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간 아시아 제37호 2015.여름 - 하얼빈
아시아 편집부 엮음 / 도서출판 아시아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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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아시아 2015 여름호는 도시특집 개편 첫 호로 '하얼빈'이 주제였다. 하얼빈하면 함께 연상되는 단어는 '독립운동'정도 였는데 이번호에서 만난 하얼빈은 아픔도 물론 있지만 세계 그 어떤 도시보다 낭만과 서정이 흐르는 도시였다. 동양의 파리라고 불리는 까닭을 적어도 책을 통해서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얼빈 이야기를 나중으로 미루고 우선 아시아에서 소개한 다른 작품과 문인들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이번 호 아시아의 작가에서 만나게 된 문인은 작가 구효서다. [랩소디 인 베를린]을 읽고 한참을 몽환속에 살았던터라 좀 더 각별하게 느껴지는 작가였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그 이후에 출간된 작품은 그런 감동과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못해 아쉬웠었다. 마치 그런 독자가 나뿐이 아니었던 것 처럼 저자가 먼저 말해준다. 2013년 이후에는 자신의 글을 찾는이가 줄어들었다고. 서문에 사르트르를 언급하며 '나는 어떻게 쓰는가'에 대한 물음에 답변하는 작가는 그동안 이렇게도 써보고, 그 다음에는 저렇게도 써 봐야지 하는 변덕부리는 재미로 써 온 것 같다고 말했다. 본인이 재미있다고 쓰는 글이어야지 독자의 재미에 맞춰줄 요량은 없는 것처럼 보였는데 그리 말해주어 다행이었다. 앙드레 지드가 말한 것처럼 한 편의 소설에는 작가의 몫, 독자의 몫 그리고 신의 몫이 있듯 독자의 재미만 살리려고 작가의 몫을 포기해버린다면 소설의 완성도는 한없이 뒤쳐지기 마련이다. 우선 작가의 몫을 제대로 한 후에 독자의 몫도 신의 몫도 제대로 할 수 있지 않을까 싶기 때문이다. 계속해 보겠다는 말을 글의 말미에 적어둔 작가 구효서의 다음 작품을 차분히 기다려 보자고 마음먹었다. 

이번 호에 실린 시 중 국내시인의 작품 중에서는 복효근 시인의 [당나귀를 들어 올리는 법]이 잔잔하면서도 맘에 들었다. 


토끼를 잡고 들어 올리는 법을 안대서

토끼를 들어 올리라는 법은 없다

토끼를 잡아 요리하는 법을 안다고

귀가 긴 짐승을 다 잡아먹으라는 법이 아니듯 


시인도 비평가도 아니라 맞는 해설을 할 줄은 모르지만 마음을 흔든시라는 것은 분명했다. 들어올릴 필요도 없는데 우리는 참 많은 것을 들어올려 보이려고 애쓰며 살고 있다. 누가 묻지도, 부탁도 하지 않은 일들에 우리는 없는 토끼라도 찾아서 들어올리려고 애쓴다. 한편으로는 신이 우리를 내려다 보며 그런 생각이 들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토끼의 귀라는 모양새가 주는 말랑말랑한 느낌이 전해질 수록 엉뚱하게 귀를 잡아 들어올리려고 아득바득 사는 현실이 크게 다가왔다. 그런가 하면 이번 호에서 모처럼 만나게 된 네팔의 시는 평안한 가운데 깨달음이 있었다. 네팔 예술원 현존하는 최고의 원로 시인이라는 마더 기미레의 시는 길지 않은데도 참 좋아 필사를 불러 일으키기 좋았다. 두 작품이 실려있는데 한편은 이웃하지 않고 홀로된 삶의 공허함을 다른 한편은 칸티푸르의 대한 애송시였다. 마더 기미레이외에 다른 시인들의 작품들도 두어편씩 실려있는데 유사한 분위기의 시를 가져온 것인지 아니면 네팔의 대표작품들의 분위기가 서로 닮아있었다. 개인적인 아픔을 닮은 시도, 자연과 삶 그자체가 지니는 원대함을 노래한 시 모두 한몸처럼 아파하고 그 끝은 희망으로 가득찬 듯 보였다. 

