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드러지다 - 혼자여서 아름다운 청춘의 이야기
신혜정 글.그림 / 마음의숲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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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전에 나오는 사람들과 언어가 바뀐 것만으로도 큰 변화였으므로 내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내리던 그 건물은 나를 이상한 나라에 도착한 앨리스로 만들어주었다.p.23

 

 


신혜정 작가의 [흐드러지다]라는 책이 내게는 이국땅에서 올라탄 [엘리베이터]역할을 해주었다. 마지막으로 언어도 다르고 문화도 다른 지역을 여행한 게 지난 12월 겨울이었다. 그 이후로 늘 상상속에서만 이상한 나라로 떠나곤 했다. 책을 많이 읽었고, 특히 여행기를 다른 때 보다 많이 접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리 길어도 결국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와야 하는 것처럼 책장을 덮고 리뷰마저 쓰고나면 곧 일상으로 돌아와버렸다.  그녀가 시간앞에서 흐드러지고 싶었던 그 마음처럼 앞으로 긴 여행을 떠나지 못할 나의 형편상 이 책으로 위안을 삼아얄 할 처지라 [흐드러지다]로 내 시간마저 흐드러질 수 있는 기간이 꽤 오래갈 것 같다.

 

 


그녀가 맨 처음 시간 앞에, 흐드러졌던 독일은 아주 오래전 다녀왔던 곳이었다. 프랑크푸르트 역내 서점에서 열심히 이것저것 촬영했던 기억이 난다. 촬영이 금지된 장소는 아니었지만 서점 밖에서 기다리던 동료들 걱정에 서둘러 찍었던 사진들은 마치 허겁지겁 먹고 체한 것처럼 나중에 확인해보니 건질만한 사진이 거의 없었다. 그치만 그랬던 추억과 서점 풍경들은 마음에 그대로 남아있다. 마치 저자가 카메라가 아닌 마음에, 그리고 그림으로 남긴 것처럼 그랬다. 두 번째 터키를 여행하며 기록한 '당신과 흐드러지다'편의 이야기는 나의 추억과 비교하는 즐거움 보다 생각하지 못했던 일들을 많이 고민하게 만들었다. 오로지 인간에게만 해당되는 '경계'와 국내 외국인 노동자들의 처우등도 생각하게 했고 특정 종교가 아니라 종교가 갖는 가장 순수한 상태의 '기도'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이 좋았다. 저자와 달리 종교가 있긴 해도 간절하게 구하고 신당안에서 차분하게 마음을 정리하는 모습은 그자체로 평안하고 좋아보였다. 세 번째 라다크 여행기와 어우러진 '마음으로 흐드러지다'편은 저자의 소박한 그림이 가장 돋보였던 편이기도 했다.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하는 내가 가장 어려워하는 것이 풍경을 담는 것인데 아주 세세하게 표현한 그림은 아니지만 어디선가 보았던 라다크의 모습이란 것은 단박에 알 수 있었다. 라다크의 여행을 통해 유년시절 가졌던 세상의 방식에 대한 의문과 편의를 위해 만들어놓은 '개발'의 결과물이 오히려 인간을 더 피곤하게 만들고 있다는 이야기는 고민해볼 만한 이야기였다. < 달 스위치>란 시는 필사하고 싶을 만큼 고운 시라 일부를 옮겨본다.

 

 


어쩌면 그것은 오래된 미래

모든 전원이 상실되고

 

 


빛은 어둠 속에서

스스로를 밝힌다.

 

 


비로소

달의 스위치를 켜는 시간

백수해안에도 같은 달이 떴을 것이다.

 

 


-p.182-183 달 스위치 중에서 -

 

 

 

 

총 4부로 나뉘어졌는데 마지막 편 '돌아와 흐드러지다'는 추가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저자의 바람대로 이 책을 읽고 함께 흐드러져 보았음 싶은 마음에서다. 그저 활자를 읽기만 하자고 하면 3시간도 걸리지 않겠지만 저자가 어떤 책의 어느 구절을 읽고 떠났었는지 헤아려보거나 그녀의 그림속 풍경과 글을 한 번더 매만져가며 읽다보면 나처럼 한동안 흐드러지게 될 것이다. 시간 앞에서, 누군가와 함께, 마음속에서, 돌아와서 그리고 이 책과 함께 그렇게 흐드러질 것이다.

 

 


혼자여서 아름다웠던 지난 시절의 기록들을 당신 앞에 풀어놓는다.

당신은 결코 외롭지 않다고, 빛나는 사람이라고, 함께 흐드러져 보자고. - p.5 프롤로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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