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잃은 개 - 절망 끝에 선 남자의 모터사이클 도망기
장준영 지음 / 매직하우스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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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아프거나 잘못된 길로 들어설 때 손을 내밀어 찬찬히 이끌어주는 부모도 있지만 반대로 걱정이 커 역정을 내는 부모도 많다. 아무도 부모연습을 하고 부모가 되는 것이 아니기에 어떤 방식이 더 좋은 방법인지 내 아이에게 당근과 채찍 중 어느 것을 먼저 주어야 할 지 알기 어렵다. 이 책의 저자 장준영씨의 아버지 또한 그랬다. 자기가 누리지 못한 유년기의 행복을 너무 다 해주려고만 하다보니 자신의 본심을 알아주지 않는 아들이 밉고 급기야 연을 끊는 극단에 이른다. 부모님에게 버림받은 청년이 안식을 누릴 만한 곳은 많지 않다. 공부나 연구에 매진하거나, 돈을 벌거나 혹은 이성을 만나 또다른 사랑을 만나는 것이다. 저자는 한 여자를 만나 그녀에게서 안식을 찾았다. 그렇게 마무리되면 좋겠지만 그랬다면 그가 굳이 세상의 끝을 찾아 인도까지 떠날 기회는 얻지 못했을 것이다. 많이 사랑하고 믿었던 그녀는 그를 만날 때 항상 가면을 썼다. 가면에 가려진 그녀의 본모습을 마주했을 때 저자는 한번 잃었던 '가족'과 '사랑'을 두번 잃는 비참함을 맛보게 된다. 상실감과 고통이 너무커 결국 죽을 마음으로 인도로 떠나 '길 잃은 개'꼴이 된다. 막상 인도에 도착하자 상상했던 이미지는 보이지 않고 악취와 낯선이를 바라보는 두려운 눈빛들이 그를 주눅들게 했다. 바이크를 타고 떠나겠다고 무작정 구매하려 나섰다가 사기도 당하고 준비없이 떠난 여행은 그야말로 시련의 연속이다. 시련이 닥칠수록 신기하게도 그를 돕는 손길이 등장한다. 마치 행운과 행복은 '시련'이라는 포장을 하고 신이 인간에게 준다는 말을 그대로 재연이라도 하듯 시련이 크면 클수록 그를 돕는 '좋은 사람'들의 수도, 그 크기도 커져만 간다. 하지만 저자는 이런 시련과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무언가를 '얻었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버려야 했던 비루한 감정들을 '버리고'왔다고 말한다.

​인도에서 용서라는 구원의 열매를 얻었다면, 유라시아 대륙에선 무엇을 얻을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훗날 여행을 마치고 '얻음'에 대해 생각해 보았을 때, 난 '얻음'이 없었다. 다만 비워져 있었을 뿐이었다. 194쪽

뿐만아니라 '타'와'아'의 싸움이라는 표현을 자주 쓰는데 겉으로 보여지는 '타'와 미처 성장하지 못하고 아버지를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연인을 여전히 가슴에 품고 있는 여린 '아'의 싸움은 여행을 하는 내내 그를 따라다닌다. 얻는 것이 아니라 버린다고 표현한 것은 아마 '타'와 '아'의 간극을 좁히는 과정이었다고 해도 될 것 같다.

한국에서의 나는 부모님, 선생님, 직장상사들의 '눈'에 의해 자아가 아닌 타아의 존재였고, 이곳에서 처음으로 남들 '눈'을 신경 안쓰는 내 가슴에서 막 태어난 '자아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막막의 사막을 건너는 동안 '아'와 '타;의 싸움이 시작했다. 77쪽

인도방랑이 끝인가 싶었는데 아직 다 비워내지 못한 미련과 유라시아를 바이크로 횡당하겠다는 목표는 그를 영국으로 이끈다. 그곳에서 유라시아 횡단을 위한 경비를 모으기 위해서였다. 한국에 들어와 돈을 모아도 상관없지만 군복무도 그렇고 무엇보다 아직 스스로 '끝'이라는 느낌없이 되돌아갈 수는 없었던 것이다.​ 지난 주에 런던에 있었던 까닭인지 그의 영국 무용담은 남다르게 다가왔다. 특히 한식당에서 벌어지는 노동력착취는 익히 알고 있었던 부분이라 어린 나이에 고생했던 저자도, 이민국 관리단에 의해 그와 함께 일했던 동료 대다수가 추방되었다는 부분을 읽을 때는 덤덤해지지 못했다. 나중에 바이크 장비를 빌려주는 호인들의 말처럼 '합법적'으로 일하라는 조언은 더욱 와닿았다. 탓하려는 말이 아니라 때로 자신을 힘들게 하더라도 '법'의 테두리 안에서 그나마 지켜지는 안전과 안정을 절실하게 깨닫지 않았을까 싶다.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라고 말해줄 수 있는 어른 MARK씨는 지금은 또 누군가에게 좋은 길잡이가 되고 있을지 궁금하다. 저자의 여행이야기는 개인 블로그에 간간히 포스팅되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죽으려고'갈 맘은 아니었던게 분명하다. 중간에 마음이 바꼈다고는 해도 저자가 인정한 것처럼 미치게 살고 싶어서 떠난 여행이란 생각이 읽을수록 굳혀졌다. 떠나지 않으면 살 수 없어서가 아니라 진정한 의미의 '길을 찾기위해'우선 길을 잃어야했던 것이다. 러시아 비자문제가 끝까지 발목을 잡아 결국 목표했던 유라시아 횡단을 하지 못하고 귀국했지만 누구도 그의 여행이 '미완성'이라고는 말하지 못할 것이다. 생명이 위태로울 때도, 불필요한 지출이 발생할 것을 알면서도 부당한 것을 부당하다고 말할 줄 알고 치기어린 모습일지라도 당당하게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모습은 정말 부러웠다. 귀국 후 아버지와 뜨거운 포옹으로 그간에 쌓였던 미움과 오해를 풀어낸 장면에서는 정말 드라마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보면 여행에세이라고 부르기 아까울 만큼 위기도 많고 행운도 많았던 그의 여행기는 소설만큼 흥미롭고 읽는 내내 즐거움을 전해주었다. 물론 그가 무사히 살아돌아와 글을 썼다는 전제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리스에서 그를 떠나보내며 많은 걱정과 눈물을 보인 선생님의 심정을 헤아리고도 남았다. 만약 그가 비자문제가 해결되어 러시아에 들어갔다면 이 책이 세상에 무사히 나왔을지 아무도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제대로 마음을 비우고, 앞으로 채울 수 있는 기회만 남은 젊은 저자에게 응원을 보내고 싶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표지에 실린 장발의 이미지가 너무 '길 잃은 개'와 같아서 내용을 제대로 살린 것은 분명하나 너무 잘 살려서 서점에서 책을 집어들기가 꺼려진다는 것이다. 저자 프로필에 찍힌 사진을 보면 정말 핸섬한 얼굴을 보면 뭐랄까 안도감이 들정도다. 표지를 좀만 순화시켜주었으면 싶은 바람이 있다는 정도외에는 용기 불끈, 의욕 충전하기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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