

낳지는 않았다. 하지만 엄마였다. 235쪽


낳지는 않았지만 엄마인 노부요. 분명 그녀와 린이 함께 했던 하루하루는 엄마와 딸이었다. 서로의 상처에 아파할 줄도 알고, 그 상처를 딛고 웃을 수 있도록 서로를 꼬옥 안아주었던 두 사람. 리뷰는 노부요와 린의 이야기만을 담았지만 이 작품에 등장하는 가족 모두가 이들의 관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타인의 재산을 탐했다는 것, 아이에게 좋은 것을 가르치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분명 법적인 책임이 따라야 한다. 그런데도 나는 이들이 분명 가족이었다고 생각한다. 잃을 것이라고는 서로밖에 없었기에  서로만 생각하느라 이기적이고 어리석었을지언정 분명 그들은 가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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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에 다리가 하나여도 웃을 수 있다면 - 왜 이리 되는 일이 없나 싶은 당신에게 오스카 와일드의 말 40
박사 지음 / 허밍버드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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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시작은 '개의치 않다'라는 말에서 출발한다. 저자의 말처럼 세상이 워낙 개의한 것 뿐이라서 개의치 않다라는 말이 필요했을 것이다. 동시에 나는 그럼 요즘 무엇에 그렇게 개의하면서 살고 있을까 궁금해지기도 했다. 책 <치킨에 다리가 하나여도 웃을 수 있다면>은 작가 오스카와일드의 어록에 대한 공개적인 뒷말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하긴. 그가 죽고 난 후에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대한 부연이며 감상이니 뒷말이 맞다. 그리고 이 리뷰는 어쩌면 오스카 와일드를 저자 박사가 뒷말 한 것에 대한 뒷말이 되는 셈이다.


삶은 이상하다. 삶은 그토록 몰아붙이면서도 나아갈 길을 마련해놓는다. 극소수를 제외한 이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이해한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속담을 이해한다.


저런 말을 할 수 있는 나이가 되고 보니 정말 극소수를 제외하면 죽기 전까지 죽지는 않는다는 모 신부님의 말처럼 죽으란 법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겠다'싶은 순간 대부분이 사실 실질적인 것보다 감정적인 부분이 많아서 인지도 모른다. 감사해야 할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번 그 감정이란 것 때문에 상처받는 나란 인간은 세상을 향해 조롱을 퍼붓는 오스카 와일드와의 만남이 더 친근하고 절실하게 다가왔다.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한평생 이어질 로맨스의 시작이다.


내가 나를 사랑하는 한, 애인이든 친구든 모든 관계는 부드럽게 오래간다. 느닷없이 교통사고처럼 닥치는 충돌, 사포처럼 신경을 쉴 새 없이 긁어대는 잔소리도 사라진다.



