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이순원 지음 / 북극곰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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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의 첫사랑

 

누구에게나 첫사랑이 있다. 라고 말하지만 과연 그럴까? 아직 진정한 의미의 사랑은 못해본 사람이 많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만약 그 첫사랑이 내가 아닌 타인을 소중하게 간직하게 된 추억이나 감정이라면 동조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이 비록 '사랑'이 아니었다고 해도 말이다.

이야기의 시작은 전업작가가 된 가랑잎초등학교 졸업생 '정수'가 3개월 마다 모이는 동창회에 나가는 장면부터다. 정수의 1인칭 시점으로 이끌어가는 글의 내용은 어린 시절 누구에게나 '첫사랑'으로 기억되는 귀엽고 예쁜 여학생 자현이 등장한다. 화자인 정수에게도 자현은 섣불리 그녀의 불우한 현재를 대화의 화제로는 삼고심지 않을 첫사랑이다. 정수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때는 꽤 오래전이다. 정수라고 부르기도 죄송할 만큼 연배로 치면 부모님 세대인데 그 시절 도시나 시골이나 가정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초등학교가 학력의 전부인 사람들이 많았다. [첫사랑]은 마음속에 아련하게 남아있는 첫사랑에 관한 이야기만 가득하진 않았다. 너무 어릴 때라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친구가 가졌을 속상한 마음과 환경을 원망할 겨를 없이 생활전선에 나와야 했던 괴로움을 짐작도 하지 못했다. 정수는 당시에 헤아리지 못했던 미안함을 마흔이 넘고 술잔을 기울여야 겨우 속에 있던 말들을 꺼내는 친구들이 안쓰럽고 그런 불우한 과거를 딛고 씩씩하게 잘 살아온 친구들에게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을 느낀다. 그런가 하면 강원도 사투리와 관련, 표준어가 아니면 왜 모든 말이 사투리라고 푸대접을 받아야 하는지에 대해, 표준어가 아닌 지방색이 가득한 단어가 갖는 생생한 표현과 의미를 독자가 모른다하여 사용을 자제해 달라는 출판사 직원에게 노골적으로 불편한 기색을 표현하는데 아마도 독자나 다른 출판업자에게 전하고 싶었던 작가의 본심이었을거라 짐작된다. 평소에 고 박완서 작가의 토속적인 단어사용을 좋아해서 그런지 지즈바나 머스마와 같은 표현이 친근하고 글맛을 살린다고 느끼기 때문에 나역시 정수의 의견에 동조할 수 밖에 없다.

어릴 때 받았던 대접이 성인이 되어서도 영향을 미친다고 믿고 있던 은봉의 기대가 무너진 것이 다행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씁쓸할 수 밖에 없다. 미선처럼 성인이 되어 오히려 형편이 나아지는 사람을 볼 때면 어릴 때 받은 대접이 별거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 좋지만 자현의 형편을 보면 차라리 어릴 때 받았던 만큼 성인이 되어서도 그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내 나이도 몇 해만 지나면 정수와 같아지니 새삼 나의 동창들은 어찌 살고 있는지 궁금해지고 그들이 생각했을 때 나란 사람은 형편이 나아진 편인지, 아님 역시나 그때 그대로구나 싶을지도 궁금해진다. 어느쪽이든 그저 정수가 친구들에게 가졌던 그마음처럼 잘 살아주어 고맙다고, 역시 어릴 때 친구처럼 좋은 것은 없구나 하며 함께 밥이든 술이든 시간을 허락해주면 고마울 것 같다. 첫사랑이란 결국 어느 누군가가 될 수도 있지만 그런 마음을 품고 설레었던 과거의 순수했던 추억 그 자체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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