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인문학 - 서울대 교수 8인의 특별한 인생수업
배철현 외 지음 / 21세기북스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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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낮은 인문학]을 처음 대했을 때 '낮은'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궁금했었다. 인문학의 목적이 나를 '낮추는 데'있음을 알려주려는 것인가 싶기도 했고 여러가지 생각이 오가다가 사회의 '낮은'곳에서 출발한 강좌이며, 강의를 진행한 교수들이 그곳에서 등불이 되어줄 만한 강의를 자발적으로 동참했다는 서문을 읽고 책을 덮고 한참동안 표지를 바라보았다. 수준높은 인문학, 인생을 바꿔줄 인문학 등등 자부심에 찬 인문서적들 중 단연 돋보였고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꼈다. 서울남부교도소 수용자들을 대상으로 강의했던 내용이 바탕이 된 이 책은 잘난척 하기 위해, 혹은 더 잘난 사람이 되기 위해 인문학을 공부했던 이전과는 다른 마음가짐으로 읽어내려 갈 기회를 준 것이다.


반나절쯤 지난 후에 "스무 가지 적은 것 중에서 두 가지를 포기하라"고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소중한 것 목록에는 열 여덟가지가 남습니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은 일주일짜리입니다. 그러니 날마다 오전, 오후에 계속 목록의 내용 중 일부를 버리면, 마지막 날에 '나의 가장 소중한 것'은 딱 하나만 남게 됩니다. 48쪽


강성용 교수가 진행했던 2강 '생각에 대해 생각하다'편에 실린 내용으로 어떤 잘못이 되었던 법을 어기고 교도소에 수용된 사람들은 스무가지 중 가장 중요한 하나를 위해 전부를 포기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반대로 그 어느 것 하나 포기하지 않으려고 하다가 가장 소중한 것을 잃은 사람들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 뿐 아니라 지금의 내 모습도 양손의 떡을 쥐고 하나의 떡도 놓지 않으려는 어리석은 사람일 수도 있고, 물에 비친 모습이 자신 인 줄 도 모르고 더 큰 먹이를 얻으려고 입을 벌릴지를 고민하는 개일 수도 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내자신이거나 내가 아닌 소중한 그 누군가일 수도 있다. 양쪽 중 어느것이 하나 남았더라도 우리가 살아가는 데 덜 괴롭고 힘들거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런저런 욕심들 중 덜 필요한 것들을 채워가느라 소중한 것을 잃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가하면 3강 김헌 교수의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편에서도 이와 유사한 내용이 등장한다. 우리가 일순간의 분노를 견디지 못하거나 순간적인 욕망에 지게 되면 그로인해 받아들여야 할 고통과 책임은 단 한 사람이 책임져서 끝나지는 경우가 거의 없다. <일리아스>에 등장하는 인물과 사건들을 통해 교수가 전달해주는 내용을 보고 있자면 찰나의 실수로 야기되는 것이 국가간의 전쟁이 될 수도 있고 가장 소중한 사람을 잃을 수도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분노로 시작한 작품이 이렇게 장례식으로, 죽음으로 끝이 납니다. 작품이 전개되면서 불멸의 명성이니 명예니 하는 치열한 이야기들이 오고가지만, 위대한 시인 호메로스의 마지막 구절은 '죽음'입니다. 인간의 모든 행위는, 그 치열했던, 너무도 격렬했던 분노의 끝은 그래봤자 '죽음'이라는 것이지요. 120쪽


시기적인 부분과 역사적 상황으로 인해 4강 '기억, 미래를 만드는 '과거'편 역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독일은 세계대전과 유대인 말살정책등과 관련하여 지금까지도 거듭되늰 사과와 책임감 있는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반면 우리에게 잊힐 수도 있고 그래서도 안되는 아픔을 안겨준 이웃나라의 모습은 어떤가. 자국내에서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사건들, 큰 무리가 한 개인을 대상으로 행했던 옳지 못했던 일들 역시 제대로된 사과가 없었기에 제대로된 용서도 있을 수 없고, 용서할 수 없으므로 치유마저 될 수 없다는 사실에 가슴이 아파왔다. 강의를 들은 사람들은 저마다 각자 떠올리는 사건과 대상이 달라지겠지만 용서할 수 없어 상처가 곪는다는 사실을 느꼈을거라 생각한다. 물론 이렇게 누군가의 탓과 원망만으로 삶을 살아갈 수는 없다. 나짐 히크메트의 옥중시 [진정한 여행]을 통해 말했던 것처럼 최고의 날들은 아직 살지 않은 날들이며 가장 먼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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