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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화를 내봤자 - 만년 노벨문학상 후보자의 나답게 사는 즐거움
엔도 슈사쿠 지음, 장은주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10월
평점 :
절판
다른 모든 게 부족했지만 어머니가 나의 유일한 장점을 인정하고 칭찬해서, '지금은 사람들이 너를 무시하고 있지만 머지않아 네가 좋아하는 것으로 인생에 맞서게 될 것'이라고 말해주었던 것이 나에게 있어서는 강한 의지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50p
위의 글은 작가 엔도 슈사쿠의 어머님이 공부도 잘 못하고 바이얼린을 가르쳐 주었더니 화를 부러뜨리기나 하는 아들에게 해준 말이다. 이 문장만 보더라도 최소한 유년시절 만큼은 그의 삶이 안락하고 포근했을거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물론 사회적으로나 시대적 배경을 보면 2차 세계대전으로 나라 안팎이 모두 어수선하다못해 암흑에 가까운 시기였다. 그런 우울한 시기에 유학생 자격으로는 처음으로 프랑스 리옹에 가기도 했던 이력은 그의 노력보다는 어느정도의 운이 따랐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노년에 이르러 폐결핵으로 인해 여러차례 수술과 입원을 반복했던 이야기를 들으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느껴진다. 책 표지에는 만년 노벨문학상 후보작가라고 하지만 이력을 보니 놀랍기만 하다. 아쿠타가와 상 수상을 시작으로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게 된 작품 [침묵]은 세계 여러나라에 번역본이 출간되었고 그 이후에도 신초 문학상 및 마이니치 출판문하상 등 국내외에서 여러 상을 받았다. 조금 거들먹 거릴만도 한데 막상 책에 실린 글을 읽고 있자니 문필가 특유의 위트와 나이를 먹어도 호기심이 결코 줄지 않고 나이와 비례해서 늘어나기만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마디로 유쾌하다고나 할까. 제목은 '인생에 화를 내봤자'라고 하지만 젊은 시절 줄곧 화를 내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스스로 느끼기에도 화를 잘 참지못하고 욱하는 성질이라 약도 지어먹어봤다고 하니 대충 어느정도 인지 짐작할 만하다. 잠깐 이야기 한것처럼 호기심도 상당해 점이나 미신을 믿는 경향도 있는데 버스를 타면 자기만의 지정석 외에는 차라리 서서 가고 만다던가, 시험을 보러 가기전 우체통이 머리를 쓰다듬고 가지 않으면 안된다는 텔레파시 때문에 은근슬쩍 우체통을 쓰다듬기도 한다. 점의 경우 신년운세 등에 관심이 많아서 일본에서 뿐 아니라 해외까지 나가서 타로점을 보기도 한다고 한다. 물론 맹신해서는 아니고 과연 이 점술가가 자신을 얼마나 속일 수 있는가를 평가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 폐결핵으로 수술도 하고 입원한 이력이 많다보니 지인이 입원했을 때 병문안시 주의사항까지 일뤄준다. 몇 년 전 어떤 의사가 암에 걸렸을 때 비로소 환자입장에서 의사들의 태도, 병문안을 위해 찾아온 손님들의 태도를 두고 환자입장에서 부탁조로 쓴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예를 들자면 너무 오랜 시간 병실에서 지체하는 것은 환자에게 불편함을 줄 수 있다는 것과, 의사들의 무미건조하고 딱딱한 말투는 환자의 사기를 꺾는다는 등의 얘기였는데 엔도 슈사쿠도 유사한 이야기를 남긴다. 뿐만아니라 병문안시 꽃이나 음식물은 한꺼번에 여러명이 올 경우 버려질 수 있으니 '수건', '가운'등이 훨씬 더 도움이 된다고 말하는데 수술과 입원을 경험한 나로서도 적극 공감한다. 입에 맞지 않는 쥬스, 회복기간이라 먹을 수 없는 음식물은 보호자마저 먹지 않을 경우 거의 버려지는 경우가 많다. 수건은 병원에서 무상으로 지급해주지 않기 때문에 한 번씩 사용하고 버려도 부담스럽지 않은 저렴한 것으로 여러 장 사다주면 여러모로 쓸모가 있다.
나는 소설을 쓰고부터 사람을 판가름하는 일이 차츰 싫어졌다. 나도 같은 입장이라면 같은 행동을 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함부로 사람을 판단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사람을 판단할 때만, 타인에 대해 왈가왈부할 때만 성인군자가 되는, 나는 그런 인간은 되고 싶지 않다. 145쪽
글 첫머리에 발췌문을 올린 것처럼 엔도 슈사쿠는 어머니에게 '케세라 세라'방식으로 성장했기 때문인지 젊은 청년들에게 너무 기죽지 말라고,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는 것 자체에 기쁨을 가지면 어떻겠냐는 글을 많이 적는다. 뿐만아니라 몸이 아픈 것이, 대머리인 것이 반드시 나쁜것만은 아니고 매사에 안좋은 일에서 좋은 점을 찾으려고 노력하면 그만큼 기분이나 상황이 나아질 수 있다고 조언한다. 기독교신자였던터라 관련 내용의 작품도 여럿 집필한 까닭에 수록된 글속에서 '신을 믿으세요'라고 강조할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오히려 세상 자체를 참 편안하게 그리고 감사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가 들어 이렇게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인생에 화를 내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화를 내도 의미가 없다는 인생선배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좋겠다. 글을 몇 배로 돋보이게 해주는 앙증맞은 일러스트를 보는 재미도 놓치지 마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