에디터가 다른 글들도 그렇지만 특히 볼거리가 풍성하다며 서평 섹션을 에디터프리뷰에서 권하였기에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총 세편의 서평 중 누구나 알지만 누구나 다 이해할 수는 없는 작품, 이상의 [날개]를 리뷰한 찰스 몽고메리의 서평을 꺼내본다. 아시아에서 출간한 바이링궐 에디션으로 읽은 이상의 날개를 한국 포스트모더니즘의 대표작이라고 소개했다. 특히 바이링궐 에디션의 장점으로 작가의 짧은 소개와 작품에 대한 분석과 비평이 실려있어 탁월하다는 평을 했다. 작품 자체로 돌아가면 날개는 다른 많은 서평에서 언급한 것처럼 세상과 단절된 '남성'의 이야기다. 그 남성은 한국 남성을 대표하는 가부장적인 모습 대신 아내의 벌이로 생을 이어가는 나약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인간의 나약함에서 그치지 않고 소설의 끝을 미쓰코시 백화점에서 마무리 함으로써 당시 일본소비문화가 한국에 미친 영향까지 교묘하게 비판한 작품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박영희 시인의 [하얼빈 할빈 하르빈]으로 돌아왔다. 그가 하얼빈에서 처음 마주한 것은 얼후 연주였다. 슬픈데 슬프지 않고, 아픈데 아프지 않았다는 얼후의 음색이 궁금해져 동영상 사이트에 접속해 들어보았다. 영화속에서 많이 들었던 두 줄 현악기의 음색은 악기이름은 낯설지만 소리 자체는 전혀 낯설지 않았다. 저자의 말이 어떤 의민지 하얼빈에 가서 들어봐야 할테지만 소리만 들어도 전혀 모르겠다 싶지는 않았다. 할빈 하르빈 이라고도 불린다는 하얼빈의 지명에 관한 이야기도 나오는데 내용을 간추리면 [흑룡강여지도]에 해서여진 어촌의 본래 이름인 아라진이 하라빈으로 번역, 이후 1899년에 할빈으로 개칭되었다고 한다. 이후 하얼빈을 중심으로 청나라와 일본, 그리고 러시아, 한반도 최초의 '코리안 디아스포라'라 불렸던 고구려 유민들의 이야기까지 하얼빈의 역사를 간략하게나마 일뤄준다. 이어지는 내용은 키티이스카야 거리를 사랑했다는 이효석의 [하얼빈]등 다른이의 글이 일부 발췌되어 있다. 만약 하얼빈 키티이스카야 거리를 걷게 된다면 중앙서점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어느 후작의 고풍스러운 서재를 연상케 한다는 서점 2층에 들러 한권의 책과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여유를 누려보고 싶다고 강하게 느꼈다. 이외에도 시인이 들려주는 하얼빈의 풍경, 역사와 건물이야기가 60페이지 가깝게 이어진다. 문인의 시선에서 보이는 하얼빈 그 이상을 만날 수 있는 '기획특집'다운 분량과 내용이었다.


이번 호가 계간 아시아를 만난 첫 호는 아니었다. 리뷰를 적을 때 마다 어떤 섹션을 넣고 어떤 섹션을 포기해야 할 지 늘 고민이었다. 이번에는 개편된데다 기획특집이기 까지한 하얼빈과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구효서 작가편 그리고 쉽게 만날 수 없는 네팔 시인들의 작품과 서평 그리고 국내 시인의 작품 한편을 소개하는데 그쳤다. 아마 절반도 안되는 분량이지 싶다. 홀로 즐기고 미처 꺼내지 못했던 다른 이야기들은 누군가의 글을 통해 퍼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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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으로 삶을 디자인하라 - 원하는 모든 삶은 웃음 뒤에 있다!
대릴 데이비스 지음, 이선희 옮김 / 시그마북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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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으로 삶을 디자인하라