고백하자면 나는 내 자신을 아직까지도 완벽하게 사랑하지 못하고 있다. 작가는 오스카 와일드를 알기 전부터 자기자신을 사랑했고, 자존감이 높다는 점이 비슷하다고 하기에 엄청 부러웠다. 이 두사람의 말이 맞다. 자기자신도 사랑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타인의 사랑을 기대할 것이며, 그것이 늘 의문이면 당연히 언젠가 나를 떠날 것이라는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그것은 단 한 순간도 완벽하게 '사랑'하지도 받지도 못한다는 의미가 된다. 그래서인지 관계의 지속은 가능해도 마지막인사까지 완벽하게 행복했던 적은 드물었다. 설사 아프게 헤어지더라도 내가 나를 사랑한다면 회복도 빠르다. 평생 사랑하며 살고 싶다면 자신부터 사랑하라는 저자의 말에 한숨부터 나왔다. 역시나 상대방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나를 사랑하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말은 나를 사랑하기만 하면 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행복한 사람은 착하다. 그러나 그 역이 늘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어린시절 누가봐도 난 착한아이었다. 남의 것을 탐낼줄도 몰랐고, 타인을 괴롭혀서 기쁨을 느껴본적도 그런 사람들조차 미워할 줄도 몰랐다. 그런나에게 세상이 알려준 답은 '착하면 바보다'였다. 늘 양보하고 배려하는 내가 얼마나 바보같은지 여러차례 느껴가며 어느 순간 나는 착하지도, 그렇다고 현명하게 나쁘지도 못한 상태로 성장해버렸다. 사회에서 '착하다'라고 하는 사람들의 의미는 내가 생각해온 착함과는 거리가 있었다. 저자의 말처럼 행복해야, 마음의 여유가 특별히 나쁜 사람이 아니면 착하게 살 수 있다. 진작에 그 사실을 깨달았더라면, 설사 세상이 내게 착한 것이 바보와 같은 거라는 것을 알려주었어도 그만큼 여유가 있으니 괜찮다고 다독여주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억지로 착한척하려고 힘들게 나를 다그쳤다가 그 노력이 비난으로 되돌아오더라도 견딜 수 있었을것이다. 오히려 오스카 와일드처럼 세상을 향해 여유있는 나 자신을 오히려 한껏 자랑하며 더 착한 모습을 보였을지도 모른다. 어찌되었든 착한 사람이 반드시 행복한 것은 아닌 세상이 안타까운 것은 어쩔 수 없다. 착한 척하는 사람이 행복하지 않을 순 있지만 그야말로 착한 사람은 반드시 행복할 수 있는 세상이 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실 이 책의 저자 '박사'의 책을 처음 읽은 것이 아닌데 이번만큼 공감하면서 읽었던 적은 '처음'이었다. 오스카 와일드가 이토록 멋진 말들을 많이 했는줄 도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된 것도 물론이다. 산다는 것이 쉬운일이 아닌 줄은 이제 알고도 넘칠 정도지만 반드시 어렵고 힘들게 살아야만 하는 것도 아니란 것을 알았다. 오스카 와일드 처럼 완벽하게 자신을 사랑하고, 천재적으로 살아갈 자신은 없다. 하지만 좀 수월하게 견뎌낼 수 있는 방법은 알게 된 것 같다. 치킨다리가 하나여도 웃을 수 있다는 것은 그냥 받아들이라는 의미가 아니었다. 억지스레 그런척 하라는 의미도 아니어서 좋았다. 치킨다리가 하난데 어떻게 웃을 수 있는지 궁금한 사람들, 왜 웃어야 하는지 반문하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읽어보길 바란다. 이에 대한 해답은 물론 인생을 보다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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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셀프 트래블 - 2019-2020 최신판 셀프 트래블 가이드북 Self Travel Guidebook
한혜원.김미정 지음 / 상상출판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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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번 취재 과정에서 도쿄가 알면 알수록 매력적인 도시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 프롤로그-


 


도쿄. 저자가 프롤로그에 적었던 것처러머 소위말해 가성비 좋은 여행지가 다름 아닌 도쿄다. 맛있는 디저트와 라멘처럼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음식덕분에 고생할 일도 적고 무엇보다 아기자기한 소품부터 국내에 들어와있는 무인양품이나 유니클로등의 브랜드를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등 다양한 이점이 많기 때문이다. 그것이 이점이자 동시에 단점이되어 도쿄여행은 뻔하다라는 인식을 갖게 된다. 나 또한 언니 덕분에 10여년 전부터 도쿄는 제주도보다 더 익숙한, 그 만큼 매력이 덜한 장소가 되어버렸다. 그런데, 바로 이 책 <도쿄 셀프트래블>덕분에 나 조차 잊고 있었던, 혹은 처음 접하게 된 도쿄의 매력을 만나게 되었다.



 


