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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미술이 아니다 - 미술에 대한 오래된 편견과 신화 뒤집기, 개정판
메리 앤 스타니스제프스키 지음, 박이소 옮김 / 현실문화 / 2011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미술사를 공부하려 할 때 우리가 가장 먼저 펼쳐보는 책은 E.H.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일 것이다. 두꺼운 책에 보기만 해도 책 속에 있는 모든 내용이 읽기만 하면 내 머릿속에 들어오고, 완독 후 전시장을 방문하면 누구의 작품이라도 다 이해될 것만 같은 기대가 생기는 책. 하지만 안타깝게도 난 여전히 그 책을 완독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 책, <이것은 미술이 아니다> 덕분에 대략적으로 미술이란 어원의 시작과 변천사 혹은 현대이론에 가까운 이론이 정립되는 과정을 살펴볼 수 있었다. 중간중간 비평가와 작가들의 명언은 덤으로 얻어가면서 말이다. 미술사 어느 책을 들여다보더라도 고대 비너스 작품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사실 그 시대의 비너스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여체의 아름다움이나 작가 개인의 취향 혹은 창조성을 바탕으로 창조된 '예술' 혹은 미술 작품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한마디로 이것은 미술이라고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주술적인 의미가 담겨 있을 수도 있고, 비너스의 풍만한 라인은 다산, 여성이라는 아름다움이 아닌 생존 혹은 번식력을 위한 바람을 담은 성물이라고 볼 수 있다. [스펙타클 사회]를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살아 있는 경험을 온갖 형태의 '재현'이 대체하고, 그 이미지들은 사회생활의 모든 면에 개입하며 시민들은 대중매체의 수동적 소비자로 전락시킨다'란 말처럼 미술은 창조자가 어떤 대상을 끊임없이 자기만의 방식으로 재현한다고 볼 수 있다. 딘큐레는 작품 <모든 것은 재현이다>를 통해 미술 뿐 아니라 취미나 가치관 혹은 일생생활 전부를 재현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예술은 누구나 할 수 있거나 현재 모두가 하고 있는 것이라고 봐도 될까? 예술이라는 어원의 변천과정을 통해 이해해보자면, 처음 예술 혹은 미술은 일상예술까지 포함하거나 다빈치의 경우처럼 지식의 한 방향으로 보기도 했고 천체술, 광학술 등 기술적인 분야까지 순수예술항목에 포함되기도 했다. 현대에 이르러 학자라고 부르는 사람이 17세기 이전에는 예술가였던 셈이다. 안타까운 사실은 불과 100여년 전까지만 해도 창조자가 예술가던, 기술자던 그들은 모두 '남성'에 한해 명명되어졌다는 점이다. 심지어 여성 화가가 유명했던 19세기조차 여성작가들에게는 누드가 금지되었다는 것만 보더라도 그 차별이 어느정도 였는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누드화를 통해 전문 예술인의 경계를 넘어설 수 있는 과정이었음에도 그랬다는 것은 저자의 말처럼 여성예술가의 삶이 얼마나 힘겨웠는지 단면적으로 보여준다.
창조자의 삶이 저런 과정을 거쳤다면 비평가 혹은 취미 또는 취향으로 미술을 바라보는 관람객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아카데미 제도만 보더라도 현대의 작가들이 자신의 의지대로 작품을 창작하는 것과는 달리 17세기 초까지만 하더라도 창작자들은 궁중 혹은 귀족의 요구대로 작품을 그렸다. 성화가 교회의 무대배경이자 장식이기에 미술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 뿐 아니라 자발적 창조품이 아니라는 점에서도 미술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볼 수 있다. 요청에 의해 창작된 작품, 그 작품을 감상하는 이들의 직업은 계급과 지위가 높은 이들이었다. 19세기까지만 하더라도 이는 변함없는 사실이었고, 취미란 그 사람의 직업과 신분을 나타내주는 지표이기도 했다. 물론 이런 상황에서도 창작자들은 특별한 능력, 즉 천재성을 부여받았다고 여겨졌다. 하지만 여전히 인류의 절반인 여성 역시 천재성을 부여받았다는 사실은 부정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배경 때문에 사진기술이 발달하기 시작하면서 회화가 아닌 사진분야에 여성들의 참여가 높아졌는데 이는 차별적인 것도 있지만 직접적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게 되는 회화보다 화화적인 중간과정을 거치는 사진이 덜 직접적으로 느껴진다는 여성작가들 스스로의 의사도 반영 된 셈이다.
과거에 이르러 현재까지 미술 혹은 예술을 이야기할 때 지금까지는 미술사에 등장하는 모든 작품을 '예술작품'이라는 장막으로 가린 뒤 무조건 신비롭고 고귀한 것으로만 바라보았던 내게 <이것은 미술이 아니다>는 무엇이 '미술'이며, 도대체 '미술'은 무엇인가에 대한 자조적인 고민을 던져준 책이다. 끝으로 책을 읽는 내내 왜인지 모르게 머릿속에 계속 맴돌았던 피카소와 관련된 이야기를 올려본다.
내가 소년이었을 때 어머니는 내게 약속했다.
"만약 네가 선원이 된다면 선장이 될 것이고, 정치가가 된다면
대통령이 될 것이고, 신부가 된다면 교황이 될 것이다."
그런데 난 예술가가 되기로 결심했고,
결국 피카소가 되었다. -본문 12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