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벽 - 벽으로 말하는 열네 개의 작업 이야기
이원희.정은지 지음 / 지콜론북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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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없는 것은 영원하지만, 반대로 모든 것이 가능하다. 그래서 가능한 일들이다.

나에게 벽은 가능성을 의미한다. - 포토그래퍼 Steven Beckly-

 

토론토 출신의 캐나다인 스티븐 버클리의 인터뷰는 거리에 나가 대학생들을 인터뷰했을 때 나오는 답변과 상당히 유사하다는 느낌을 받아서 정겨웠다.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월세, 고지서, 학교 등이라는 답변에 어딜가나 젊은 학생들은 '공부'가 아닌 '공부를 하기 위한'외부적인 요소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에 나오면 왜 그때의 그 '스트레스'가 그리운 것인지 아이러니하다. 우리는 언제나 연결되어 있다고 믿는 그는 한밤중에 좋은 생각이 떠오르며 벽이 주는 의미가 '가능성'이라고 답했다. 그의 인터뷰 페이지에 실린 사진중 가장 맘에 들었던 것은 창틀에 세워져 있던 '파인애플'을 담은 사진인데 <Still Life>라는 그의 시리즈 사진집이 궁금해지게 만들었다. 토론토에서 이번에는 친근한 남양주에 거주하는 식물세밀화가 '이소영'씨의 인터뷰도 맘에 들었다. 페이지를 열면 그녀의 인터뷰 내용보다 사진속에 보이는 '압화'형태로 벽에 붙여진 식물들에 눈이 먼저 간다. 작품 하나하나가 너무나 멋지고 노력이 느껴지는 그녀에게도 절대 빠져서는 안되는것이 '친구들의 만남'이라고 말한다. 앞서 언급한 스티븐의 답변처럼 외적인것으로부터 오는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을 때에 친구도 사치며 부담이라고 회피하는 친구들이 많아졌지만 그래도 여전히 가장 좋은 것이 '사람'이라는 두 사람의 훈훈함이 느껴져서 좋았다.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과, 그 사람들의 존재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라서 작품도 그렇게 따뜻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소영씨의 페이지와 비슷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인터뷰는 원예가 '박기철'씨 페이지였다. 무엇이든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는 사람. 이력도 조금 새롭다. 원예가라고 하면 청년시절 부터 자연과 벗하거나 도시와는 조금 거리가 있을 것 같은 문학도 정도로 연상되는데 서울 신사동에 있는 광고회사 '카피라이터'였다고 했다. 원예가로 넘어온 것도 어떤 특별한 계기라기 보다는 지속적으로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라고 한다. 박기철씨가 만든 광고는 어떤 분위기였을지 왠지 궁금해졌다. 그때문인지 서울 운니동에서 진행하는 <식물의 취향>가드닝 스튜디오 수업을 받아보고 싶어졌다.

'벽'이 화두이다보니 아무래도 가장 궁금해지는 예술가는 벽화 아티스트 '부어스트밴드'다. 풀이하면 '소시지 조직'이라는 의미와 비슷하다고 하는데 더 재미난 사실은 활동하는 밴드원들이 채식주의자라고 한다. 이상하게도 이 부분을 읽을 때 '굿 아이디어'라고 생각하며 소리내어 조금 웃었다. 그래피티 작업은 영화나 뮤비를 보면 여럿이 하기도 하지만 보통 혼자서 작업하고 도망치는 장면을 떠올리기 쉬운데 이들은 팀으로 함께 하면서 좋은 점이 많다고 말한다. 이런 배경에는 벽화를 긍정적으로 바라봐주는 독일인들의 영향도 있을 것이다. 베를린에서는 '벽'이 그야말로 모두에게 허락된 거대한 '스케치북'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열네 개의 작업 이야기중에 절반도 소개하지 못했지만 잡지에서 오려낸 내용들로 채워진 내 벽과 그들의 벽을 머릿속에서 오가며 많은 생각들을 할 수 있긴 했다. 심지어 이 책을 읽은 장소가 내 방 뿐아니라 커피숍일 때도 있었고 지하철 안일 때도 있었는데 때마다 마주하게 되는 벽이 던지는 질문에 답하는 것도 매우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벽'이란 과연 내게 어떤 의미인가 하며 책을 읽기전에는 별별 유치하기도 하고 감성적인 정의를 내려봤는데 막상 이 책을 읽고다니 벽은 그냥 담백하게 '벽'이었다. 내가 무언가를 더하느냐에 따라 분위기와 용도가 달라지는 그런 벽이었기에 다른 이들의 '벽'이야기가 편안하게 다가오고 질투나 경쟁없이 즐길 수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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