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바람의 시간
김희곤 지음 / 쌤앤파커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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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위험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모래판 위에서 인간과 싸우는 황소의 모습이 스페인에서 홀로 버티는 나의 삶이었다. 44쪽

 

마흔 넷, 자녀와 아내를 두고 스페인으로 공부를 하러 떠난 남자.

방점을 어디에 찍게 될지는 철저하게 독자의 몫이라고 한다면 내가 찍은 것은 다름아닌 마흔 넷, 그리고 공부하러 떠났다는 사실이었다. 최근에 종영한 TVN 드라마 [두 번째 스무살]의 내용은 결혼과 육아로 고등학교도 제대로 마치지 못한 주인공이 서른 여덟, 대학교에 입학하면서 겪게되는 헤프닝을 다뤘는데 기대이상으로 공감되는 부분, 전혀 예상하지 못한 난관에 대해서 알려주는 등 여러모로 도(?)움을 받았다. 같은 맥락으로 이 책도 마흔 넷에 유학이라니 정말 어려운 결심을 했구나, 위로와 조언을 동시에 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 것이다. 나이먹어 유학을 떠난다고 하면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다고 부러워할지도 모르지만 30대 중반을 지나고나면 알게된다. 돈만 있다고 갈 수 있는게 유학이아니라는 것을, 타인의 이목 때문도 아니다. 익숙해진것과의 결별, 그것은 아마도 나이를 먹을수록, 자리가 안정적일수록 더 어려워지기 때문에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 

 

나이는 떨리는 나침반의 바늘이다. "이 나이에..."라는 말은 긍정보다 부정의 단서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현실에서 밀려남을 의미한다. 117쪽

 

그런 무용담을 들어줄 준비를 마치고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기대했던 이상으로 내용이 알찼다. 읽다말고 다시 돌아와 저자 약력을 찬찬히 살펴보니 스페인과 관련된 저서 및 강연이 일상인 사람이었다. 덕분에 스페인에 대한 지리적 정보는 물론, 문화적 특성, 관련된 문학작품 등 유학생활이 힘들었다는 하소연이 중심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여행자로서의 공감을 그 어떤 여행서적보다 더 많이 느낄 수 있었다. 스페인 마드리드에 발을 들였을 때 저자는 소매치기가 많다는 사실 때문에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고 한다. 지난 여름 파리를 여행할 때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어떤 날은 아에 휴대전화를 숙소에 두고 다닐만큼 범죄의 피해자가 되지 않으려고 엄청 긴장하고 애쓰며 여행했기 때문이다. 신기한 사실은 그렇게 긴장의 연속이었던 여행속에서도 익숙치 않은 것들로 부터 받게되는 설레임과 놀라움은 별개로 다 누릴 수 있었다는 것이다. 저자도 마찬가지였다. 처음부터 그가 들려주는 여행, 여행자가 가질 수 있는 감정들이 그의 입을 통해, 명사의 문장을 인용해가며 알려주었다.

내가 가진 작은 것에 감사하고 지금 이 순간에 감사하는 마음이 여행자의 덕목이다. 258쪽

 

스페인 마드리드를 중심으로 한 쪽은 콜럼버스를 상징하는 지역이고 반대쪽은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를 상징하는 지역이라고 한다. 저자는 운이 좋았는지 양쪽 모두에서 거주할 수 있었다고한다. 주요 랜드마크에 대한 설명과 함께 스페인어도 함께 표기해주어 책을 읽다보니 익숙해지는 단어들도 있고, 기억하고 싶은 단어도 생겼다. 익숙해진 단어는 마드리드 중앙의 그란 비아 거리로 한국으로 치면 명동거리 정도라고 한다. 그란 비아는 스페인어로 큰 길이라는 뜻이다. 하몽도 정확하게 어떤 부위를 어떻게 조리하는지도 알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 저자가 스페인어를 거의 모르다시피 한 상태로 출발 해 초급반에서 낙제까지 경험하며 천천히 익히는 과정을 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고추장과 김치를 그리워하는 모습도 공감이 많이 되었는데 이게 단순하게 한국음식이 먹고 싶어, 엄마가 만든 음식이 먹고 싶어 차원이 아니란 점이 그랬다. 아내가 만들어준 음식도 아닌 튜브에 담긴 고추장에 위로를 받고 젓갈 대용으로 삼고 싶었으나 실패한 엔초비 사연도 유사한 추억을 가진 독자라면 격하게 공감했을 것 같다. 무엇보다 중요한 문화를 언급해준 덕분에 스페인에 정말 가고 싶어졌다는 것이다. 투우가 이전까지는 동물의 생명을 인간의 유희로 빼앗는 잔인한 현장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오히려 투우의 장면장면을 현재 자신의 모습과 비유하며 풀어준 덕분에 하나의 '문화'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하늘로 향해 끝없이 손을 뻗치는 것이 아니라 발을 딛고 서있는 대지와의 교감, 닿지 않는 곳에서의 삶을 꿈꾸기 보다는 현재 머물고 있는 지상에서의 삶을 추구하는 자유로운 기질의 플라멩코에 대한 이야기도 전과는 다르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최근에 읽었던 [홀가분한 삶]에서 강조했던 '메멘토모리'를 이 책의 저자도 책의 중간중간 끊임없이 일깨우고 있었다.  어머님이 돌아가셨을 때의 기억을 상기시킬정도로 그가 영혼의 깨달음을 얻었다는 판테온에서 나는 과연 어떤 기분이들게 될지 궁금해졌다.

 

마흔 중반 스페인에서 젊은 청춘들과 뒹굴며 매일 사전을 뒤적이며 깨달은 것은 엘에스코리알의 판테온보다 적었다. 무엇을 위해 스페인에서 방황하고 고생하는지 그 해답은 판테온에 있었다. 305쪽

 

 누구나 다 아는 스페인의 대표 건축가 가우디와는 달리 자기만의 길을 걸어갔던 후계자 칼라트라바를 포함한 건축양식까지 저자는 여행자, 학습자,건축가 그리고 문화와 스페인으로 인도하는 가이드로서의 역할을 완벽에 가깝게 이 책에서 풀어내주었다. 그동안의 여행책이 읽고나면 행선지를 포함 무조건 떠나고 싶다는 열망을 갖게했다면 [스페인, 바람의 시간]은 여행은 물론 뜨겁게 다시 사랑에 빠지고 싶어지고, 망설였던 그 무엇인가에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던져주었다. 1년 뒤 어느 날, 마드리드 어느 한 레스토랑에서 카페 콘레체를 마시면서 지금을 떠올리며 이 책을 다시 읽을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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