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의 가위바위보 문명론
이어령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5년 8월
평점 :
절판


 

대륙인 중국과 섬나라인 일본 사이에 한반도라는 '가위'가 존재함으로써 비로소 끊임없이 경쟁하면서도 절대 승자 없는 아시아의 다이내믹한 둥근 원이 만들어진다. 10쪽

 

저자 이어령은 한반도라는 가위가 있어 중국과 일본사이의 힘대결이 부딪혀 파괴되지 않고 유연하게 아시아가 유지될 수 있다는 시각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처음부터 딴지를 걸자면 과연 한반도가 가위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고 있는지를 물고늘어지고 싶은 마음이 크다. 하지만 우선 가위바위보라는 단어가 과연 이 아시아 3국을 표현하는 용어로 적당한지 부터 따져봐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시아와 가장 크게 대립되고 있는 유럽 및 미국의 이미지부터 비교해봐야 한다. 의견이 나뉠 때 서양은 동전던지기, 즉 앞 아니면 뒤 이렇게 극과 극으로 해결을 본다. 하지만 아시아는 이쪽 아니면 저쪽으로 반드시 승부가 나뉘어 승자 패자로 양쪽을 나누지 않아도 된다. 바로 가위 바위 보로 셋 중 누군가가 무엇을 내느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뿐만아니라 동전던지기는 동시에 던지지 않고 누가 먼저 던질것인지 부터 승부를 가르기 부터 시작하지만 가위바위보는 반드시 동시에 내야하는 공정성이 있다. 이를 두고 저자는 아시아는 '관계'를 중요시 한다고 언급한다. 이어지는 서양과 아시아의 다른점을 '엘리베이터'라는 단어를 예로 든다. 엘리베이터의 어원을 보자면 라틴어로 '올라간다'라는 의미만 가지고 있다. 엘레베이터는 물건을 들어올리는 기구가 맞긴 하지만 분명 우리가 타고 '내려오는'행위에도 도움을 준다. 이런 생각을 처음으로 가진 곳이 기차역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흔히 승객이 표를 구할 때 '표 사는 곳'을 찾기 마련인데 기차역에는 '표 파는 곳'이라 명하거나 심지어 길을 물을 때도 '파는 곳'이 어디냐고 묻기 십상이다. 그런가 하면 이마저도 아에 현대에는 '티켓'이라는 사물만 존재하고 티켓을 구매하고 판매하는 '존재'는 어디에도 없다. 서양이 이렇다면 아시아는 어떤가. 우선 한국의 경우 엘레베이터를 '승강기'라고 명명하므로써 올라가는 행위와 내려가는 행위 양쪽 모두를 표현한다. 일본이나 중국 또한 양쪽의 의미를 다 표현한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티켓을 판매하고 구입하는 행위는 주체가 기차역이 된다는 점은 같다. 이런 동서양의 의식차이를 가장 먼저 받아들인 쪽은 일본이다. 일본은 서양의 물질적이고 직선적인 가치관을 받아들였을 뿐 아니라 아시아 민족으로서 갖는 '관계'의 중요성도 결코 사라지게 두지 않았다. 동서양의 차이점을 알린 뒤 저자는 '가위바위보'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가위바위보가 가지는 또 하나의 큰 특질은, 그것을 구성하는 세 가지 요소가 서열 없이 서로 평등하다는 점에 있다. 274쪽

 

앞서 언급한 것처럼 서양이 관계를 제외한 양쪽의 주체만 중심에 두었으며 현대에 이르러 점점 더 '사물'만 존재하고 '인간'이 사라지는 세상에서 가위바위보 문명론의 의의는 바로 '관계'이자'평등'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문헌을 살펴보면 일본의 가위바위보 역사에 깊은 뿌리가 느껴지지만 일본 뿐 아니라 한국과 중국에서도 분명 어린시절 부터 자연스럽게 가위바위보를 배우며 자란다. 분명 승자를 가르는 방법 중 하나이긴 하지만 여러가지 경우의 수를 가지고 있다는 점, 동시에 겨룬다는 점 등이 절대적인 권위를 상징하지 않는 다는 점등 책을 통해 깨닫게 된 점이 많았다.

 

<문헌에서 찾은 가위바위보 참고사진 및 일본에서 열린 강연회장 모습을 담은 사진 등이 수록됨>

 

세계 각국의 가위바위보를 모아놓은 일본의 홈페에지를 살펴보면 어느 언어를 사용하든 어느 종교를 믿든 가위바위보만큼 전 세계에 폭넓게 퍼져 있는 문화는 없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61쪽

 

가위바위보가 전 세계에 퍼져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표현하는 의미에 있어서는 조금씩 다르다. 이 책이 번역본이라는 사실은 이미 소개글을 통해 다들 알았을 것이다. 이어령 교수는 분명 한국인이지만 초판을 일본어로 출간했다. 번역의 배신이라는 표현까지 차용하면서까지 직접 한국어로 출간할 수 없는 이유를 책 맨 앞에 알려주어 충분히 납득이 되었다. 가위바위보를 표현하는 말이 중국과 일본과 우리나라의 한자로는 제대로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어로 번역을 한 허숙 역자에게 정말 고마웠다. 일본어로 된 원문을 읽을 능력이 못되어 전문적으로 어느정도로 잘 옮겼는지 판단할 수 없지만 독자의 한 사람으로 읽는 내내 불편하거나 매끄럽지 못한 부분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본어로 먼저 출간된 책이기는 하지만 확실한 사실은 한국, 중국, 일본 모두 가위바위보 문명론을 시작으로 아시아가 갖고 있는 문화의 힘을 긍정적으로 도모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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