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체탐구생활
김현진 지음 / 박하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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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진 작가의 [육체 탐구 생활]을 간략하게 한 줄로 정리해보면, 제목에 적은 것처럼 '키보드만 두드리지말고 몸으로 보여주기'라고 생각한다. 다소 거칠고 야릇하게 들리는 '육체탐구'라는 것이 결국 몸뚱이를 가지고 태어난 존재라면 모두 살아숨쉬는 동안 하고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누군가는 자신의 육체를 탐구하는 데 그치기도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타인의 육체를 혹은 전 인류의 건강한 육체를 탐구하느라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이 책에는 저자 김현진과 만났던 육체를 가진 존재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돈이란 건 좋은 것을 주기도 하지만 나쁜 것을 막아주는 기능도 있어서 다들 돈을 좋아하는 거였다. 다들 사치하고 싶어서, 좋은 걸 누리고 싶어서만 돈을 좋아하는 게 아니었구나. 이 꼴 저 꼴 안 볼 수 있기 때문에 다들 돈을 그렇게 좋아하는구나. 39


걸어서 출근하는 사람들도 크게 다르지 않겠지만 버스나 전철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매일 같이 출퇴근 시간에 넘쳐나는 광고를 보게 된다. 병원광고나 한약방 광고를 보면 피곤하고, 지치고, 살이 찌고 잠이 안오는 이유가 저마다 다 다르다. 어찌되었든 그 병원에 가지 않으면 만성질환으로 우리는 죽는 내내 고통을 당할 것 처럼 몰아붙인다. 성형도 이제 안하면 큰일이다. 나쁜 놈이라서 날 버리고 내 후배를 만난 것도 다 내가 수술을 안해서라고 말한다. 해당 병원의 논리로 치자면 내가 수술을 한다면 누군가의 연인이었던 남자가 그녀를 버리고 내게 온다는 건데 그렇다면 난 절대 성형하지 않겠다. 돈들이고 고통까지 견뎌내며 나쁜놈을 뭐가 좋다고 만나야하는지 모르겠다. 저자말처럼 그런 광고에 시달리지 않으려면 자차를 이용하거나 가급적 걸어서 후다닥 회사에 출근해야한다. 7포세대는 아니지만 어쨌든 돈이 있어야 가능한 건 사실이다. 흙수저로 태어난 육체는 고생할 수 밖에 없는 사회다. 그래서 오늘도 육체는 고단하고 힘들다.


우리가 사랑하지 않는 것들은 우리에게 손해를 끼칠 수는 있을지언정 결코 우리에게 상처를 입힐 수는 없다. 그리고 상처보다는 손해가 언제나 낫다. 그게 그나마 견딜 만하다. 63


손해보다 상처가 낫다는 사람들도 분명 존재할 것이다. 야금야금 나를 은행처럼 여기던 나쁜놈이 돈많은 여자를 만나 결혼하면서도 빌려간 돈을 갚지 않아 전세집에서 월세집으로 이사가야 할 때, 10년지기 친구라 믿고 보증섰더니 저 혼자 날라버렸을 때가 그렇다. 하지만 저자처럼 애초에 부모에게 손 한번 안빌리고 10원도 안받으며 학교를 다녔다면 분명 마음속에서 계속 곪고 있는 상처보다는 몸을 부지런히 하면 다시 벌수도 있는 금전적 손해가 더 나을 수도 있다. 어짜피 둘 중 뭐가 나은지를 따지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손해라면 욕하고 다시 채우면 되지만 상처를 치료하는 것은 손해를 복구하는 것보다 몇 배 더 어렵거나 불가능할 수 있다는 것이 문제다. 그래서일까. 마음의 상처가 났을 때 자신을 '아가'라고 불러주던 순대국밥집 할머니를 떠올리는 저자에게 나이차이도 나지 않는 나라도 가서 '아가~'하며 불러주고 싶었다.


예전에는 뭔가를 할 수 있는 것, 가질 수 있는 것만이 자유라고 믿었지만 그렇게 믿고 있던 세상이 얼마나 좁은 세상이었나 돌이켜보니 부끄럽다. 아마 앞으로 더 부끄러울 일이 많을 것이다. 하지 않는 것, 사지 않는 것, 가지 않는 것 역시 자유였다. 어쩌면 이게 더 질 높은 자유였다. 166


가장 중요한 얘기를 안하고 있었다. 저자가 미스김으로 불렸던 때를, 녹즙아가씨로 불렸던 때의 이야기다. 복이라면 복일텐데 저자는 아침잠이 없다고 한다. 잠이 없다기 보다는 아침에 일어나는 게 그렇게 힘들지 않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도 미혼인데다 나이어린 아가씨가 만만하게 덤빌일이 아니란 것은 해보지 않았어도 알 수 있다. 모두의 기대와는 달리 저자는 녹즙배달을 무려 2년2개월을 했다. 수십년 하신 어머님들에게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아무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녹즙배달을 하는 사람이 따로 있고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은 정해져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녹즙을 배달하는 저자와 내기를 걸면서 자신이 이기면 한달치 무료녹즙을, 자신이 지면 저자 대신 하루 녹즙 배달을 하겠다고 했다던 그 분은 참 읽는 독자입장에서 봐도 어이가 없었다. 그렇게 대단하신 분이 그 귀한 시간을 어찌 녹즙배달하는 아가씨와 대화하는 데 사용하셨는지 이해불가다. 직업의 귀천이 없다는 말은 사어라고 생각한다. 귀천이 없었지만 귀천을 만들어버린 사람은 남도 아니고 나 자신이기도 하다. 나도 바뀌지 않는데 남을 뭐라할 수는 없다. 다만 아주 조금의 양심으로 겉으로 티를 내지 않을 뿐이다. 이런 육체도 살겠다고 버티는데 저자가 함께 '죽기를'각오하며 만나러 다니는 사람들의 사연은 따듯한 방안에서 읽고 있는 것 마저 죄송하다. 죄송한 마음마저 사치였다.


밥이 얼마나 귀한지, 그러므로 밥 먹는 살마들은 밥값 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이웃의 입에도 밥이 들어가는지 살펴야 한다는 것을 기륭 선생님들이 말을 않고도 내게 가르쳐주었다. 289


기륭전자 농성자분들, 쌍용자동차, 촛불시위로 자신의 뜻을 내보였던 선량한 시민들의 그저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기본적인 희망을 갈구하는 육체들 속에 저자의 육체도 함께했다. 나의 육체는 그 시간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그들이 다치지 않기를 바라며 기도라도 했었을까 생각해본다. 조용히 살라는 사람들, 그저 주어진 것에 감사하며 살라는 사람들, 감사한 마음이 없어서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다. 태어난 순간, 육체가 주어진 순간부터 감사한 마음으로 살지만 그 감사를 받을 대상이 자신들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 다같이 육체를 가진 사람들끼리 잘 좀 살자는건데 왜이리 힘든걸까. 필사도 중요하고 독서도 중요하고 블로그로 정보를 공유하는 것도 퍼나르는 것, 좋아요를 누르는 것도 다 중요하다. 하지만 행동하는 것 만큼 중요한 것은 없을 것이다. 겁많은 나는 두손모아 간절하게 기도라도 꼬박꼬박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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