일본은 사실 어딜 가나 실패확률이 적다고 생각했었다. 언니가 골라서 데려가주었다는 사실을 간과했던 것이다. 어느정도 익숙해진 후 혼자서 여기저기 다녀본 결과 특별하게 더 '맛있는', 혹은 '멋있는'카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실패확률이 적은 프렌차이즈를 가기 쉬운데 그렇게 가게 된 곳이 내게는 도토루다. 확실히 마트에서 마시는 것과는 차이가 있고 매장도 많기 때문에 굳이 찾아다니면서 고생할 필요가 없다. 맛집을 꼭 가보고 싶은 분들은 대부분 블로거들의 말을 믿고 가는데 국내 맛집과 달리 광고성 리뷰가 없기 때문에 믿음이 가기도 하지만 가이드북, 그것도 최신판을 계속 업데이트 해서 봐야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여행지는 우리가 늘 방문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최신 정보를 확인하지 않으면 가서 허탕칠 수가 있다. 블로거들의 이야기를 믿고 가는 것도 좋지만 만약 해당 매장에 사람이 너무 많거나 혹은 영업중이 아닐 경우 우리에겐 차선책이 필요하다. 그자리에서 검색할 필요가 없다. 최신판 가이드 북으로 차선책을 미리 정해두고 가면 좋다. 가령 해당 지역별 맛집이 소개되어 있기 때문에 굳이 그 매장을 가지 않더라도 소개된 다른 곳을 가보면 된다. 허탕치는 것도 여행의 매력이지만 계획을 세우고 떠난 여행이라면 가급적 루트를 일탈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런가하면 책에서 소개된 추천구매품의 경우는 이미 국내에 다 들어와있어서 큰 의미가 있지는 않다. 물론 이건 상대적인 부분이라 도쿄에 처음 가거나 하는 분들, 드럭스토어가 주 목적인 분들에게는 좋은 팁이다.




긴자. 종종 지인들에게 우스갯소리로 '작은자'는 어디냐고 묻기도 했던 곳인데 처음 도쿄에 방문했을 때는 명품 브랜드의 부티크가 쫙 깔린 장소를 거닐면서 들뜨기도 하고 내가 있을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만큼 거리 양 옆으로 펼쳐진 매장을 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행복한 곳이기도 하다. 그 유명한 다이칸야마의 츠타야를 갈 때도 지나치는 곳이기 때문에 하루 종일 이곳에서만 시간을 보낼 수도 있을정도다.  도쿄여행이 처음이 아니거나, 시간적 여유가 있거나 무엇보다 맥주 에비스를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에비스 맥주기념관을 꼭 추천하고 싶다. 우선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난 후 시음의 기회가 주어지는 데 그 과정이 지루하지 않으니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위치와 운영시간 및 휴무일등 꼭 필요한 내용들이 에 기재되어있다. 그 옆에 있는 에비스 가든 플레스에는 거의 대부분 플리마켓 등의 행사가 있기 때문에 겸사겸사 들려보는 것도 좋다.


 

드라마와 영화등에서 자주 보게 되는 우에노 공원은 벚꽃 길로 유명하지만 사실 어느 때가도 좋다. 근처에 우에노 동물원뿐 아니라 도쿄도 미술관, 국립과학박물관 그리고 다녀온 사람들이라면 다들 추천하는 '국립서양미술관'이 바로 근처에 있기 때문이다. 긴자와 다이칸야마의 하루가 셀럽느낌이라면 우에노 지역에서는 여유있는 문화인의 하루를 즐겨볼 수 있다. 우에노의 자세한 정보도 역시나 책에 잘 나와있으니 꼭 확인하고 방문하길 바란다.



이번에는 디즈니랜드 그리고 디즈니시에 대한 정보에 대해 언급해보자면, 사실 10여년동안 도쿄를 방문했으면서 디즈니랜드 및 시를 가보질 못했다. 미리 티켓을 구매하고 방문하면되는데 어째서인지 가고 싶다는 생각을 못해본것이다. 사실 디즈니랜드의 굿즈를 사기 위해 도쿄여행을 계획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에 비하면 역시나 내게 있어 도쿄는 여전히 가봐야 할 곳이 많은 매력적인 여행지다.



서두에 밝힌 것처럼 가이드북을 보고 있으면 다녀왔던 곳의 대한 추억 덕분에 즐겁기도 하고, 아직 가지 못한 수많은 장소 덕분에 설레기도 한다. 이번에는 저자의 말처럼 내가 알지못하는 도쿄의 매력을 찾기 위해 어느 때보다 꼼꼼하게 책을 보았고, 그만큼 역시나 도쿄는 가보고 싶은 여행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가도 늘 동화속으로 데려다주는 듯한 지유가오카, 츠타야와는 또 다른 매력의 준쿠도 서점 등 도쿄는 언제나 매력적이다. 셀프트래블 도쿄와 함께 2019년, 한 번 더 도쿄의 매력에 빠지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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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에게 아침달 시집 9
김소연 지음 / 아침달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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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났던 날에 너는 매일매일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우리가 어떤 용기를 내어 서로 손을 잡았는지 손을 꼭 잡고 혹한의 공원에 앉아 밤을 지샜는지. 나는 다소곳이 그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가 우리가 우리를 우리를 되뇌고 되뇌며 그때의 표정이 되어서. 


