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거 게임으로 철학하기 - 순수 저항 비판
조지 A. 던 외 지음, 윌리엄 어윈 엮음, 이석연 옮김 / 한문화 / 2014년 11월
평점 :
절판



지난 달 헝거게임 3 모킹제이 1부가 개봉되었다. 이전까지는 서바이벌 게임에서 활약하는 캣니스의 모습이 주가 되었다면 3편 부터는 게임이나 영화속 허구인물을 만난다기 보다는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아 흥미로웠다. 또 그만큼 생각할 거리가 많았는데 책, 헝거 게임으로 철학하기는 19명의 각기 다른 저자의 철학적 해석을 만나볼 수 있다. 단, 영화나 원작 소설을 안본사람 중 스포를 원하지 않는다면 이 책은 좀 나중에 읽는 편이 좋을 것이다. 대략적인 줄거리뿐 아니라 아직 개봉되지 않은 3편의 2부 내용도 언급되어 있어 책을 읽으면서 아차 싶긴 했다.


19개의 글 중 차례로 읽지 않고 우선 읽었던 내용들을 이야기해보자면 3편에서 등장했던 'The Hanging Tree'에 관한 해석편이었다. 영화를 보면서 이 노래가 나오던 때에 느꼈던 감동이 컸기 때문이기도 하고 가사 자체가 좀 괴기스러우면서도 처연했기 때문인데 책에서 해석한 것과 영화를 볼 때 번역된 자막이 약간 차이가 있었다. 노래의 반복적으로 나오는 부분을 제외한 1절의 가사는, 'Where they strung up a man they say murdered three Strange things did happen here.' 3명을 죽인 남자를 매단 곳이라고 자막이 나왔었는데 책의 해석은 다음과 같다.

 

'노래는 '죽였다며'라는 말로 처벌이 부당하다는 걸 암시한다. 소크라테스도 부당하게 처형당했다.


이 노래에 철학적인 해석은 소크라테스가 말한 좋은 삶은 정의로운 삶이며 그렇지 못한 사회에서 사는 것이 가치있는가를 물었을 때 '살아남는 것'만이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시말해 캐피톨의 삶도 그 외에 12구역이나 13구역의 삶도 정의롭지 않다면 가치가 없게 되므로 캣니스는 저항을 택하게 된다. 뿐만아니라 이 노래를 피타와 게일을 걱정하게 되는 상황이면 캣니스에게 떠올려지는데 음악이라는 것의 역할, 처음에는 좋고나쁨이 없는 예술적인 가치가 점차 어떻게 이용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예가 되기도 한다.


캣니스가 조공인이 되기전후에 살았던 12구역과 저항군으로 살아가는 13구역. 이 구역들과 캐피톨의 가장 큰 차이점은 '굶주림'이다. 굶주림은 인간이 느끼는 욕구중 가장 기본적인 것으로 양쪽의 삶이 어떻게 다른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다. 캐피톨 시민의 삶은 그저 먹고 또 먹는 일 뿐이다. 가장 기본적인 욕구를 끊임없이 충족시켜줌으로써 다른 추가적인 욕구에 대한 사항도 짐작해볼 수 있다.


하지만 굶주림은 수많은 뜻을 지닌 말이며, 가장 넓게는 모든 종류의 욕구를 가리킨다.


욕구에 충만한 캐피톨 사람들이 신경쓰는 것은 외모에 대한 관심뿐이다. 그것이 타인에 눈에 어떻게 보일지를 의식하는 캣니스는 그들의 이상스러운 외모를 이해할 수 없다. 이를 이해시키기 위해 플루타르크는 '빵과 서커스'라는 로마 제국에서 유래한 말뜻을 이해시키는데 이는 나라의 시민이 배불리 먹고 유흥을 누리는 대가로 권력과 책임 포기하게 된다라는 것이다. 때문에 그들에게 있어 그저 생각없이 지나친 꾸미기에 빠져있는 모습이 당연할 뿐 그렇지 못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해 보일 수 있다. 캐피톨 사회에서는 이런 것이 하나의 '사회규범'으로써 자리잡은 상태로 현실에서 보자면 나라마다 조금씩 다른 규범들을 떠올리며 이해하기다 쉽다.


서문에 주의사항으로 적은 것처럼 이 책은 영화나 소설을 먼저 읽고 난 뒤에 보면 제대로 이해되지 않거나 궁금했던 부분이 많이 해소된다. 또 전혀 생각지 못했던 부분에서 깨닫게 되는 것도 있어 재미있기도 하다. 영화를 안봤다면 마치 전시관에 들어갈 때 가이드북 또는 오디오 서비스를 받는다고 생각하면 될 것도 같지만 그래도 스포일러는 좀 아쉽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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