셈을 할 줄 아는 까막눈이 여자
요나스 요나손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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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스 요나손의 신간 셈을 할 줄 아는 까막눈이 여자.

이책을 이야기 하면서 전작 창문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을 언급하지 않을 순 없을 것 같다. 마치 시리즈처럼 닮은 듯한 책표지도 그렇고 빠르게 전개되는 사건과 역사적 사건의 틈사이로 한 인간의 기구하지만 재기발랄한 삶이 녹여져있는 구성은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전작에서는 본인이 의도하지 않았던 '우연성'이 좀 더 크게 부각되었다면 이번 작품의 까막눈이 여자 '놈베코'는 우연도 우연이지만 사건이 발생했을 때 그녀가 바라보는 시각은 '불행'이전에 '희망'이라는 점이다.

 

놈베코. 남아프리카에서 태어난 이름없이 태어나 역시나 이름없이 죽어가게 될 안타까운 흑인 중 하나였던 그녀. 그녀가 태어난 집이나 가정또한 정해져있는 듯한 불운의 시작이지만 '셈을 할 줄 아는'덕분에 그야말로 '똥구덩이'에서도 살아남았다. 어른 아이가 공동변소의 책임자가 되는 것은 물론 말이 안된다. 이 책의 경우 초반이 상당히 중요한데 만약 '말도 안돼!'라고 한번 머릿속에 불이 켜지만 이 책은 그야말로 그저 두꺼운 책일 뿐이다. 이 책을 읽기전 내가 보았던 책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이들이 남긴 저술이었다. 그렇기에 목적이 있는 삶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쓰러지지 않으며 절망속에서도 희망을 갖는다는 것이 어떤 영향을 주는지 알 수 있었다. 책을 좋아하고 문자를 읽을 수 있었지만 그것을 그저 연애 혹은 욕망의 해결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여 희망을 찾지 못했던 노인, 전갈에게 물리고 금새 죽을 것 처럼 죽는다라는 말만 반복했던 통역사 그리고 홀예르1의 모든 것이 부정적인 여자친구. 도대체 그들은 어쩜 그렇게 불행만을 보려했을까 싶으면서도 퇴근길에 만나는 사람들과 회사에서, 지하철에서 혹은 음식점에서 겪었던 불쾌한 일들만 공유하는 나를 보며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도대체 난 놈베코라면 집에서 10분도 안되는 거리에 도서관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매일을 감동하며 살 수 있었을텐데 말이다.

놈베코가 남아프리카를 탈출할 수 있었던 것도, 핵무기를 품에 안고 수년을 버틸 수 있었던 것도 그때문에 허구같지 흥미롭게 마주할 수 있었다. 그런 맥락으로 책을 읽게 되면 수백페이지가 금새금새 넘어간다. 심지어 중국인 세자매가 탈출을 위해 핵과 바꿔치기한 육포가 등장하는 부분에서는 도저히 육포를 뜯지 않고서는 읽을 수 없는 괴로움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수많은 사람들이 놈베코의 '행운'을 위해 죽어간다. 책에서는 건조한 어체로 '깔려 죽었다'식으로 넘어가지만 그런 점이 한편으로는 참 덧없이 죽어버리는 구나 싶은 생각도 든다. 놈베코의 입장에서는 '방해물'이라는 이유에서 라는 부정적인 마음이 살포시 들기도 한다. 물론 이것은 개인적인 우려다. 전쟁영화를 볼 때 이름없이 죽어간 엑스트라에도 신경을 쓰는 나같은 이들의 경우에 이것이 그냥 죽었구나 정도로 넘어가지지 않기 때문이다.

홀예르와 놈베코가 처음 만났을 때, 서로가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는 인물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면서도 2세를 꿈꾸는 모습을 보며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3포에서 이젠 4포 그리고 5포시대라고들 한다. 놈베코와 홀예르의 경우라면 분명 둘의 만남조차 포기해야될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들의 대책없음, 2세가 태어났을 때 그들처럼 희망을 보는 것이 아닌 절망을 볼 수도 있다는 가정은 아에 하지를 않았다. 그들이 옳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부럽다고 말하고 싶다. 뻔한 불행속에서도 '희망'을 보는 그들. 셈을 할 줄 아는 까막눈이 여자는 희망을 볼 줄 아는 여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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