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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
이도형 지음 / 다연 / 2017년 6월
평점 :
책을 열심히 읽는다. 그리고 리뷰를 적는다. 그래 딱 여기까지가 지금의 내 한계라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언젠가는 결국 이 한계를 뛰어넘어야 할 시기가 온다는 것을 느끼고는 있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을 만났다. 바로 <사유>의 저자 이도형이다. 너무 잘나서 주변의 권유 혹은 압박에 의해 책을 쓰는 사람도 있고, 자기가 잘난 것을 참지못해 쓰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자기발전과 동시에 '나눔'의 방법으로 책을 쓸 수 밖에 없는 경우도 있는데 이 책의 저자는 후자였다. 그래서였을까. 사실 엄청나게 글을 잘쓰는 사람, 직업적 작가라고 말할수는 없을 것 같다. 아직은 말이다. 하지만 분명 저자가 말하는 두 글자, '사유'를 통해 담아내고자 했던 노력과 책을 쓸 수 밖에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는 의미를 책 곳곳에서 만날 수 있어 좋았다는 사실을 서두에서 미리 밝혀두고 싶다. 왜냐면 어느 누구에게라도 자신의 삶을 꺼내보이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며 특히 내면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용기에 응원을 더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책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질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고 싶었다.
결정을 놓고 혼선을 빚으며 뒤늦게나마 한 가지 깨달은 점이 있다면, 앞날을 훤히 내다보고 모든 변수를 통제한 채 100퍼센트 확신에 찬 그런 '완벽한 결정은 애당초 불가능한 것'이라는 사실! 그것은 제가 얻은 또 하나의 평범한 진리였습니다. 24쪽
선택을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나이들면서 깨닫게 된다. 그 선택이 옳고 그런지, 잘하고 잘못했는지는 결국 마음가짐에 있고 책임을 지기위한 노력여하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저자의 말처럼 과연 100퍼센트 확신에 찬 그런 완벽한 결정이 있을까. 간혹 성공한 사람들의 다큐나 인터뷰를 보면 아주 당당하게 자신의 결정에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라는 장면을 마주할 때가 있다. 그들이 거짓말을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그들이 확신했던 것은 그 결정이 아니라 그 결정에 책임을 지기 위한 각오가 확실했던 것은 아닐까 의문이 생길 뿐이다.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았지만 마음속에선 어느 하루도 말끔히 정돈되지 않은 채 세월만 자꾸 흘러갔습니다. 그리하여 일상을 성찰도 할 겸 그리고 무슨 글 하나 쓰려면 엄청나게 밀려오는 글쓰기 공포로 부터 조금이라도 자유로워지고 싶어서 글쓰기 훈련의 일환으로도 일기 쓰기를 시작한 것 같습니다. 105쪽
40대 초반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는 저자. 매일같이 쓰던 일기, 혹은 스케쥴러를 지금은 거의 적지 않고 있다. 업무상 반드시 기억해야하거나 그런 일들은 휴대폰 일정에 입력해둘 뿐 아주 간혹 기록해두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날들을 제외하고는 쓰지 않던 내게 일기를 다시 쓰게되었던 저자의 계기가 마음에 와닿았다. 주변에서 '나 치매인가봐'라는 소리를 종종 듣곤 한다. 자주 깜빡한다며 나이탓을 하는 또래들도 적잖이 많았다. 어쩌면 우리는 정리할 시간도 없이 자꾸 새로운 것,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만 기억하려고 하기 때문에 그런건 아닐까 싶었다. 일기를 쓴다는 것은 하루를 정리하는 것 뿐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어쩌면 삶 자체를 차분하게 정리해가는 사소하지만 중요한 작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를 방문하면 유난히 마음이 안온해지고 몸과 마음이 일시에 깨어나는 듯한 느낌을 주는 곳이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성향이나 느낌에 딱 맞는 장소를 발견하면, 그곳을 좋아하며 자꾸 찾아갑니다. 287쪽
<사유>를 초반쯤 읽었을 때는 이 책이 왜이렇게 편안하게 다가올까, 한 개인의 사유인데, 그가 살아온 내면의 이야기인데 주옥처럼 와닿는 부분도 있지만 지극히 사적이라 이런 이야기까지 내가 읽어야 할까 싶을 때도 있지만 책을 끝까지 읽게만드는 힘은 다름아닌 저자의 겸손과 '경어체'덕분이었다. 근래 읽었던 재미나게 읽었던 에세이들은 내용 자체는 나무랄데 없고 공감이 깊어 눈물도 났지만 그 시간들이 '편안'했다고 말하긴 어려웠다. 그런데 사유는 달랐다. 유년시절 동화를 읽을 때처럼 그런 편안함, 아주 단순하고 사소하지만 저자의 경어체가 맘에 들었다. 업무상 상대를 존중해야하지만 반대로 존중받기는 어려운 입장에 놓이다보니 책에서 만나는 이런 친절한 말투에 마음을 빼앗겼던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이 좋고 저자의 겸손하고 독자를 배려하는 듯한 마음이 좋아 자꾸 찾아가고 싶어 서두부터 다음 책이 꼭 나오길 기다린다는 말을 했던 것이다. 이 편안한 마음을 다른 독자들도 함께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