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블 이야기
헬렌 맥도널드 지음, 공경희 옮김 / 판미동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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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내 곁을 떠난다면 깊은 상실감에 영혼이 파괴되는 듯한 상처를 얻게 된다. 아무도 만나지 않고 혼자서 그 아픔을 견뎌내는 사람들도 있고 닥치는대로 일이나 학업에 몰두하며 한동안 슬픔을 느끼지 못하는 강박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메이블 이야기]의 헬렌은 아버지를 잃은 상처를 고대 영어 '비레아피안bereafian'이란 단어에 비유한다. 그 단어는 강탈당하다, 빼앗기다라는 의미를 지녔다. 그녀에게 아버지의 죽음은 그녀에게 그 단어의 의미와 같았으며 자신을 위로하려는 지인에게 그녀가 했던 말을 보면 그녀가 당시에 느꼈던 상실감이 어느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상상해 봐. 너희 가족이 한 방에 있다고 말이야. 맞아, 온 가족이 다. 너희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다 모여 있어. 그때 누군가 방에 들어와 너희 갖고 모두의 배를 때리는 일이 벌어져. 가족 하나한다를, 정말로 세게. 그래서 다들 바닥에 쓰러져. 알겠어? 그러니까 모두 같은 종류의 통증을, 똑같은 통증을 겪는데 각자 고통에 시달리느라 바빠서 완전히 혼자인 것 외에는 다른 건 느낄 수가 없는 거지. 이건 바로 그런 거랑 비슷해!" 31쪽


영화로 제작된 동명의 작품 [와일드]의 셰릴 스트레이드가 엄마를 잃고 방황했던 모습이 떠올랐다. 셰릴이 방황에서 견뎌낼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은 야생의 길을 걷는 것이었다. 극심한 상실감과 고통에 빠져있는동안 어린시절 또래 아이들과는 달리 참매에 빠져지냈던 때를 떠올리게 된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며칠 전  참매를 만나러 버려진 숲속을 헤매었으며 마치 아버지가 떠난 그 빈 자리에 참매가 들어오리라는 것을 예측한 것 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녀가 바로 참매를 길들여보겠다고 나선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참매와 관련된 책을 어떻게든 읽지 않으려고 외면하기도 했다. 그녀가 외면하려고 애썼던 책은 T.H화이트의 [참매]로 저자 화이트가 직접 참매를 길렀던 내용을 담고 있다. 화이트의 이야기를 없이 헬렌의 참매 이야기도 나올 수가 없다. 화이트는 곧 헬렌이었다.  두 사람 모두 어떤 대상으로 부터 도피하기 위해 참매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화이트는 안타깝게도 유년기때 가정과 학교에서 받았던 학대와 폭력에서 완전하게 벗어나진 못했다. 하지만 참매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그리고 참매에게 남과 다른 애정을 느끼고 있었다는 것을 헬렌은 인정했다.


여러분이 읽고 있는 책은 내 이야기다. 이것은 테렌스 핸버리 화이트의 전기가 아니다. 하지만 화이트는 내 이야기의 일부다. 화이트에 대해 쓸 수 밖에 없는 것은 그가 거기 있었기 때문이다. -중략-내가 화이트에게서 가장 좋아하는 점은 그 기쁨, 인간 아닌 생물들의 삶을 아이처럼 즐거워한다는 것이다. 그는 복잡한 사람이었고 불행했다. 하지만 세상이 소박한 기절들로 꽉 차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기도 했다. 69~70쪽


만약 화이트와 마찬가지로 참매를 길들이는 과정에서 폭력적인 성향을 맞딱들였을 때 역으로 참매를 곤경에 빠뜨리는 지경에 이르렀다면 [참매 이야기]는 세상밖으로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그녀는 확실히 화이트와는 달랐다. 둘 다 상실감에서, 현실에서 벗어나서 참매가 가진 폭력성향에서 자신의 모습을 확인했지만 고통을 갖게 만든 대상이 달랐고 살아온 환경이 달랐다. 헬렌 자신도 그 점을 분명히 알았고 참매를 길들이는 과정에서 화이트가 실수했던 것이 무엇인지 하나하나 깨닫기 시작했다. 참매를 길들이는 과정은 다른 새들 보다 훨씬 어렵다. 오히려 길들였다고 느낀 그 순간에도 참매를 야생으로 되돌려 보낸다면 얼마지나지 않아 단 한 번도 사람의 주먹위에 올라있던 적이 없었다는 듯 생활하는 것을 확인하게 될 뿐 이다. 하지만 무언가를 길들인다는 것에 대해 우리는 참 익숙해져 있다. 화이트가 참매를 길들이는 과정에서 어린시절 자신이 느껴보지 못한 가정의 즐거움을 발견했었던 것을 알 수 있고 헬렌 또한 아버지와의 추억을 하나하나 떠올려가며 상실에서 그리움으로 그 성격을 달리할 수 있게 되었다.


인간의 삶은 매의 삶의 일부가 되었고, 그로 인해 나는 매에게 백만 배 더 복잡한 경이감을 느끼게 되었다. 메이블과 잡지를 둥글게 말아서 만든 망원경을 가지고 놀았을 때 느꼈던 순수한 놀라움이 생각난다. 메이블은 현실이다. 288쪽


책을 읽는 동안 내가 머물러 있는 곳이 내방이 아닌 인근에 숲이 있고 아침이면 새소리로 잠이 깨는 전원주택 3층의 열 살먹은 소녀의 방이라는 착각에 빠지곤 했다. 이런 기분은 제인 구달의 [희망의 씨앗]와 제임스 왓슨의 [지루한 사람과 어울리지 마라]를 읽을 때, 각각 저자의 유년기 부분을 읽을 때 느끼곤 했다. 세 사람 모두 자연에 관심이 많았고 그들의 부모님은 하나같이 그들의 호기심을 결코 막아서지 않고 북돋아 주었다. 그런 유년시절을 가질 수 있었던 그들이 부러웠지만 잠시 기억을 더듬어보니 나또한 아버지와 함께 사냥을 다니고 낚시를 다니기 시작했던 때가 만으로 다섯 살 무렵이었다. 소년처럼 생겼던 외모덕분에 언니와는 달리 아버지와 함께 많은 곳을 다녔고 매년 여름과 겨울방학에는 바쁜 일과중에도 꼭 가족 모두 캠핑을 떠나곤 했었다. 아마 그런 추억이 있었기 때문에 책을 읽으면서 쉽게 동화될 수 있었고 참매를 길들인다는 저자의 시도가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던 것 같다. 무언가를 상실하고 고통스러워하는 상태는 아니었지만 잊고 있었던 유년기의 아버지와의 추억을 떠올릴 수 있었던 덕분에 [메이블 이야기]는 적어도 내게는 큰 의미를 가진 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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