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어느 철학과 자퇴생의 나날 - 2015년 제11회 세계문학상 우수상 수상작
김의 지음 / 나무옆의자 / 2015년 10월
평점 :
장르를 가리지 않고 그저 술술 읽히는 소설만 읽다보니 문학상을 받은 소설은 어느 순간부터 서서히 거리를 두게 되었다. 흔히 말하는 '신춘문예 스타일'이 숫자로 치면 어른이 되고난 이후 부담스럽고 불편했기 때문이다. 부랑자, 하수도, 쓰레기더미 처럼 직시하지 않고 누군가 덮거나 가려주어 내 눈에 띄지 않게 해주는 것이 고마운 비겁한 어른이 된 까닭이다. [어느 철학과 자퇴생의 나날]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퇴', '철학과'라는 키워드가 동시에 제목에 들어가 있는 까닭에 그런 망설임을 무시하고 무작정 읽기를 시도한 책이다. 불편한 현실이 작품속에 그대로 제 모습을 드러낼 줄 알면서도 읽고 싶었다. 자퇴생이라는 말이 낙오처럼 들리는게 아니라 오히려 지금 같은 사회에 철학과를 졸업하는 것이 '저 혼자'사는 사람처럼 이기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물론 실제 철학과를 졸업하거나 재학중인 학생들이 이기적이라는 말은 아니다. 어쨌든 그런 마음으로 읽은 책은 답답함 그 자체 였다. 각오하고 읽었는데도 쉽지 않았다. '나'는 한 때는 아빠였던 엄마와 살아가고 있다. '악마'라고 불리는 존재 때문에 학과를 자퇴했지만 과연 그가 멀쩡하게 살면서 정상적인 가정을 이룰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할 만큼 순수하지 못했다. 인우가 악마로 인해 점점 더 망가져가고, 아빠였던 엄마가 '사회의 편견' 이 주는 상처로 몸과 맘이 상하는 모습을 보면서 씁씁했던 것은 오히려 여전히 '불쾌'하다고 생각하고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고 여기는 나 자신을 읽는 내내 견뎌내야 했기 때문이다. 인우가 안타깝고, 인우의 엄마가 안타깝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내가 사는 사회에서 그 두 사람이 어떻게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하는 의문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몇 년전 성소수자들의 이야기를 담은[두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를 박희정의 그림이 담긴 만화로 읽었을 때와, 실제 배우들이 연기하는 '영화'로 봤을 때의 차이를 기억했다. 만화 속, 여자보다 예쁜 남자들의 사랑은 그저 한없이 안타깝고 제발 불행한 결말이 찾아오지 않기를 바라며 읽었다면, 만화와는 조금도 닮지 않는 예쁘지 않은 영화 속 남자배우들의 아주 가벼운 스킨십 장면만 봐도 불편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트렌스젠더의 방송출연을 볼 때 마다 불쾌해하며 욕을한다거나 하진 않지만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 조차 이미 '편견'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아닐까. 이야기가 너무 에둘러 펼쳐지긴 하지만 결론은 이거였다. 사회의 편견이, 사회적 약자들이 범죄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현실고발이 문제가 아니라 지금 책을 읽고 있는 독자인 나 조차도 과연 '편견'없이 그들을 바라보고 있고 '악마'가 했던 짓을 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 그들이 인간답게, 삶의 철학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준다고 말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리뷰를 이토록 꼼꼼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본 적도 또 간만이다. 아, 이 소설의 리뷰를 어떻게 적어야할 것인가. 우선 철학과 자퇴생의 나날이라는 키워드를 착각했다. '철학'이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해 사유하고 고민하는 학문이라고 봤을 때 작품 속 인우의 삶은 '철학'과는 전혀 상관이 없거나 혹은 인우처럼 살거나, 민호처럼 살아서는 안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철저하게 속박당해서도 안되지만 반대로 누군가의 자유를 억압하는 민호의 삶도 '인간답지 못한 삶'인 것은 마찬가지였다. 민호 때문에 인우의 삶이 호전적이고 평탄하지 못한 것은 맞지만 과연 모든 잘못이 민호에게 있는것일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또한 인우의 엄마가 트렌스젠더라는 장치도 딱히 인우의 삶을 비극적으로 결말짓는 결정적인 이유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이란게 엄연히 존재한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타인이 만들어 놓은 감옥에서 탈출을 시도하지 않는 인우가 그저 안타깝고 가엽기만 했을 뿐이다. 인우가 자퇴를 한 것은 단순히 '철학과'학생 신분이 아니라 인간답게 살아가는 '삶'을 포기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만들어놓고는 그 책임을 사회뿐 아니라 인우에게도 있다고 비겁하게 떠넘기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