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9년 전의 기도
오노 마사쓰구 지음, 양억관 옮김 / 무소의뿔 / 2016년 5월
평점 :
제152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9년전의 기도]는 표제작과, '바다거북의 밤', '문병' 그리고 '악의 꽃'이렇게 4작품이 실려있는 작품집이다. 그 중 표제작인 9년전의 기도는 바닷가 섬마을에서 나고 자란 '사나에'가 중심이 되어 이야기가 시작된다. 마을을 벗어나 도쿄에 살면서 사나에는 캐나다 사람인 프레데릭과 동거중에 케빈을 낳는다. 동거 후 3년동안 아이가 생기지 않자 사나에의 엄마는 '개를 키우면'아이를 갖지 못한다며 키우던 개를 내보내고서야 아이를 얻게 된 주변사람들의 이야기를 꺼내곤 한다. 드디어 3년만에 케빈을 낳게 되지만 어느 날 집을 나간 프레데릭은 더이상 돌아오지 않는다. 여자 혼자 아이를 키우며 살아가기 힘든 세상임을 잘 아는 사나에는 케빈을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온다. 머리색이며 눈빛이 아빠를 닮아 인형같은 케빈의 이야기를 좁은 바닷마을 사람들이 모를리가 없었다. 하지만 케빈의 증상을 아는 사람은 없다. 사나에는 이미 충분히 짐작하고 있을 자신의 부모에게도 그 이야기를 꺼내놓지 못한다. 슬픔에 잠식당한 사나에가 그나마 웃을 수 있는 사람은 특별한 누군가가 아닌 9년전 함께 캐나다 여행을 했던 일행 중 하나인 '밋짱'언니다. 그녀는 사나에보다 나이가 한참 더 많고, 사나에에게 케빈이 있는 것처럼 그녀의 아들도 '불운'한 손길로 인해 평범하지 않은 상태다. 최근에 종영한 드라마 '또 오해영'에서 결혼에 실패한 오해영에게 가장 큰 위로는 괜찮다라는 말이 아닌 자신과 똑같은 경험, 결혼에 실패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었다라고 이야기 하는 장면이 있었다. 마치 자신과 똑같이 평범하지 않은 아들을 키우는 밋짱이 그래서 더 위로가 되고 생각났던 것인지도 모른다.
슬픔은 아직 어슴푸레한 공기 속에서 처음으로 그 모습을 나타내고는 밋짱 언니의 어깨를 부드럽게 쓰다듬고 있었다. 그러나 슬픔이 보여 주는 ㄱ런 위로의 몸짓은 위로받는 자와 그것을 느낀자의 마음을 한층 더 아프게 할 뿐이었다. 66쪽
밋짱언니를 만나러 병원에 가던 날 아침, 가기 싫다는 케빈을 억지로 깨워가면서 문섬의 조개껍질을 찾으러 간 까닭도 어쩌면 밋짱언니에게 주고 싶은 맘보다 사나에가 위로를 받으러 가길 원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곳에서 마치 환영처럼 밋짱언니를 만나게 되고, 케빈을 데리고 떠나는 모습을 보며 사나에는 일순간 큰 감동을 받고 비로소 케빈에게서 해방되었다는 자유를 맛보게 된다. 이 장면을 읽으면서 여러가지 감정이 복잡하게 떠올랐다가 사라졌었다. 평범하지 않은 아이를 키우는 것, 괴로우면서도 놓을 수 없고, 차라리 누군가 데려가주길 바라는 그 심정은 여러 작품을 동시에 떠오르게 했다. 그 작품들에 끝은 결국 버텨내는 것, 그렇게 받아들이는 것 밖에 없었다. 이 작품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결말에 이르지만 새삼 다시금 주변을 돌아보게 만든다. 지금 내 삶의 '케빈'과 같은 존재는 무엇인지, 그 존재는 내 스스로 만들어 낸 것인지 아니면 정말 타의에 의한 것인지 등을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내게 '밋짱언니'는 또 무엇이며 누구인가 하는 생각도 함께 생각하게 만든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