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
가쿠타 미츠요 지음, 박귀영 옮김 / 콤마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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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그러니까 하나하나가 다 이어지는 거야. 생각해 보니 재미있네. 당신한테 프로포즈를 못 받아서 뭔가를 해 보자는 결의가 생기고, 다음에 만난 사람한테 요리를 못한다는 타박을 받아서 어디 한 번 봐라 하고, 다 이어져 있던 거야. 하나가 없으면 다음 하나도 없고, 또 전혀 다른 데로 흘러가기도 하고. 171쪽

총 여섯 편의 단편이 수록된 가쿠다 미쓰요의 <평범>. 사실 첫 번째 작품을 읽고서는 '불륜'을 동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 불쾌해 읽다가 멈추고 며칠을 다시 펼쳐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무리 배우자가 형편없더라도 폭력으로 이혼을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면 충분히 결혼생활을 끝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편이 무능력해서, 남편도 바람을 피니까 라는 비겁한 변명으로 똑같이 행동하는 것에 대해 조금의 동정심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첫 번째 작품은 친구의 불행한 결혼생활이 조금이라도 위로 받을 수 있다면 설사 그것이 불륜일지라도 어느정도 이해해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후미코가 제일 나쁜 사람처럼 느껴졌다. 다행히 후미코의 남편 마사토시의 생각은 나와 유사했기 때문에 저자의 생각이 후미코와 반드시 같지는 않겠구나 싶었고 그런 생각으로 두 번째 작품을 다시 읽기 시작했을 때 마지막 작품까지 다 읽을 때까지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었다. 흔히 이런 표현은 장르가 추리 혹은 스릴러일 때 해당되겠지만 사실이 그러했으니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만약 그 사람과 결혼하지 않았다면, 그때 차라리 이혼했더라면 하는 식의 가정이 기혼자들이 하는 생각이라면 반대로 마흔이 되도록 결혼하지 않은 나와 같은 사람들은 그들과는 조금 다르게 '그때 그냥 결혼했더라면'이라던가, '끝까지 매달렸더라면'식의 가정을 하게 된다. 만약이라는 가정은 비단 결혼과 관련된 부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읽으면서 마음이 참 아팠던 마지막 작품 <어딘가에 있을 너에게>처럼 소중한 친구나 가족을 잃었을 때 하게되는 '만약'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아침밥을 먹여보내기 위해 몇 분 늦게 출근한 아들이 사고로 죽었을 때 수천번 혹은 수만번 자신을 책망하고 만약이라는 가정을 해야했던 '요다'의 사연은 앞서 등장했던 그 어떤 '만약'과는 결코 비교할 수 없는 아픔이었다. 아마도 그랬기 때문에 마지막에 실려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당신이 그와의 헤어짐에 가슴아파도, 그때 이루지 못했던 꿈 때문에 절망스러워도 자식을 잃은 것 만큼은 아닐테니까 말이다. 헤어진 연인에게 잘 보이기위해 행복한 척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한 선택을 후회하고 싶지 않아서 행복한 척하는 <오늘도 무사 태평>의 사토코의 모습은 SNS를 열성적으로 하는 사람들이라면 여러가지 생각을 떠올리게 했을 것이다.

​지금의  나와는 전혀 다른 곳에 있을 무수한 '나'에게 행복한 나를 보여야 했다. 불행해졌으면 하는 것은 아사히가 아니라 아사히와 함께해 온'만일'에 멈춰 서 있는 또 하나의 나다. 134쪽

SNS를 하는 이유가 순수하게 타인과 정보를 교류하고 싶어서일까? 아니면 오늘 하루 내가 이렇게 행복하게 잘 살았음을 자랑하기 위해서일까? 자랑한다면 사토코처럼 또다른 자신에게? 아니면 타인을 향한 허세일까? 작품의 순서가 절묘하게 배치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 작품에서 불륜에 관해 이런저런 생각을 갖게 하고, 두번째 작품<달이 웃는다>에서는 어찌보면 제법 무거운 주제가 될 수도 있는 '용서'에 대해 이야기하고 다시 세 번째와 네 번째 작품은 결혼에 관한 이야기로 이어지다가 다섯 번째 작품이자 이 소설집의 표제작 <평범>에서는 과연 '평범'한 삶이 축복인지 저주인지 생각해보게 만들기 때문이다. 읽다보면 만약이라는 가정에서 쉽사리 벗어나지 못했던 '자신'을 한없이 위로해줄 뿐 아니라 설사 앞으로도 계속 지긋지긋한 '가정법'을 버릴 수 없어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아들을 잃은 요다가 그렇지 않은 또다른 자신의 모습을 친구처럼 떠올리듯 좀 유연하게 살아도 괜찮을 것 같다. 그리고 그 또한 평범한 삶의 일부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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