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책 읽으면서 이렇게나 밑줄을 그어가며 읽은 적이 없었다.
내가 울증이 좀 있고 조증이 있는 줄은 알았어도 그야말로 그건 비염증세가 있는 정도로 '질병'과는 다소 거리가 먼것이었는데 신경증 환자의 사고와
행동을 설명하는데 어째 다 내 이야기냔 말이다.
아들러는 자신이
몰두해야 할 과제에 대해 자꾸만 핑계를 대며 회피하려는 사람의 라이프스타일을 이르러 '신경증적
라이프스타일'이라고 했다.
59쪽
신경증적 라이프 스타일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이 3장 부터
시작되는데 바로 이때부터 내가 책을 읽는 것인지 내면을 들여다보고 있는것인지 혼동이 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읽다보니 그냥 지금까지의 내모습을
누가 옆에서 기록한 것과 같다는 느낌을 받은 것이다. 그렇다보니 소용돌이에 빠져들어가듯 읽다가 그만 책을 덮어버렸다. '신경증 환자'라는 것을
인정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이제 내가 어떤 증상이 있는지 알았으니 이거 병원에 가야할 일이 아닌가 심각하게 고민이 되었던 것이다. 그동안 내가
읽어왔던 수많은 책들도 분명 이런 이야기를 계속 해왔을 텐데 어쩌자고 이 책에 이르러서야 내가 나를 제대로 볼 수 있게 된 것인건가 싶은거다.
내가 완벽하게 신경증 증세가 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된 문단은 다음과 같다.
고민도 마찬가지다.
고민하는 동안에는 결정하지 않아도 되니 고민하는 것이다. 즉, '고민함으로써 과제에 직면하는 것'을 미루고 있는 것이다.
91쪽
주변에서 고민좀 그만하고 그냥 저지르라는 말을 정말 많이 듣고
살았다. 그때마다 난 내 성격이 이상하거나 심리적인 문제가 있는게 아니라 그저 남들보다 소심하고 신중해서 그런거라 생각했다. 심지어 일단
저지르고 실패하는 주변사람들을 보면서 '역시 신중해야해, 뒷감당을 하는 것은 결국 내 몫이니까.' 하며 위안을 삼았다. 책임지기 싫어서였다는
것은 전혀 깨닫지 못했었다. 그도 그럴것이 일단 결정이 내려지고 나면 열심히 했다. 그랬으니 어쨌든 살아오지 않았겠는가. 그래서 결정을
내리기까지가 좀 오래걸리고 우유부단하게 느껴지는 것이지 일단 하면 잘한다고 착각해왔던 것이다. 빨리 결정하고 책임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훨씬 더
좋았다는 것은 생각하지 못하고서 말이다.
허영심이 있는 사람은 타인의 가치와 중요성을 공격한다. 타인의 가치를 떨어뜨리면서
그것으로 상대적인 우월감을 얻으려 한다. 108쪽
새로운 사람을 만나거나 어떤 집단에서 동료가 될 사람들을 대할
때 내게 장점이 있다면 그것은 상대방의 좋은 점, 칭찬할 부분을 예리하게 관찰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나와 전혀 관계가 없을거라 짐작되는
길가다가 보이는 사람, 전철이나 버스에서 만나는 사람에게는 희안하게 정확하게 반대되는 시선으로 그들을 판단하고 있었다. '저 사람은 옷이
왜저래, 얼굴이 아깝네.'라는 식이었다. 내게 허영심이 있었던 것인가. 내가 자존감이 이토록 낮은 사람이었구나를 깨달으며 책을 읽는 속도는 점점
빨라지는데 그만큼의 속도로 진정한 나를 마주하는 쓰린 순간도 빨라진 것이다.
5장부터는 슬슬 신경증적인 라이프스타일에서 벗어나와야 할
이유를 설명해주기 시작한다. 하지만 사람이 병원에 갔을 때 불치병이라거나 난치병 판정을 받았을 때 누군가는 치료법을 재빨리 물어보고 행동에
옮기지만 또 다른 사람은 병에 걸렸다는 사실만 떠올리며 오히려 더 좋지 않은 행동을 하는 경우가 있다. 앞서 내가 책을 덮어버린 것은 딱 후자의
행동이었다. 어떻게하면 되는지를 읽기보다는 내가 깨닫지 못했던 나의 증상을 알았다는데서 오는 충격이 더 컸던 것이다. 어느정도 마음이 가라앉고
서야 다시 책의 후반부를 읽어갔다.
하지만 신체나 지력의 쇠퇴가 생활에 지장을 초래하는 일은 있을 수 있어도, 노화 자체는
그리 문제 되지 않는다. 중요한 건 노화와 더불어
자신의 가치가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다. 165쪽
사실 책을 중간에 덮어버린 까닭이 충격도 충격이지만 앞으로
나올 방법을 하나씩 실행에 옮기기에 내가 너무 늦은 것은 아닐까, 늙은 것은 아닐까 싶었다. 아직 마흔은 커녕 예순도 안된내가 이럴 이야기를
하면 정말 어이없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겠지만 얼마전에 종영한 청소년들이 주로 등장하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보면 이제 20살도 안된 친구들이 너무
늦어버린 것같다고 우는 상황과 비슷하다고 이해해주면 좋을 것 같다. 암튼 이미 난 너무 늦은거야, 난 너무 늙었고, 이젠 일주일에 꼬박 5일
내내 운동하는 것도 지치는 상황임을 느끼다보니 방법을 알면서도 못할까봐 두려워했는데 역시나 그것은 핑계였다. 조금 지장이 있고 불편할 뿐이지
달라질 것은 없었다. 알면서도 하지 못하는 것이 왜 가장 큰 문제라고 하는지 깨닫는 시점이었다.
아들러는 이런
사람들에게 고매 로마의 시인 웰기리우스의 말을 인용하여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는 정신력에 관한 말이 아니다. 할 수 없다는 믿음이 생애에 걸쳐 고정관념이 되어버리는
것에 경종을 울리고 있는 것이다. 218쪽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연초부터 예비신자 교리반에서 수업을 듣고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내 스스로 자신에게 믿음을 가지고 충분히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데에 종교가 긍정적인 작용을 해준 것이다.
그렇다고 이런 효과를 기대하고 종교를 가진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만약 혼자서 정 힘들다면, 우리가 가족의 도움으로, 연인의
사랑으로, 친구들과의 우정이 부족한 나의 믿음을 이끌어주는 것처럼 어떤 조력자를 찾아보는 것도 좋을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동안 나의 조력자는
가족과 친구, 연인이기도 했지만 책이었던게 분명했다. 지금도 마찬가지긴 하다. 덕분에 이런 책을 만날 수도 있었을테니까. 믿자. 믿고 또 믿자.
내가 잘 할 수 있다는 사실, 과거에 경험했던 감옥들이 지금의 나를 결코 가둘 수 없고 내가 달라지면 미래에 나에게도 수갑을 채울 수 없다라는
사실을 믿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