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소의 온기 - 내가 먹은 채소에 관한 40가지 기억
김영주 지음, 홍명희 그림 / 지콜론북 / 2017년 4월
평점 :
절판


​채소가 따뜻하다는 사실을 알려준 책, 채소의 온기

언어에도 온도가 있다는 이기주의 [언어의 온도]를 읽은 후로는 '온도'라는 단어자체에 조금 민감해져 있기도 했고, 나는 과연 타인에게는 둘째치고서라도 내 자신에게는 어떤 온도로 살아왔는가 깊게 생각해왔던 요즘이다. 사실 뜨근한 오뎅국물 한 모금에 꽁꽁 얼어붙은 마음이 녹는다는 생각은 이전에도 했었다. 하지만 채소는 어떤가. 아삭아삭 씹히는 오이와 싱싱할 때 한입 베어물면 달큰한 향이 입안 가득 퍼지는 당근등을 떠올리자면 채소의 온도는 늘 '시원함'이었다. <채소의 온기>의 작가 김영주 작가는 그런 좋았던 기억들이 다름아닌 따뜻한 온기를 안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독자인 나는 못이기는 척 저자의 손에 이끌려 채소와 관련된 따뜻한 기억을 떠올려보았다.


평온한 일상에 실련이 주어지듯, 너무 매운 고추를 잘못 먹고 찔끔 눈물 흘리는 날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인생은 가끔 이 매운맛이 있어 견디고 즐기면서, 또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88쪽

위의 문장은 저렇게 떼어놓고 보면 마음에 확 와닿지만 저 말보다 더 공감했던 것은 저자가 자취했을 때 고춧가루와 관련된 일화를 들려준 부분이다. 사실 자취를 시작하고 마트에 가서 고춧가루 가격을 봤을 때 나도 엄청 놀랐었다. 차라리 라면을 사서 스프를 꺼내 활용하는 편이 경제적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그래서 독립한지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단 한번도 내돈으로 구매해 본 적이 없는 양념이 고춧가루다. 저자는 언젠가 직접 고춧가루를 해서 보내드리는 날도 오겠지 하며 여운을 남겼지만 난 그냥 용돈을 챙겨드리는 쪽을 택하기로 했다. 지난 가을 고추를 말리는 수고가 어느정도인지 간접 경험을 해봤기 때문이다.



 


-본문 중간중간 혼자 or 함께 분량에 따른 레시피가 귀여운 고양이 일러스트를 만날 수 있다.-




책을 읽으면서 위의 경우처럼 공감하고 따끈따끈한 추억을 끄집어 내기도 했지만 '생강'처럼 괜시리 뜨끔거릴 때도 있었다. 저자의 말처럼 생강이 채소인건 너무나 당연한데도 생강도 채소라고 하면 새삼스럽다. 서문에 언급한 것처럼 채소라하면 오이, 상추, 당근, 토마토처럼 날 것으로 아삭아삭 씹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생강은 몸에 유익한 성분도 많기 때문에 오이먹듯이 목이 마를 때 씹어먹는다면 어떨까 생각하다가 갑자기 입안에서 강한 생강향이 나는 것 같아 책을 읽다가 혼자서 당황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역시나 목이 아프거나 감기 기운이 있을 때면 맨 처음 떠오르는 것이 감기약보다 생강차인 것은 부정할 수가 없다.



시금치를 생각하면 뽀빠이가 떠오른다는 저자의 말에 은근슬쩍 나와 같은 세대인 듯한 묘함 친근감을 느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친근감을 갖게 된 것은 헌 책을 팔아 장을 보았다는 내용이었다. 내게도 전재산이 오로지 책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이렇게 말하면 엄청 가난하고 형편이 어려웠구나 싶겠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렇게 책을 팔아 산 돈으로 식재료를 구입하고, 요리라 할 만한 건 못돼지만 제법 입맛에 맞을 때 느껴지는 묘한 행복감을 느껴본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반가웠다. 저자에게 시금치 무침이 그런거라면 내게는 달래무침이 그랬다. 저자의 달래무침 이야기도 책에 수록되어있지만 유사한 에피소드가 시금치편이라 해당 이야기를 언급했다.


채소를 먹으면 몸에 활력이 느껴지고, 기분 좋아지곤 했습니다.

아마도, 수많은 채소와 관련한 기억과 추억, 그리고 맛있는 채소 요리를 나누었던 사람들의 온기 덕분일 겁니다.


여러분의 채소는 어떤 기억을 가지고 있나요? 254쪽



사실 읽다보면 다들 알겠지만 30대 초중반 혹은 이제 막 독립을 시작해서 채소 하나하나 맛을 알아가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라도 저자의 이야기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나처럼 다른 채소지만 추억이 같을 수도 있고, 같은 채소에 같은 기억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저 건강하고 시원하기만 했던 채소가, 그 채소들의 기억들이 지금의 나를 얼마나 따뜻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깨닫느냐 일 것이다. 채소의 온기. 이 온기를 일단 한 번 느끼게 되면 쉽사리 헤어나오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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