- 다른 이야기 中-


김소연 작가의 시, 산문을 좋아한다. 단어 하나하나가 다 예뻐서 좋아한다. 어려운 말을 자기들의 말로 표현하지 않고 나와 같은 이들도 알아들을 수 있게 해주어서 좋았다. 리뷰의 시작을 시집 <i에게>에 수록된 '다른 이야기'에서 가져왔다. 저 문장을 보는 순간 황정은 작가의 <백의 그림자>속 은교와 무재가 떠올랐다. 폭력적인 세계에서 전혀 그렇지 않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누군가의 사랑보다, 삶보다 더 울림이 컸던 그 두사람의 공원 데이트 장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 이야기가 첫 줄 부터 맘에 와닿았고, 리뷰를 적게 되면 반드시 저 문단을 옮겨오자고 마음 먹었던 것이다. 그 두 사람이 떠오르지 않았더라도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하는 이들이라면, 자신에게 이야기하는 상대방의 표정변화에 마음이 설레었던 적이 있었더라면 저 페이지가, 유달리 특별할 것 없는 저 글이 오래도록 마음을 붙잡았으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글은 어느 한 구석 쓸쓸함이 느껴져서 더 좋았다. 마냥 달콤하지만은 않은, 어느샌가 우리를 일상으로 이끌어내어주는 참 친절한 시인이구나 싶었으니까.



나쁜 음악을 이제는 듣지 않아

나쁜 생각들을 완성하는 데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지

부추를 먹는 동안엔 부추를 경배할 뿐


- 경배 中 -


글을 읽다가 음식이나 식재료를 만나게 되면 침이 고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엄마의 마음과 삶의 애환을 김밥으로 표현했던 누군가의 작품을 읽을 때 조차 가슴쓰림보다 윤기나는 참기름 발린 김밥이 생각나 침 부터 고였다. 위의 작품도 마찬가지다. 시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어리숙한 나는 부추전만 떠올라 괴로웠다. 마음이 괴로워야하는데 뱃속만 괴로웠다. 뱃속을 달래가며 그 다음 문단, 또 다음 문단으로 넘어서는 순간 입에 넣지도 않은 부추전이, 그리하여 뱃속에 들어갈리 만무한 부추전이 속을 아리게 했다. 배앓이 었다. 맛있는 것을 함께 먹었던 '그'가, 혹은 '그녀'가 나에게서 멀어져갈 때의 그 아림이 전해졌다. 누군가를 만나고, 또 그에게 정성을 쏟는 것은 음식과 같다. 정성스레 키웠던 부추가, 그 부추를 또 맛나게 부추전으로 구워냈던 그 정성이 무의미가 되었을 때, '젓가락을 들어 올려 전을 다 먹을 뿐'(같은 작품)이었다.


얼굴은 어째서 사람의 바깥이 되어버렸을까


- 바깥 中 -


첫 줄 부터 말문이 막힌다. 사고의 흐름이 정지해버렸다. 바깥이란 작품명을 보자마자 김애란의 <바깥은 여름>이 생각난다. 그 작품속의 바깥은 타인과 자신의 삶이 마치 마치 안과 밖처럼 분리되어 있는 존재였다. 하지만 김소연 시인의 <바깥>의 바깥은 내면이었다. 자기방어같은 거라고 느껴졌다. 이도저도 모르겠다 싶어서 다시금 첫 줄로 돌아와 물었다. 나의 바깥은, 나의 얼굴은 어떤 표정으로 바깥의 역할을 해주고 있을까 궁금해졌다. 내가 보여주고자 하는 바깥, 내가 보호받고자 하는 바깥은 제대로 그 역할을 해주고는 있는지 의뭉스러웠다.


