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롤 에디션 D(desire) 9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지음, 김미정 옮김 / 그책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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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들어요."

"뭐가요?" 테레즈가 물었다.

"누군가, 모르는 사람이 내게 카드를 보냈다는 사실이요. 크리스마스라면 원래 그래야 하잖아요. 올해는 특히나 좋네요."   71쪽


캐롤이 장남감을 구매하고 놓치고 간 장갑을 부치면서 테레즈는 크리스마스 카드도 함께 보냈다. 캐롤이 고마움을 표현하기 위해 테레즈에게 밥을 사면서 나눈 대화였다. 누군가 모르는 이가 내게 카드를 보내주는 일. 그것도 크리스마스에. 두 사람의 관계를 떠나서 꽤나 낭만적인 장면이었다. 지금 사회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카드를 보낸다고 무작정 좋아만 할 수 없지만 만약 그때가 크리스마스라면, 왠지 누군지 짐작이 되거나 보내주었음 했던 사람이 보낸 카드라면 대면하기 전까지 우리역시 기분좋은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다. 책 [캐롤]을 읽는 것이 이번이 두번째다. 꽤 오래전에 읽은 것도 아니고 겨우 넉달전에 읽은 작품인데 다시 읽겠다고 결심한데는 이유가 있었다. 넉달전 처음 읽었을 때는 영화와 비교하려던 까닭에 소설에 제대로 몰입하지 못했던 것 같다. 시작부터 여러 부분이 상이했기 때문에 어쩌면 다른 점을 찾는 것에 더 재미를 느꼈던 것 같다. 분명이 그랬다. 그렇지 않고서야 겨우 몇 달지나 다시 읽는 캐롤이 마치 처음 읽는 책처럼 이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 그 두 사람의 성향역시도 마찬가지였다. 누군가의 평이 옳았는지 어땠는지도 상관치 않고 읽을 수 있었다. 그래서 이 리뷰 시작에 발췌한 저 대화가 그토록 아름답게 느껴질 수 있었던 것이다. 지난번에도 느꼈지만 테레즈가 캐롤을 처음 본 이후 줄곧 그녀에게 깊고 진지한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캐롤에게 느끼는 감정이 일시적이거나 일탈에 가까운 것이 아닌 사랑이란 것을 깨달았을 때 줄곧 연인이었던 리처드에게 미안함을 느끼는 부분도 전과 다르게 미래의 신부이자 연인이었던 테레즈를 잃은 리처드보다 더 안쓰럽게 느껴졌다.


테레즈는 덜렁거리는 연줄이라도 쥐려 했지만 허사였다.

"왜 그랬어?" 눈물이 그렁그렁 고인 말투로 쏘아붙였다.

"얼마나 예뻤는데!"

"그냥 연인데 뭐!" 리처드가 다시 말했다. "하나 더 만들어줄게." 153쪽


리처드는 다시 만들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테레즈는 아니었다. 누구나 사랑에 빠질 때는 아주 사소한 행동부터 별거 아닌 일들과 사물까지도 크게 다가오고 어떤 운명이나 예시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 연이 리처드를 놓을 수 없는 테레즈의 마지막 양심이었다면 그 양심이 결국 사라질것이라 느꼈을테고 반대로 그토록 예쁜 연을 캐롤을 향한 테레즈의 마음이었다면 마찬가지로 결국 현실에 부딪혀 그 사랑을 놓을 수밖에 없구나 하고 체념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연이 상징하는 것이 그 누구의 마음이었고, 어떤 관계였더라도 저 순간만큼 테레즈에게는 그저 놓을 수 밖에 없는 인연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저자 후기를 보면 이 소설의 영감을 받은 것이 실제 저자인 퍼트리샤 하이스미스가 돈이 쪼들려 크리스마스 시즌이라고 불리는 기간에 2주동안 대형 백화점 장난감 코너에서 카운터로 일했을 때라고 한다. 그리고 실제로 금발의 모피코트를 입은 부인이 인형을 사러왔었을 때 마치 환영을 본듯한 어지러움을 느꼈다. 그날 퇴근후 여덟페이지 정도 끄적인 것이 소설 [캐롤]의 줄거리가 되었으며 펜이 저절로 움직인 것처럼 글이 써졌다고 말한다. 소설 내용이 정말 드라마틱하면서도 몰입할 수 있었던 것은 그런 가능성이 전혀 뜻밖이 아니라 한눈에 보고 반할 수 있는 상황이 너무 사실적어라서 그랬을 수도 있다. 마치 지하철에서 첫눈에 자신의 인연을 알아본 사람의 이야기가 드라마틱하면서도 누구나가 그럴 가능성이 충분히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처럼 말이다. 비단 이런 상황이 아닌 정말 뜻밖에 믿지못할 상황에도 사랑은 생기고 연인이 탄생한다. 소설이 주는 매력은 우리가 알게 모르게 그런 가능성의 폭을 넓히는데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 읽어도 좋은 캐롤이 그것을 다시금 증명시켜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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