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결이 바람 될 때

숨결이 바람 될 때 - 서른여섯 젊은 의사의 마지막 순간
폴 칼라니티 지음, 이종인 옮김 / 흐름출판 / 2016년 8월

책을 읽을 때 저자의 생존 여부를 고려하는 사람이 흔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책 소개에 가장 먼저 작가의 죽음을 언급한다면 읽기도 전에 왠지모를 미안함과 부담스러움에 주저하게 만들기도 한다. [숨결이 바람 될 때]라는 책도 사실 그랬다. 서른 여섯이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저자 폴 칼라니티의 이야기가 왠지 하루하루 치열하게라기 보다는 적당히 즐겁고, 적당히 행복하게 사는 내 입장에서는 책을 읽다보면 너무나 미안해서 그렇다고 하루아침에 그에대한 미안함으로 가열차게 살 수도 없을 줄 뻔히 알면서 읽기가 민망했던 것이다. 하지만 먼저 책을 읽은 추천인들의 글에 마음이 흔들렸다. '문학'을 전공한 의사라니! 한국의 현실을 보면 의사가 되려면 적어도 중학교 때부터는 밥먹고 자는 시간만 빼고 공부해도 될까말까 한 직업이 아니던가. 그런데 문학으로 석사학위까지 받은 사람이 의사라는 점이 독특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굳이 이 이야기를 길게 적는 이유는 나처럼 미리부터 겁먹고 이 책을 안 읽는다면 정말 좋은 책을 놓치는거라고 말해주고 싶기 때문이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의학이 아닌 문학이 우리의 정신적 삶을 더 잘 설명해줄 수 있다고 말한다.

뇌의 규칙을 가장 명쾌하게 제시하는 것은 신경과학이지만 우리의 정신적인 삶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것은 문학이라는 내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50쪽

이야기의 시작은 저자 폴이 몸의 이상이 나타나면서 암이 아닐까 의심하면서도 보통의 환자들처럼 설마 하는 생각으로 전조증상이 나타났음에도 불구하고 본격적인 검사와 치료를 받지 않았던 때부터 이야기한다. 의사들도 암에 걸린다는 말이 아이러니하게만 들렸는데 생각해보니 의사도 진단을 받기 전까지가 의사며, 직업이 그럴 뿐 죽음이 두렵기는 마찬가지다. 이야기는 바로 투병생활로 넘어가지 않고 폴이 의학을 공부하게 된 계기를 들려준다. 역시나 의사였던 아버지와 삼촌 형때문에 오히려 의학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던 그가 문학석사까지 받고서 의학으로 전향한것은 실질적으로 인간의 뇌를 연구할 수 있고 이롭게 할 수 있는 '행동'을 할 수 있는 학문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투병과 생존여부를 아예 망각하고 읽는다면 분명 웃음도 나고 다시금 대학생활을 하고 싶다는 생각고 들 것이다. 하지만 그 좋았던 이야기는 2부에서 그의 투병기를 들려주면서 내가 우려했던, 치열하지 못함에 대한 미안함이 찾아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의 투병기는 미안함만 던져주기만 하지 않았다. 삶 그자체에 대한 소중함과 죽음을 맞이할 때 '끝'이라고 단정지었던 그동안의 편견과 오해를 풀어주었다.

네가 어떤 존재로 살아 왔는지, 무슨 일을 했는지, 세상에 어떤 의미 있는 일을 했는지 설명해야 하는 순간이 오게 된다면, 바라건대 네가 죽어가는 아빠의 나날을 충만한 기쁨으로 채워줬음을 빼놓지 말았으면 좋겠구나. 234쪽

세상을 떠나면서 그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기쁨을 딸 덕분에 느낄 수 있었다고 말해주는 아빠를 케이디만이 가진 것은 아닐 것이다. 언제고 세상의 모든 아버지 다운 아버지들은 딸들에게 폴이 하고 싶었던 말을 해주고 싶었을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치열하게 살지 못한 미안함 대신 오히려 적당히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나라서 다행이란 생각을 갖게 해줘서 그저 고마울 뿐이다. 그는 이제 세상에 없지만 그가 바라던 대로, 믿었던 대로 그가 남긴 '문학' 작품이 우리의 삶을 더 행복하게 해줄 것이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