이 책의 부제는 '원하는 모든 삶은 웃음 뒤에 있다!'이며 타이틀에도 '웃음'이라는 키워드가 들어가 있어 본문을 읽지 않으면 마치 웃음철학, 긍정의 힘을 설파하는 평이한 자기개발서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좀 더 관심을 갖고 나처럼 책소개를 읽고 본문 안에 들어있는 내용 일부를 접한 사람은 예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있음직한 실례와 설명으로 읽어보고 싶은 호기심이 생긴다. 그리고 본문을 읽기 시작한 순간, 왜 타이틀에 삶을 '디자인'하라고 하는 거창한 문구를 집어넣었는지 깨닫게 된다. 책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이 책은 책갈피나 밑줄정도에서 끝나지 않는다. 혹시모르니 나중을 위해 펜보다는 연필, 아니면 지워지는 볼펜을 준비하고 자신을 제대로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그동안 많은 책들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과 웃는 얼굴에 감히 침뱉을 수 없다는 실례를 깨닫게 도와주었다. 하지만 책을 덮고 현실을 둘러보면 여전히 주변에는 속상하고 답답한 일들 뿐이다. 그럴때마다 역시 책과 현실은 일치하지 않는다고 본래의 일상으로 돌아갔지만 이 책이 강조하는 한가지는 바로 내가 웃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바로 나 자신이며, 과연 내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일로 웃을 수 있는지를 직접 찾아보자고 나선다. 그러기전에 좀 전에 말한것처럼 우리를 웃지 못하게 만드는 방해요소를 찾아서 제거해야 된다고 말한다. 방해요소를 그냥 놔두고는 아무리 웃을 만한 일을 찾아내도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책에서는 직장인들이 흔히 하는 생각, 돈을 많이 벌고 싶고 원하는 일을 하고 싶고 잘나가는 누구처럼 자유롭게 시간을 활용하고 싶다고 부러워만 할 뿐 정작 직접적인 노력은 하지않는다. 왜냐면 우리는 온갖 부정적인 생각들에 사로잡혀 실행에 옮기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방해 요인들의 공통점을 찾았는가? 그렇다. '당신의 생각'이다. 당신의 생각이 실행에 옮기는 것을 방해하고 있다. 65쪽

그동안 우리가 책을 아무리 읽고 실천하겠다고 다짐을 해도 여전히 비슷한 류의 자기개발서를 찾아 읽고 이 책까지 읽고 있는 거라면 우리의 방해요소는 결국 우리의 생각이었던 것이 틀림없다. 이것을 두고 자동적 사고라고 하는 데 이부분은 얼마전 읽었던 책 [림비]와 비슷한 부분이 많다. 쉽게 얘기하자면 우리가 어떤 상황에 닥쳤을 때 이것저것 따져보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에 갖고 있던 기억들을 바탕으로 사고해버린다는 것이다. 림비에서도 그런 사고를 고쳐나가지 위한 방법을 제시했듯이 이 책에서도 마찬가지로 이런 사고를 통제할 수 있는 방법들을 제시한다. 이 책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실천' 단계에서 우리가 해야할 일은 넥스트 레벨을 디자인 하는 것인데 이 장에서 특히 연필이 필요하다. 과거의 유년시절 갖고 있던 꿈부터 현재 내가 하고 싶지만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즐거움을 느끼는 일들은 무엇인지 책에 직접 쓸 수 있는 공간이 할애 되어있어 나도 몰랐던 나를 하나 하나 알아볼 수 있다. 물론 우리가 웃을 가치가 있는 삶이란 무엇인지 깨닫는 다고 해서 모든 것을 할 수는 없다. 결국 우리가 노력으로 할 수 없는 것이나 여러가지 측면을 고려할 때 포기해야 하는 부분을 인정하는 일 그리고 현재 우리에게 주어진 것에 감사하라고 적혀있다.

