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미술관 - 그리고 받아들이는 힘에 관하여
강상중 지음, 노수경 옮김 / 사계절 / 2016년 7월
평점 :
절판


분명 그림은 특정한 선과 형태, 색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가상'을 통하여, 아니 오히려 이 가상이라는 점을 떨쳐낼 수 없기에 그림은 우리에게 미의 진실을 보여줄 수 있는 것입니다. 13쪽


[구원의 미술관]은 저자인 강상중 교수가 2009년 4월부터 2년간 일본 NHK 방송의 <일요 미술관>이란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동안 만났던 그림 중 '구원의 의미'를 찾게 해준 내용을 담은 책이다. 더이상 국가나 사회로부터 안위를 보장받을 수 없게 된 이시점에서 결국 자신을 지켜줄 수 있고 치유할 수 있는 대상은 직접 찾아나설 수 밖에 없다. 과거에 귀족들이 자신들의 재산이나 신분을 과시하기 위한 목적으로 또는 신에 대한 경배를 목적으로 그림이 발전했다면 지금은 '치유'가 가장 큰 목적이 아닌가 싶다. 비단 이 책 뿐만이 아니라 하나의 작품을 통해 그림을 그린 화가의 생애를 통해 저자들이 들려주는 공통된 목적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이란 작품은 그 덕분에 대부분의 미술인문학책에서 빠짐없이 등장한다.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박민규 작가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의 표지로도 친숙할 것이다. 그림속에는 궁중화가 였던 벨라스케스가 국왕부부를 그리는 모습이 보이지만 이 그림 속 주인공은 누가봐도 '난장이 시녀'라고 지목할 수 밖에 없다. 시녀 옆에 아리따운 어린 공주도, 그 공주에 의해 발길질 당하는 개도 그저 엑스트라처럼 여겨진다. 이 그림은 설명하는 이에 따라 조금씩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데 벨라스케스가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유대인 신분을 평생 감추고 살아왔다는 점을 이 책을 통해 알게되면서 시녀를 바라보는 시각인 예전가는 달라진 느낌이었다. 그런가하면 저자가 그림을 통해 '치유'혹은 '구원'을 받게 된 작품은 알브레히트 뒤러의 <자화상>이란 작품이다.



알브레히트 뒤러 <자화상>


작가가 28살 때 그린 작품으로 그림을 그렸던 당시에는 대중에게 공개하지 않았고 자신이 죽은 뒤에 발표해달라고 부탁한 만큼 '유서'와 같은 작품이라고 책에서는 설명해주었다. 강상중 교수가 이 그림을 통해 깨달음을 얻게된 것은 무언가 다 내려놓은 듯한 그렇지만 그것이 포기나 체념과는 다른 '희미한 불빛'과 같은 느낌이었다고 표현한다. 그 어떤 커다란 희망도 그 시작은 '아주희미 한 빛'에서 나올 수 있다고 말한다. 저자의 말에 한참을 책에 실린 뒤러의 자화상을 바라보기도 했다. 아마 다른 독자들도 마찬가지였으리라. 내가 어디서부터 왔는지, 나는 또 어디로 가야할지를 고민하고 방황하던 때라면 뒤러의 자화상 뿐 아니라 마치 관람자를 저런 시선으로 바라보는 인물이 작품속에 있었더라면 울림이 생겨났을 것만 같다. 나는 이곳에 있는데 당신은 어디있는가 하는 물음이 진짜 들렸을 것 같은 그런 느낌. 그런 유사한 기분이 들었던 적이 있는데 국내에서도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마스로스코 전에서였다. 이 책에서도 마스 로스코의 작품이 언급되었다.


저는 '로스코 룸'을 일반 관람객들이 들어올 수 없는 밤 시간대에 혼자서 마음껏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정말로 행복한 시간이었지요. 111쪽


엄청나게 많은 관람객들과 함께 했을 때조차 나의 마음을 붙잡았던 그의 그림을 혼자서 늦은 밤에 맘껏 감상할 수 있었던 저자의 행복이 충분히 이해되고도 남았다. 저자의 표현처럼 자아가 사라지는 그 느낌, 그리고 그 느낌 뒤에 오히려 민낯의 나를 마주할 수 있었던 그 때가 새삼 떠오르기도 했다. 마스 로스코의 작품이 담긴 엽서를 책장에 두고 이따금 바라보는 것도 그때문이었다. 그런 마음을 공유할 수 있어서 좋았고, 잘 알지 못했던 화가들의 생애와 같은 작품이라도 교수가 들려주는 또 다른 해석이 맘에 들었다. 나역시 이 책에 소개된 작품을 통해 구원을 받았다라고는 결코 말할 수 없겠지만 적어도 그림이 누군가를 구원할 수 있으리라는 점에서는 무조건적으로 동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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