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아는 선비는 없다 - 조선을 지배한 엘리트, 선비의 두 얼굴
계승범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1년 12월
평점 :
품절


우리가 아는 선비는 없다

조선시대의 선비를 떠올리면 남루하거나 비단 도포를 입거나 상관없이 학문에 정진하고 가정에 충실하며, 무엇보다 어진 마음으로 왕과 나라에 대한 지조를 지키는 뜻있는 남자사람이었다. 하지만 서명이, 우리가 아는 선비는 없다이며 부제가 조선을 지배한 엘리트, 선비의 두얼굴이라길래 호기심에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괜한 호기심은 두눈을 잃을 수 있는 치명적인 위험이 있는데 그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조선시대의 존경스럽기까지 했던 선비들의 모습이 장님 코끼리 만지듯 평가했던 것임을 알게된 것이 결코 유쾌할 수는 없었다. 저자는 어떤 대상의 단면만을 보고 칭송하고 우러러보는 잘못된 평가를 바로잡기 위해 책을 폈다고 하지만 위인전을 통해 친근하게 다가왔던 이들조차 비약하면 위선자와 같았던 역사적 사실에 기운이 빠지긴 하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와 함께 5장으로 구성되었는데 1-3장이 우리가 알고 있는 선비에 대한 반박이라면 4장은 조선시대의 실제 선비들의 모습을 담았으며 5장은 현대에 이르러서 선비를 올바르게 평가하는 것의 중요성을 좀 더 상세하게 서술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지조 있으며 자신의 신조를 꺾지 않는 모습을 선비라 할 때 과연 근대 및 현대에 이르러 독재정권을 펼쳤던 전 전대통령이나 박대통령의 경우는 어떻게 평가할 수 있겠냐는 의문에 나 역시 할말을 잃었다. 조선시대에는 '선비'로 대접받다가 현대에 이르서는 '독재'로 평가되는 이중잣대등이 이 책을 흥미롭게 만드는 여러 요소 중 하나가 되는 것이다.

 

조선시대, 그때는 신분제도가 있었으며 중국과 달리 모계의 신분이 크게 인생을 좌우했는데 대표적으로 아버지가 양반이라도 제 어미가 노비이거나 후처 혹은 첩의 자식이면 관직에 오를 수 없었다. 하지만 그당시에는 깨어있는 선비들은 분명 있었기에 인재등용에 있어 철폐까지는 아니더라도 신분의 제약을 낮추거나 예외를 두자는 의견이 있었지만 그 의견이 우리가 믿었던 그 '선비'들에 의해 좌절된다. 해당 제도를 반대했던 인물중에 이황이 있었다는 사실이 슬프기 까지 했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아니다. 조선엘리트들이 다가오는 사회변화에 대처하는 방법은 개인주의를 넘어서 이기적으로까지 비춰졌다. 유교사상이라는 것도 자신들의 권위와 영위를 위한 술책으로 보였다는 점이 여러모로 씁쓸했다.

 

그렇게 비난에 가까운 본문의 글을 뒤로 하고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꺼낸 이야기의 대부분을 거듭 되풀이 하며 이제 그만 선비를 역사로 놓아주자고 한다. 선비가 뜻하는 바도 시대에 따라 달라졌는데 70~80년대에 선비는 경제활동을 게을리 하고 제대로 가정을 보살피지 못한 한량에 가까운 이미지였다. 가부장적 제도로 대표되는 유교사상이 언급되면서 다시금 선비가 추앙받고 재평가 되기 시작했지만 이 역시도 서문에 밝힌 것처럼 왜곡된 평가였기에 올바른 평가가 필요하다는 점이 저자가 이 글을 쓰게 된 경위라고 볼 수 있다. 과연 선비와 유교문화, 이는 존경받아야 할 존재와 사상인지 앞으로 어떤 선비에 대한 평가가 나올지 기대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