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보인다 - 그림이 어려운 당신을 위한 감상의 기술
리즈 리딜 지음, 안희정 옮김 / DnA / 2015년 4월
평점 :
절판


 

그림을 어떻게 하면 제대로 볼 수 있을까? 몇 천만원을 넘는 고가의 작품을 보는 데 왜 나는 비평가들이 갖는 그런 감동이 느껴지지 않는지 답답해 하던 때가 있었다. 작품을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 미술사 책을 펼쳐보니 예술가의 이름도 어려운데 화풍별, 시대별, 지역별 세분화되어 있어 쉽게 말해 공부하면 할 수록 점점 더 늪으로 빠지는 기분이 들었다. 지금이야 쉽게 감상하는 방법, 그냥 느끼는 대로 받아들이라고 유연하게 말하는 전문가들도 많지만 그래도 기왕이면 제대로 알고 싶은 것이 그림이다. 책, 그림이 보인다에서는 그림의 문법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는 데 오히려 속 시원하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 차라리 영문법처럼 정해진 규칙이 있다면 주입식 세대인 나같은 초보자에게는 편하게 느껴졌다. 막상 그림의 문법 첫 챕터를 읽으니 그동안 우리가 학창시절에 베웠던 기본적인 내용이었다. 마치 영문법을 다 알면서도 회화를 하지 못하는 것과 똑같았다. 역시나 '회화'는 어려운 법이다. 하지만 저자는 여기에서 포기하지 않고 우리 초보자들을 이끌어준다. 책 표지에 써있는 것처럼 '그림이 어려운 당신을 위한 감상을 기술'이다. 심지어 광고문구도 미술관에 가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이다. 스티브잡스가 보고 감동받았다는 마크 로스코의 그림도 등장하고 그리스 신화를 공부할 때 마다 심장 발작할 만큼 끔찍한 고야의 <아들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그림도 등장하니 챕터1은 쉽게 이해되었다. 기본적인 그림 문법을 우리가 잘아는 작품들로 습득했다면 이번에는 작품의 배경과 화가의 작화에 대한 설명에 이어 그림을 이루는 부분을 세분화 해서 일일이 설명해주는 챕터 2가 시작한다. 초상화, 풍경화, 서사 그림, 정물화, 추상화 별로 설명해주니 만약 이 책을 다 읽기 전에 가보고 싶은 전시회나 제대로 보고 싶은 작품이 있다면 해당 분류로 가서 먼저 읽어보면 된다. 물론 나는 차례로 읽었다. 왜냐면 곧 엄청난 양의 미술품을 만나러 갈 예정이니까!

 


취향은 주관적이고, 미술의 선호도는 전적으로 취향과 관련된다. 하지만 여러분은 먼저 판단을 내리는 데 필요한 기준들을 익혀야 한다. 7쪽

 


박민규 작가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의 표지로 책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다들 아는 바로 그 작품, <라스 메니나스(시녀들) 또는 펠리페 4세 가족>을 통해 분석한 내용은 일단 그림속에 벨라스케스가 붓을 들고 있는 '자화상'의 요소가 담겨 있으며, 작은 체구에 아리따운 어린 공주를 중심이 되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 그림은 인물의 크기를 통해 아이와 어른을 구분할 수 있고 난쟁이 시녀와 그녀의 치마가 구불구불한 선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도 알려준다. 이런 설명을 통해 이 그림이 단순히 공주와 시녀들의 초상화에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왕실가족과 궁정 내부의 관계를 옅볼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번에는 서사 그림 분석중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슬퍼하는 성모마리아와 복음서 저자 성 요한>이라는 작품 분석이다. 로히어르 판 데르 베이던의 작품으로 14세기와 17세기에 봉헌화에 자주 등장한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담겨있다. 지나친 과장없이 그려진 이 작품은 해골이 그림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 '삶의 무상'을 뜻하는데 역시나 이 그림 오른편에도 해골과 뼈가 그려져 있다. 그리스도의 죽음 앞에 인간의 육신은 대수로운게 아님을 알려준다. 왼편에 그려진 애도하는 성모마리아의 의상이 연한 파란색인 것은 기독교적인 해석으로 하자면 진리와 천국을 상징한다고 한다. 성모마리아 배경이 붉은 색인 것은 르네상스 시대 회화에서 자주 사용하던 것으로 이 그림의 작품 연대를 짐작할 수 있다는 것도 알 수 있는 것이다.

 


추상화는 보자마자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은 없지만, 그럼에도 붓질과 기법을 통해 형체들이 그려져 있다. 218쪽

 


별도로 작품을 언급하진 않겠지만 초상화나 풍경화 그리고 서사 그림의 경우는 미술사를 공부한다면 어느정도 그림 보는 '눈'을 키울 수 있다. 내가 정말 이 책의 진가를 느낀 것은 추상화를 분석한 부분이었다. 어떤 전문가는 추상화나 현대미술을 이해할 때 자기가 가지고 있는 내적인 부분에서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것도 인정했지만 공통적으로 느끼는 그 슬픔(마크 로스코의 작품처럼)을 느끼지 못한다면 쉽게 수긍하기 어려운 시각인데 그부분을 해소시켜 주었기 때문이다. 큐레이터나 도슨트의 설명, 오디오해설이 없더라도 이 책의 저자가 알려준 해석방법을 참고하면 미술관 가는 일이 영화관에 가는 것처럼 흥미롭고 즐거운 날도 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 책을 참고해서 다른 작품들도 더 많이 보고 연습했을 때 가능한 얘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