 

기억하라. 당신이 감사해야 할 만큼 직업이 완벽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직업을 바라보는 당신의 시각은 당신의 마음에 달려 있다. 가진 것에 감사하는 자세는 당신이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있도록 돕는다. 그렇다면 당연히 그런 자세를 가져야 하지 않을까? 315쪽

 

이렇게 결말을 맞이하면 결국 이 책도 다른 자기개발서와 다르지 않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천하지 않는 자에게 억지로 손을 잡아끌고 그곳이 학교든 학원이든 혹은 또 다른 단체에 끌고 갈 수 있는 책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거듭 확인 시켜줄 수 있을 뿐이다. 다만 이 책에서 강조하는 다른 한가지는 우리가 너무 쉽게 외면하는 '웃음'의 힘이다. 우리도 노력하면 미셸 제네커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잊지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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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할아버지가 탈옥한 이야기 - 중국 문화대혁명을 헤처온 한 남자의 일생
옌거링 지음, 김남희 옮김 / 51BOOKS(오일북스)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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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할아버지가 탈옥한 이야기

나의 할아버지 루옌스는 문화대혁명 때 반혁명분자로 낙인찍혀 수감된 죄수다. 루옌스란 이름으로 불리지도 못하고 죄수번호 혹은 꼽사리로 불리거나 이따금 라오 루 라고 불렸다. 사막 한 가운데 감시자들도 치통에 시달리고 추위에 버티기 힘들었던 그곳에서 루옌스는 4년을 버텨낸다. 이야기의 시작은 루옌스의 막내 딸이 나오는 홍보영화를 보기 위해 휴가를 얻어내려고 애쓰는 루옌스의 수감시절 이었다. 이야기의 전체 내용은 모두 한번 본 단어는 뇌에 넣고 잃어버리지 않는 천재적인 암기력을 가진 루옌스가 기록한 내용이었다. 4개국어를 할 줄 알고 미국으로 유학을 다녀온 엘리트였지만 그곳에서 배우고 직접 느낀 자유는 중국으로 돌아왔을 때 그의 삶을 사회에서 동떨어지게 만들어주었을 뿐이다. 

루옌스가 미국유학을 가길 원했던 것이 한시적인 자유였다면 그가 수감되었던 시절은 끝을 알 수 없는 자유의 박탈기 였다고 볼 수 있다. 소설을 읽기 전에 이 작품을 원작으로 제작했다는 영화 '5월의 마중'을 보았었다. 영화에서는 루옌스가 수감직전 어떤 사람이었는지 얼마나 많은 것을 누리며 성장했고, 수감시절 얼마나 큰 고통과 인간 이하의 생활을 했었는지 알려주지 않았다. 그래서 책을 읽기 전에 제목이 '탈옥'이라고 붙여진 것이 조금 낯설었고 쉽게 상상이 가지 않았었다. 중국에서 반혁명분자의 위치가 어느정도 인지 짐작은 되었지만 강간이나 살해를 한 범죄자보다 못한 취급을 받을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또한 루옌스와 펑위완의 관계도 좀 의외였던 게 영화에서는 둘의 만남과 사랑이 처음부터 애절하고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서로를 진심으로 좋아하고 있었다. 하지만 소설에서의 루옌스와 펑위안의 관계는 피동적이다 못해 수감되기 전까지 펑위안 혼자만의 짝사랑이었다. 눈물이 주무기였던 새어머니가 자신을 붙들어두기 위해 자신의 조카였던 펑위안을 소개했던 순간부터 루옌스는 얼굴은 미소지었지만 온몸으로 그녀를 멀리했었다. 유학길에 올랐을 때는 물론 귀국 후에도 루옌스는 펑위안에게 마음을 주지 않았다. 루옌스가 직접적인 의미의 자유를 상실하게 되서야 비로소 그녀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고 그녀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탈옥까지 감행하는 용기가 생겼던 것이다. 출감 이후 가족에게 돌아왔을 때 루옌스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냉대와 소외감이었다. 루옌스가 인간이하의 취급을 창살안에서 당했다면 그의 가족들은 그를 정말 잊길 바라는 세월을 견뎌온 것이다. 무엇보다 그의 가슴을 아프게 한 것은 젊은 날의 자신을 힘들게 만든 루옌스만을 기억하고 비로소 자신의 사랑을 깨달은 루옌스를 기억하지 못하는 아내였다.

