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카로 가는 길 - 이슬람의 진정한 아름다움과 영적 가르침
무함마드 아사드 지음, 하연희 옮김 / 루비박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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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슬람의 진정한 아름다움과 영적 가르침이란 부제를 가진 책, 메카로 가는길. 저자 무함마드 아사드는 유대계 오스트리아인이지만 성인이 된 이후 자발적으로 이슬람교로 개종 후 이슬람문화권의 곳곳을 방랑한 사람이기도 하다. 기독교와 비교했을 때 어느 종교가 더 우월하다라는 입장이 아니라 그동안 유럽중심의 세계관을 벗어나 올바른 이슬람 문화와 종교를 알리기 위해 이 책을 집필했다고 한다. 때문에 이슬람문화에 대해 그리고 종교에 대해 강박에 가깝게 다가올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됨을 미리 말해두고 싶다. 오히려 이 책은 우리가 사는 동안 그토록 방황하는 이유, 왜 한 곳에 정착하질 못하는지에 대한 답과 우리가 머무는 문화만큼 다른 문화 또한 존중해야 된다는 깨달음을 던져 줄 뿐이다. 아니 이것도 무거운 짐이 될 것같다. 읽어보면 알게되겠지만 이 책은 그저 메카로 가는 그 여정일 뿐이다.


모순이지만 이런 방랑벽은 모험심보다는 나만의 안식처를 찾겠다는 갈망에서 비롯되었다. 유럽에서 나고 자란 자에게 주어지는 전형적 운명을 거부하고 관점과 외형 모두 판이하게 다른 세계를 찾아 떠나도록 만든 동력은 바로 이 내적 발견에 대한 갈망이었다. p.34

32세 때 자이드와 함께 떠나는 여정 사이사이 그가 이슬람교로 개종하기 전 후의 과정이 함께 등장하는데 우선 사막에서 방랑하는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사우디아라비아 국왕과의 첫 만남과 그가 베풀어준 다양한 혜택을 묘사할 때는 그동안 유럽에서 단순한 흥미위주의 관심을 떠나 적대적이기 까지했던 사실을 깨닫게 했다. 물론 유럽 뿐 아니라 이슬람외에 아시아인들이 던지는 오해와 선입견도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순 없다. 국왕과의 일화 이후 모래폭풍을 맞이하는 정도야 예사고 사흘이 넘게 아무도 없는 사막에서 죽음 직전에 닿아 사경을 헤매이는가 하면 눈을 감고 달리다가 늪도 아닌 곳을 늪이라 착각하고 정신없이 달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내용은 자연이 그 상대가 되기에 크게 긴장감이 들진 않았지만 영국 탈영병이라 오해받는 다던가 얼마전까지만 해도 함께 탈출을 감행했던 동료가 생포되어 죽음을 맞이하는 사건들 앞에서는 숙연해질 수 밖에 없었다. 긴장감이 덜한 철학적인 방랑으로 화제를 돌리자면 흥미롭게도 그가 이슬람교 이전에 노자사상 등 다양한 종교와 사상을 공부했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했던 방랑하는 모험심이 단순히 물리적 방황이 아니라 정신적 방랑도 함께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노자사상을 처음 '발견'했을 때와 달리 오히려 이슬람교에 대한 그의 생각은 당시만 하더라도 편견에 가득차 있었다고 한다. 그랬던 그가 케이크 나눔으로 인해 아랍에 대한 오해가 서서히 풀리는 장면을 보면 결국 어느 종교나 문화를 전파할 때 아주 사소한 배려와 '먹거리'라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불변의 진리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현재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는 각종 테러와 학살에 의한 피해의 시초가 되는 유대인 정착촌과 관련된 부분이 그러하다. 밸푸어 선언에 의한 이 정책은 지난 유럽사에 관련된 책을 읽을 때 제대로 알 수 있었는데 이 책에서도 역시나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어쩌면 저자가 유대계였기에 더더욱 이 부분을 진지하게 다룰 수 있었던 것 같다. 좀 더 깊게 생각해보자면 유럽을 비롯한 서구사회와 그들의 문명을 빠르게 받아들인 나라가 개발이란 명목하에 자행된 침략과도 같은 경우는 쉽게 우리나라의 경우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아무리 의도가 좋아도 함부로 외부 세력이 개입하면 한 국가의 질서는 무너진다. 한데 중동사를 공부한다는 학생들이 이 점을 깨닫지 못하는 문제도 심각하다. 열강들이 식민지에 건설한 철로만 눈에 들어오고 속절없이 짓밟힌 그 식민지의 사회 구조, 자긍심은 보지 못하는 것이다. p.123


종교적인 부분을 좀 더 꺼내보면 이슬람교의 경우 지나치게 절제를 강조하고 이분법적인 다른 종교에 비해 긍정적인 면이 많다는 것이다. 육신은 버리고 갈 것이라는 기독교와 달리 신의 창조물인 것은 영혼과 다름없기에 동등하다고 믿는 것도 그러하며 가장 민감하며 대다수의 비종교인들이 부담을 갖는 '원죄'에 대한 개념이 없다는 것도 그렇다. 오히려 인간은 선천적으로 순수하며 앞서 말했던 영혼과 육신 자체를 분리하지 않는다. 다만 신을 믿지 않을 경우 후천적 잘못에 의해 잘못될 수 있기에 신을 믿으라고 코란은 말한다. 결국 신을 믿고 겸손한 자세로 살아가야 하는 것은 기독교와 이슬람교 뿐 아니라 그 어떤 종교도 마찬가지인 셈이다. 얼마전 방한했던 교황의 말씀처럼 종교를 믿지 않을 경우 양심에 따라 살아가라는 것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것 또한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위험했던 저자의 사건사고와 방랑여정 그리고 이슬람교와 문화에 대해 알지못했던 부분을 알아가는 재미도 있지만 결국 우리가 원하는 종교, 원하는 삶의 방향이라는 것은 지나치게 속박되는 것도 타인에 의해 결정되는 것도 아니었다. 반대로 우리가 신념을 갖고 있는 그 무엇이든 타인에게 강조해서도 안되며 오히려 그럴수록 이해하는 열린 사고를 가져야 된다는 점이다. 저자가 서구와 이슬람문화를 비교하며 이야기를 한 것처럼 기회가 된다면 이슬람 뿐 아니라 다른 종교를 구체적으로 비교하며 제대로 된 문화를 알려주는 저서를 읽어보고 싶어졌다.

이슬람이란 종교는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이란에서도 무한한 발전의 가능성을 열었다. 고대 카스트 제도를 타파하고 모두가 자유롭고 평등한 공동체를 건설했으며, 오래도록 휴면 중이었던 문화 에너지를 일깨웠다. p.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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