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를 그만두다 - 소비자본주의의 모순을 꿰뚫고 내 삶의 가치를 지켜줄 적극적 대안과 실천
히라카와 가쓰미 지음, 정문주 옮김 / 더숲 / 2015년 1월
평점 :
절판


어떻게 해야 소비병에서 탈출 할 수 있을까? 이것이 바로  이 책이 말하려고 하는 주제다. -30~31쪽

 

표지에서 보이는 검은 안대를 한 남자와 여자는 이 책의 또 다른 키워드 '익명의 소비자'를 나타낸다. 책을 읽기 전에는 안대=익명 이라고 바로 인식하지 못해서 지나치게 장난스러운 표지라고 생각했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다 읽고나니 이 만한 표지 일러스트도 없다고 생각한다. 익명의 소비자란 무엇인가. 단적인 예로 책에서는 편의점에서 물건을 사러 가면 판매하는 점원도 구매하는 소비자도 서로 얼굴을 알아보려고 노력한다거나 기억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돈을 주고 물건을 받는 그저 형식상의 인사만 주고 받을 뿐 그야말로 '소리도, 인식도 없는' 익명의 소비활동이 일어나게 된다. 저자는 전후세대이면서 소비1세대라고 할 만큼 버블경제를 겪으면서 자라났다. 주5일 근무, 파견근무 형태등이 불러온 소비를 부추기는 시대는 익명과 개인을 중요시 하는 사회로 변질되었다. 애초에 개인이라는 의미는 유럽에서 '이름과 얼굴'을 보장받으면서 자신의 의견을 지켜가는 존재이지만 일본에서는 이름과 얼굴이 사라지면서 홀로남은 존재로 전락하게 되었다. 3부까지는 저자의 사업이력을 바탕으로 일본사회가 어쩌다 익명의 소비자 사회가 되었는지를 장황하게 하지만 유쾌하고 꼭 필요한 내용들로만 꽉 채웠다. 덕분에 서문에서 부터 등장하는 낯선 사회학자들의 이름과, 저술 그리고 이론을 별도로 메모하느라 가장 많은 시간이 걸려 읽었다. 여기서 내용이 그쳤다면 이 책의 타이틀은 아마도 익명의 소비자에서 멈췄겠지만 저자는 이전에 발표했던 소상인이라는 단어를 해결방법으로 끌어낸다. 문제만 제기하고 마는 책들과 가장 다른 점이기도하다. 소상인이란 그럼 무엇인가.

 

과거에는 돈이 아니라 노동이 중요했다. 노동하기 위한 신체와 기술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재산이었다.

그런데 사회 전체가 소비화하면서부터는 소비할 수 있는지 없는지, 즉 돈이 있는지 없는지가 유일하게 중요한 잣대가 되어버렸다. - 47쪽-

 

소상인하면 딱 떠오르는 것이 동네 빵집이다. 직접 굽고, 판매도 직접하면서 지역 주민들과 활발하게 소통하며 하루하루 즐겁게 살아가지만 경제적으로는 크게 이윤을 남기지 못하는 상인. 저자가 말하는 소상인은 내가, 그리고 일반인들이 떠올리는 상황과는 조금 다르다. 규모가 작은게 아니라 경영방침이 무리하게 경제성장을 요구하는 것을 지양하는 형태가 소상인이다. 저자는 실리콘밸리에서 교육을 받고 직접 신사업전략을 강의하러 다닐 만큼 사업적 마인드나 스킬이 매우 뛰어난 사람이었다. 하지만 망했다. 10년동안 투자받은 5억에 은행에서 추가로 대출 한 2억까지 총 7억을 날린 셈이다. 물론 그당시에도 스스로 사업의 전략이란 것은 없고, 그저 꾸준히 열심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꼈다고 한다. 무엇보다 그에게는 반드시 어떻게 해서라도 '돈만 벌면 된다'라는 식의 경영마인드가 없었다. 그렇다보니 전국에서 그를 찾아오는 비즈니스 맨들은 사업이 축소되고 위기에 놓이자 더이상 그의 사업은 미래가 없다며 그를 떠났다고 한다. 그럼 저자는 단순히 실패한 사업가인가? 라고 판단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 분명 그는 번역사업을 성공시켰고, 현재 집 가까운 곳에서 개인사업을 하며 빚을 갚아가고 있다. 돈만을 위한 사업이 아니라 윤택한 삶을 위한 소비생활을 제대로 찾아낸 것이다. 바로 그 내용이 책에 담겨있다. 하지만 누구나 소상인이 될 수는 없다. 더군다나 소비하지 않고 사는 삶이 가능하지도 않다. 다만 여기서 중요한 건 먹고살기 위한 기본적인 소비를 '소비'라고 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필요하지 않은데도 구매하는 것, 낭비하는 것, 소비하기 위해 돈을 버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한다는 것이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다. 앞서 언급했던 주5일 근무와 파견근무 형태도 소비를 부추기는 사회를 만드는데 핵심사항이지만 또 다른 하나가 '핵가족화'로 볼 수 있다. 이 부분은 독립해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쉽게 공감할 수 있다. 본가에서는 생필품을 사느라 돈을 써본 경험이 거의 없지만 독립하는 그 순간 내가 마시는 물, 씻기 위해 사용하는 세면도구 그리고 빨래할 때 사용하는 세제 등 벌써부터 추가적인 소비활동이 시작된다. 얼핏 보면 앞서 열거한 주5일제, 파견근무 형태는 근로자들을 위한 시스템처럼 보인다. 하지만 자세히 조금만 들여다보면 모두 기업을 위한 시스템이다. 제화와 여가를 누리기 위해 근로자들은 소비해야 하고, 안주하고 싶어도 안주 할 수 없는 근무형태는 결코 근로자들이 원한 삶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점점 갈 곳을 잃는다. 이름 없는 소비자로서 그저 기업을 살찌우기 위해, 새장 속의 통닭 같은 존재가 되어 돈을 쓰고 기업의 이익을 창출시킨다. 이런 구도에서 탈출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진정 '탈소비자'를 지향하는 길이다. - 127쪽-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것을 넘어 비관하고 어쩔 수 없다며 소비해서는 안된다. 저자의 말처럼 현명한 소비가 필요하다. 얼마전 읽었던 '적게 소유하며 살기'라는 책에서도 말하는 것처럼 안쓰는게 미덕이 아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싸게만 사는 것도 미덕이 아니다. '좋은 것'으로 '꼭 필요한 것'만 사는 것이다. 저자는 이를 '스팬드 시프트'라는 용어로 책에서 자주 언급했다.  동네목욕탕에 가면 아줌마들이 시시콜콜 집안얘기를 한다고들 하지만 서로 잘 모르는 동네주민끼리 그렇게 이야기를 나눌만한 장소가 요즘은 많지 않다. 그 때문에 오히려 장인들의 가게가 더 화제가 되고 줄을 서는 맛집으로 통하는게 아닐까. 소비를 그만두다라는 타이틀 처럼 무조건 안사는게 아니라 효율적인 소비, 돈이 전부가 아니라는 올바른 생각-저자는 결코 돈의 가치가 낮다거나 불필요 하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을 갖게 하는 재밌는 책, 소비를 그만두다를 자신있게 추천한다.

 

인상깊은 구절

원래 책은 그리 많이 팔리는 것이 아니다. 책이 100만 부가 팔린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지성과 정보 중 무엇을 추구한 결과일지 궁금해진다. 지성을 추구하는 사회라면 한권이 100만 부 팔리는 것이 아니라 여러 책들이 1만~2만 부씩 팔려야 하지 않을까? -17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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