김소연 작가의 [i에게]는 그 어느 작품집보다 더 많이 다른 작가의 작품들을 떠올리게 했다. 이전까지의 시집이 오롯이 내 안의 나를 들여다보고, 나의 과거를 떠올리며 아파하기도 하고, 쿡쿡 소리내어 웃기도 했다면 이 작품집은 달랐다. 읽었던 책들이, 리뷰도 적지 않고 그저 기억저편의 묻어두었던 작품들을 끄집어 내었다. 직접적으로 나의 과거와 감정을 꺼낸 것이 아니라 아프지 않았다. 마치 아이를 살살 달래가며 이야기를 끄집어 내는 듯한 기분이었다. 한마디로 친절했다. 나의 감정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은 다 커버린 성인이어도 때론 불쾌하기까지 하다. 김소연 시인은 그렇지 않았다. 이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그래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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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듦의 기술 - 단단하지만 홀가분하게 중년 이후를 준비한다
호사카 다카시 지음, 황혜숙 옮김 / 상상출판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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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이 지금까지의 삶 중에 최고의 시간입니다."





위의 내용은 지은이의 말의 시작이며 미국 39대 대통령 지키 카터가 70세를 맞이해 했던 말이기도 하다. (책에 기재된 내용) 최근 유사한 내용을 TV에서도 그리고 가깝게는 가족과 지인들에게서도 듣는다. 다시 처음으로 혹은 20대로 돌아가라고 하라면 절대 못하겠다고. 배우 김희애씨는 모 예능프로 인터뷰에서 열심히 촬영을 했는 데 처음부터 다시 촬영하자고 하는것과 같다면서 젊은시절로 돌아가는 것이 정말 싫다고 했다. 뒤돌아보면 후회되는 일이 없진 않지만 나역시 20대, 그리고 이제 새해가 되었으니 30대로 돌아가라고 하면 사양할 것 같다. 이렇게 말할 수 있다는 것에 당연하게 감사한다. 만약 크게 다쳤거나 엄청난 것을 상실한 상태라면 어떻게해서라도 돌아가고 싶었을테니까. 그렇다면 지금처럼 혹은 지금보다 조금 나은 상태로 나이들 수 있다면 그또한 감사한 일 아니겠는가. 호사카 다카시의 책 <나이듦의 기술>. 책의 주요 독자층은 50세 이상을 중점으로 하지만 나이드는데 남녀노소가 어디있겠는가. 무엇보다 우리 부모님 세대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이 책에서는 인생 후반을 활력 있고 즐겁게 보내기 위해 발상을 전환하는 방식이나 생활 습관을 들이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소개하고자 했다. 이것은 노후를 앞둔 주연이나 이미 노년기에 접어든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되고, 당장이라도 활용할 수 있는 유용한 정보라고 생각한다. - 저자의 말 중에서-





1장 매일이 즐거워지는 마음가짐, 2장 인생의 버팀목이 되는 취미와 공부, 3장 부담 없이 산뜻한 인간관계, 4장 마음을 흩뜨리지 않는 삶의 방식, 5장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건강 관리, 6장 바로 지금부터 행복해지는 방법 그리고 부록으로 엔딩노트까지가 책의 구성이다. 각 기술은 사례와 유명인사들의 명언과 구체적인 방법이 제시되어 저자 개인만의 의견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기술임에 공감이 되었다. 그 중 개인적으로 더 강조하고 싶은 기술들을 골라내어 남겨본다.



  • 정기적인 일정이 생기면 활기가 생긴다  (2장)
  • 도전 자체만으로 활력을 주는 자격증 취득 (2장)
  • 노후에도 할 수 있는 일은 얼마든지 있다 (2장)
  • 자원봉사의 기쁨을 느껴보자 (2장)
  • 동네 이웃들과 인사 이상의 대화를 나누자 (3장)
  • 리드미컬한 운동은 우울증에 효과적이다 (5장)


대학에 입학 하던 해에 부모님께서는 고향으로 내려가서 농장을 시작하셨다. 아버지의 입장에서 보자면 바라던 귀촌이자, 나고 자란 동네이며 친지들과 지인들이 많으니 큰 문제가 없었지만 이제까지 도심생활만 하던 엄마에게는 적응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처음 몇 해는 엄마가 많이 힘들어 하셨다. 그러다가 교회봉사를 시작하고 동네 보건소에서 운영하는 운동프로그램, 적십자 봉사 참여와 운전면허와 상담관련 자격증 취득을 하면서 엄마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우리와 아빠에게 의지했던 많은 시간들을 오롯이 이웃과 사회를 위해, 그리고 자신을 가꾸는데 투자하시게 된 거다. 저자의 말처럼 엄마에게 활기가 느껴지고 우리와 있으면 이전보다 훨씬 풍부하고 재미있는 경험들을 들려주시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엄마 자신이 행복해지니 가족 모두가 이전보다 더 좋은 기운을 나눌 수 있게 된 것이다.