영화의 중심이 펑위안과 외동딸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끌고 갔다면 책은 루옌스와 그가 쓴 원고를 유일하게 물려받은 손녀딸의 시선으로 이어진다. 어쩌면 원작소설이라고는 해도 전혀 다른 개별적인 작품으로 봐야할지도 모른다. 루옌스가 수감시절 겪었던 옥중기로 봐도 좋았고, 남녀의 사랑이 세월의 풍파속에 어떻게 변화되고 성장해 가는가를 지켜보는 깊은 감동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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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가꾸는 정원 - 흙을 만지고 꽃과 나무를 돌보며 나를 성찰하는 치유와 명상의 정원 가꾸기
자키아 머레이 지음, 이석연 옮김, 제이슨 디앤토니스 그림 / 한문화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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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가꾸는 정원

 신학대학원을 다니며 신학을 공부하면서 불교에서 시작된 명상으로 몸과 마음을 다스리는 독특한 이력의 저자 자키아 머레이. 저자가 우리에게 전달해주는 메세지는 치유와 명상의 정원 가꾸기로 조용한 곳에서 홀로 앉아 즐기는 명상외에 텃밭에서 땅을 직접 한발 한발 내딛으며 실천하는 방법을 제시해준다. 그리고 또 하나 핵심적인 내용은 '가타'라고 하는 짧은 시가 등장하는 데 이 시를 읽으면서 호흡하는 명상법으로 한 편 한편 이야기가 끝나는 글의 말미에 등장한다. 직접 밭위에서 가타를 따라 읽으면 좋겠지만 마치 내가 밭위에 서있다는 상상을 하며 들숨과 날숨을 내쉬어가며 책을 읽었다.

정원을 가꾸는 일은 마냥 힘들고 수확한 이후에만 보람을 느끼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마저도 당장 가꿔야 할 정원이 없는 초라한 내 집을 쳐다보면 한숨부터 나왔는데 저자의 말처럼 머릿속에 가지고 싶은 정원을 떠올려보는 과정, 직접 종이에 그려보는 과정은 묘한 힘을 가져다 준다. 영화속에서 보던 화려하고 넓은 정원이 아니라 직접 가꾼다고 생각하고 지역적, 지리적 특성까지 고려하다보면 꽤나 진지하게 실질적인 정원 계획을 하게 되는 것이다. 우선 재배방법이 크게 어렵지 않고 쉽게 수확물을 거둘 수 있는 작물로 정해야하는 등 계획단계부터 바지런하게 움직여야 한다. 계획이 끝나고 나면 본격적으로 정원가꾸기 과정이 시작되는 데 이때부터는 좀 더 집중해서 책을 읽어야 한다. 왜냐면 우리는 실제로 뽑아내야 할 잡초도 없고, 물을 뿌려 싹이 트길 기다릴 씨앗도 심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심 한복판에서 머릿속의 정원을 떠올리며 가타를 읖조리는 동안만큼은 분명 정원사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고 믿고 싶어진다.


정원에서 마음을 살피며 흙을 파고, 씨 뿌리고, 물을 주고, 잡초를 뽑고, 퇴비를 주다 보면, 내 삶과 정원에 무성하게 자랐으면 하는 씨앗을 뿌리고 거기에 물을 줄 기회가 생긴다. 99쪽


비록 내게는 직접 손을 움직이고 빛을 조절하며 물을 뿌려야 할 정원이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마음속에 자라나길 바라는 몇 개의 씨앗이 분명 존재한다. 불필요한 벌레가 없고, 지나치게 많거나 적은 퇴비나 물이 씨앗을 썩게하며 꽃이 필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은 마음속의 씨앗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우리가 스스로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소중한 선물, 씨앗은 이미 우리 안에 존재한다고 말한다. 정원사와 정원이 한 몸인 것처럼 내가 일으키고 내가 키워낸 주변의 모습들 또한 내가 그렇게 이끌어온 모습인 것이다. 정원을 가꾸듯 마음을 가꾸면 어느 순간부터는 정원이 나를 가꾸기 시작한다고 말한다. 다소 종교색이 짙고 자연에 순응하고 감사하라는 내용이 반복되지만 결국 무언가를 가꾸는 것은 반복과 기다림이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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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이순원 지음 / 북극곰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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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의 첫사랑

