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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곳에 국수를 두고 왔네 - 소박한 미식가들의 나라, 베트남 낭만 여행
진유정 지음 / 효형출판 / 2016년 1월
평점 :
나는 그곳에 국수를 두고 왔네
소박한 미식가들의 나라, 베트남 낭만 여행
거칠고 투박하지만 무엇이든 포용하고 자라게 하는 대지처럼 깊고도 깊은 맛의 국수를 먹으러 나는 호이안에 간다.
지금은 아니지만 하루에 2회 이상 쌀국수를 먹는 게 자연스러웠던 적이 있었다. 거주하던 오피스텔 주변에 괜찮은 음식적은 없지만 괜찮은 쌀국수 집이 있었던 것도 이유가 될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 정말 맛있었고 입이 얼얼해질 정도로 얼큰하게 한 그릇 비우고 나면 머릿속에 있던 복잡한 고민과 스트레스를 완벽하게 잊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서인지 쌀국수가 그때만큼 그립지는 않다. 하지만 사는 동안 그렇게 미친듯 단일메뉴에 빠지기란 쉽지 않다. 정작 미쳐서 먹을 때는 깨닫지못하다가 어느정도 정신이 돌아오니 그 음식의 시작, 출발점이라 할 수 있는 '베트남'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딱 그 무렵, 책 [나는 그곳에 국수를 두고 왔네]를 만난 것이다.
아침 7시에 떠오르는 국수와 한낮에 당기는 국수, 그리고 늦은 밤에 생각나는 국수는 분명 다르니까.
위의 문장은 '국수 사전'을 가지고 있다고 고백한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문장이다. 국수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혹은 특정 메뉴를 좋아하는 사람은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기분에 따라 먹고 싶은 국수가 다르고 시간대 별로 먹고 싶은 국수가 다르다는 저자의 말에 환호까지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내게는 국수 사전은 없다. 그렇게 깊게 국수를 생각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페이지를 넘겨서 그날 그날 기분대로 찾아갈 수 있는 주소록도 없어 사전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 자랑처럼 들려 부러웠다. 이참에 나도 국수사전을 만들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싶었지만 생각해보니 맛있다고 너무 자주 간 탓인지 어느 순간 예전 그 맛이 아니라고 가지 않은 국수집들만 생각났다. 아마도 그건 저자처럼 기분에 따라 어울리는 집을 찾아가야 했는데 기다릴 줄 모르고 먹어치우듯 다닌 내탓이 아닌가 싶다. 그런가하면 저자가 말하는 '도시마다 감싸고 있는 독특한 향'을 나는 맡아본 적이 없는 것 같아 아쉬웠다. 바닷가에 갔을 때 나는 비릿한 물내음은 그 도시만의 독특한 향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하기 때문이다. 한참을 생각한 끝에 한 곳이 떠오르긴 했는데 다름아닌 대만 야시장에서 파는 '취두부'냄새 정도였다. 쌀국수를 한참 즐겨 먹을 때 하노이 거리를 걸었다면 어땠을까 상상해본다. 만약 그랬다면 쌀국수가 아니라 '직화'달달한 고기냄새에 더 빠졌을지도 모른다. 바로 분짜라는 다진 돼지고기로 만든 요리로 국수를 엄청나게 좋아한다고는 해도 고기를 이길수는 없으니까. 책을 보면 분짜 사진도 함께 실려있는데 언뜻봐서는 포장마차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닭꼬치'보였다. 비주얼만큼은 확실히 친근하고 달달한 숯불향기가 활자에서도 느껴져 베트남 하노이를 간다면 쌀국수 말고 분짜에 먼저 달려들 것 같다.
불 맛을 풍기는 고기에 달콤한 소스가 살짝 스미면 그야말로 입 안에서 살살 녹는다. 동남아시아 음식에 적응하기 힘들다고 말하는 사람도 한 입만 먹어보면 앉은자리에서 두 그릇도 먹게 되는 음식이 바로 분짜다.
타이틀 '나는 그곳에 국수를 두고 왔다'라는 표현은 저자가 라디오에서 우연히 들은 '마를레네 디트리히'라는 노래가사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다. 해당 노래에서는 화자가 베를린에 가방을 두고 와서 베를린이 계속 생각난다고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얼핏 타이틀만 보면 '국수'가 핵심인 것처럼 보일테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저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국수'보다는 '베트남'이라는 나라에 대한 애착이라고 보여진다. 덕분에 베트남 곳곳의 풍경을 담은 사진과 음식들을 다양하게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 덕분에 베트남 국수에 관한 추억만 질리게 접할 줄 알았던 예상과 달리 '베트남'을 가고 싶다는 생각이 두번째로 떠오른 것이다. 첫 번째는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하루에 두끼니 이상을 쌀국수로 먹을 때 였다. 쌀국수 레시피도 친절하게 부록처럼 실려있지만 요즘 대세인 어떤 요리사의 말처럼 쌀국수는 해먹기보다는 사먹는 맛이라고 생각한다. 책을 읽는 동안 계속 그 생각만 굳혔던 것 같다. 사먹어야지, 그것도 꼭 베트남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