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럼바인
데이브 컬런 지음, 장호연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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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럼바인.

뉴스를 통해 사고를 접할 때 가장 민감하게 받아들여지는 부분이 아마도 ‘사망자수’가 아닐까 싶다. 수십명 혹은 수백명에 이르는 생명이 일순간 사라지기도 하는 이 시대의 어쩌면 13명의 생명을 잃은 이 사건이 그리 크게 다가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범죄자의 연령이 10대인것도 그다지 놀랄일이 아니다. 크게 다가오지 않아도, 그다지 놀랄일이 아닐지라도 아무렇지 않을 수 있는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 리뷰를 통해 고백컨데 이 책 ‘콜럼바인’을 읽기 전까지 내게 이 사건은 거의 잊힌 일이었다. 13명의 안타까운 생명이 자신을 ‘신’과 대등한 위치라고 생각했던 두 사람에 의해 사라졌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는 것은 제2의 에릭과 딜런이 우리 주변에서 함께 숨쉬고 있을 가능성을 전혀 생각하지 못할 뿐 아니라 책임지지 않으려하는 나약한 어른으로 성장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우리가 누굴 위해 울어야 하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울 수 있겠어요?” 한 여자애가 그렇게 말했다. 그래도 울었다. 밤새 울었다고 한다. 아침이 되자 눈물이 바닥났다. 176쪽

총격사건이자 ‘대학살’이 일어났던 그 날, 학생들은 총알이 누구를 향해 있는지 알 수 없었기에 더 공포로 가득찼던 그 날 정확히 어떤 친구를 잃었는지 학생들은 알 수 없었다. 콜럼바인이 가해자였던 에릭과 딜런의 성격을 분석하고, 학살을 ‘왜’일으켰는지에만 주목한 글이라면 난 600페이지가 넘는 이 책을 끝까지 읽을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면 어떤 사건 사고의 범죄자의 의도를 알아주고 싶은 ‘자비’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책은 ‘왜’말고 다른 무언가가 있다는 의미가 된다. 사건이 발생하고 무려 4시간 가까이 학교 안팎에서 대치하던 경찰은 범죄자였던 두 사람이 자살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고, 그 둘이 연관된 사실을 알았던 이후에도 사건을 은폐하는데 더 급급했다. 다시말해 이 사건은 신이 되려했던 한 소년과 신의 능력을 가지고 태어났으나 이를 깨닫지 못하고 신을 외롭게 놔둔 무지한 인간들에게 보복하려는 소년들이 그들의 계획을 실제 이행하도록 놔둔 무책임한 사람과 단체들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책을 읽기 전까지 느끼지 못했던 콜럼바인 사건의 가지는 의미를 전혀 알고자 하지 않았던 나도 무책임하고 무지한 사람들 중 하나였다는 것을 인정하고 나서야 이 책을 집필했던 작가의 의도와 그 험난한 날들을 계속 떠올리며 어떻게든 도움을 주려했던 피해자 학생들과 그 가족들의 용기에 고마움을 가질 수 있었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시간이 지나면 잊고 살아야 한다던가, 어떤 사건은 소수의 진실보다 다수의 ‘평안’을 위해 묻어야 한다는 주장의 이기심을 깨달았다.
콜럼바인 사건은 사이코패스가 우리 주변에 얼마나 가까운 거리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지, 그들을 치료할 순 없어도 적어도 학살을 일으키는 범죄자는 만들지 않을 수 있다는 공포와 잠정적 희망을 보여주기도 한다. 누군가에게 이 책은 사건의 일지가 되고, 사이코패스 등을 포함한 범죄자들을 연구한 정신분석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무엇을 느꼈을지는 독자의 몫이겠으나 적어도 어떤 사건이 일어났을 때 더는 ‘범죄자’의 잔인함과 비인간성만을 욕하며 스스로가 피해자가 될 가능성을 염두하고 두려워만 할 게 아니라는 것이다. 피해자 중 극심한 부상을 입었던 패트릭 아일랜드의 다음의 말이 저자가, 그리고 독자인 내가 다른 독자에게 하고자 하는 말을 대신할 수 있을 것이다.

“총기사건은 이미 벌어진 일입니다. 하지만 그 사건이 저의 모습을 결정하지는 않았습니다. 총격자들 때문에 남은 제 인생이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59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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