 

누구에게나 첫사랑이 있다. 라고 말하지만 과연 그럴까? 아직 진정한 의미의 사랑은 못해본 사람이 많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만약 그 첫사랑이 내가 아닌 타인을 소중하게 간직하게 된 추억이나 감정이라면 동조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이 비록 '사랑'이 아니었다고 해도 말이다.

이야기의 시작은 전업작가가 된 가랑잎초등학교 졸업생 '정수'가 3개월 마다 모이는 동창회에 나가는 장면부터다. 정수의 1인칭 시점으로 이끌어가는 글의 내용은 어린 시절 누구에게나 '첫사랑'으로 기억되는 귀엽고 예쁜 여학생 자현이 등장한다. 화자인 정수에게도 자현은 섣불리 그녀의 불우한 현재를 대화의 화제로는 삼고심지 않을 첫사랑이다. 정수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때는 꽤 오래전이다. 정수라고 부르기도 죄송할 만큼 연배로 치면 부모님 세대인데 그 시절 도시나 시골이나 가정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초등학교가 학력의 전부인 사람들이 많았다. [첫사랑]은 마음속에 아련하게 남아있는 첫사랑에 관한 이야기만 가득하진 않았다. 너무 어릴 때라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친구가 가졌을 속상한 마음과 환경을 원망할 겨를 없이 생활전선에 나와야 했던 괴로움을 짐작도 하지 못했다. 정수는 당시에 헤아리지 못했던 미안함을 마흔이 넘고 술잔을 기울여야 겨우 속에 있던 말들을 꺼내는 친구들이 안쓰럽고 그런 불우한 과거를 딛고 씩씩하게 잘 살아온 친구들에게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을 느낀다. 그런가 하면 강원도 사투리와 관련, 표준어가 아니면 왜 모든 말이 사투리라고 푸대접을 받아야 하는지에 대해, 표준어가 아닌 지방색이 가득한 단어가 갖는 생생한 표현과 의미를 독자가 모른다하여 사용을 자제해 달라는 출판사 직원에게 노골적으로 불편한 기색을 표현하는데 아마도 독자나 다른 출판업자에게 전하고 싶었던 작가의 본심이었을거라 짐작된다. 평소에 고 박완서 작가의 토속적인 단어사용을 좋아해서 그런지 지즈바나 머스마와 같은 표현이 친근하고 글맛을 살린다고 느끼기 때문에 나역시 정수의 의견에 동조할 수 밖에 없다.

어릴 때 받았던 대접이 성인이 되어서도 영향을 미친다고 믿고 있던 은봉의 기대가 무너진 것이 다행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씁쓸할 수 밖에 없다. 미선처럼 성인이 되어 오히려 형편이 나아지는 사람을 볼 때면 어릴 때 받은 대접이 별거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 좋지만 자현의 형편을 보면 차라리 어릴 때 받았던 만큼 성인이 되어서도 그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내 나이도 몇 해만 지나면 정수와 같아지니 새삼 나의 동창들은 어찌 살고 있는지 궁금해지고 그들이 생각했을 때 나란 사람은 형편이 나아진 편인지, 아님 역시나 그때 그대로구나 싶을지도 궁금해진다. 어느쪽이든 그저 정수가 친구들에게 가졌던 그마음처럼 잘 살아주어 고맙다고, 역시 어릴 때 친구처럼 좋은 것은 없구나 하며 함께 밥이든 술이든 시간을 허락해주면 고마울 것 같다. 첫사랑이란 결국 어느 누군가가 될 수도 있지만 그런 마음을 품고 설레었던 과거의 순수했던 추억 그 자체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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