부모가 자식에게 경제적인 지원을 하면 자기도 모르게 시시콜콜 참견도 하고 싶어지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자식의 생활 방식이나 손주들의 교육 방침에는 '노터치'가 좋다. 아무리 '사랑해서' '더 잘됐으면 해서'라고 해도 성장한 자식 입장에서는 조언은커녕 잔소리로 들린다. -144쪽-



나이가 들수록 대부분의 부모들이 자식에게 의존하게 된다. 이때 경제적으로 지원해주는 것은 부모로서 당연한 의무라고 생각하며 결코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나역시 경제적으로 지원해주는 것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 또한 다른의미의 의존이라는 것을 책을 통해 알았다. 위의 기술도 그렇고 자녀와의 관계에 있어서도 그야말로 나이들었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에게 '의지'하거나 관심이 아닌 '참견'을 하려는 것은 옳지 않다.


이 책을 읽으면서 서두에서도 말했지만 비단 노년기 뿐 아니라 모든 세대에게 해당되는 부분이라고 느껴질 때가 많았다. 특히 아직 미혼이거나 결별 혹은 친구가 많지 않아 혼자인 사람이 많은 사람들, 외롭다고 불평하거나 슬퍼하는 이들이라면 다음의 본문을 읽고 스스로 평가해볼 수 있다.


마침 비슷한 시기에 배우자와 헤어져 혼자가 된 지인이 두 사람있다. 한 사람은 "매일 외로워요. 혼자 있으면 불안감도 커져요." 라며 입만 열면 한숨이다. 다른 한 사람은 "혼자라서 자유로울 때도 있어요. 어제도 저녁에 영화 보러 갔다니까요."라며 늘 밝게 웃는 얼굴로 이야기한다. -190쪽-


물론 말은 저리하면서도 속으로는 외롭다고 울부짖을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외롭지 않기 위해 영화를 보러가려는 시도를 하고 스스로 어떤 삶이 더 좋은지 알고 있다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저렇게 대화를 할 때 서로 앞서 읽은 3장 '부담 없이 산뜻한 인간관계'를 가질 수 있고 6장 바로 지금부터 행복해지는 방법과도 연관되어 있다. 타인을 기쁘게 하는 것, 감사의 달인이 되는 것등이 그렇다.





다른 사람과 내 마음을 위한 좋은 습관을 가지고 바른 자세를 갖는 등의 건강관리에 신경쓰는 것과 함께 저자는 '엔딩노트'작성을 권한다. 엔딩노트의 내용은 인적사항 및 재산정도를 구체적으로 적을 뿐 아니라 좋았거나 슬펐던 기억등을 정리하면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또 삶의 엔딩이 찾아왔을 때 유가족에게 남기고 싶은 내용을 적게 되어있다. 이전에 등장했던 유언적어보기 등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부록페이지에 직접 기록해볼 수 있으니 책을 다 읽은 후 리뷰대신 적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본문에 적은 것처럼 엄마를 거의 매 순간 떠올렸다. 귀농 후 힘들어하던 엄마에게 아흔에도 왕성하게 집필활동을 하는 작가들의 작품과 에세이들을 여러권 선물했었던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에게는 큰 부담이 되었을 것도 같다. 그리고 조금은 서운하셨을 것도 같다. 그렇지만 엄마는 멋지게 이 책에 나온 기술들을 읽지도 않고 실천하셨던 것 같다. 물론 많은 시련과정을 거쳤어야 했다는 것이 가슴아플 뿐이다. 부모님의 시행착오 과정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는 책<나이듦의 기술>은 자녀가 먼저 읽고 부모님께 선물해드리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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