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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사관 살인사건 ㅣ 스토리콜렉터 7
오구리 무시타로 지음, 김선영 옮김 / 북로드 / 2011년 12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아주 재미난 책이다. 여기서 재미남의 이유가 여타의 다른 작품들과는 전혀 다르다.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끝까지 해답을 듣지 못한다는 점에서 아주 악의적인 비소의 재미라고 보면 맞을 것 같다. 책을 읽고자 하면 활자를 따라 눈을 굴리기면 하면 된다. 하지만 이해하려 드는 순간 노리미즈가 그러했듯 제 아무리 박학다식한 독자라도 쉽사리 통쾌한 웃음으로 읽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흑사관으로 불리는 대저택에서 일어나는 연쇄살인 사건이란 말에, 일본의 3대 기서란 말에, 탐정이 등장하는 추리소설 중에 손꼽히는 작품이라는 말에 내가 너무 얕잡아봤다. 일드에서 흔히보이는 몇몇 개의 트릭- 트릭이라고는 해도 어찌보면 작가 입장에서 볼 때 정말 아무것도 아닌-를 해결하고나면 아! 그런거였군 할 수 있지 않았다. 솔직히 모르겠다. 읽고 읽어도 노리미즈의 공책을 뚫어져라봐도 잘 모르겠다 싶었다. 처음에는 리뷰를 요약하듯 적으려고 했다. 하지만 장르가 문학이지 않은가! 그것도 추리소설인데 어설프게 추리할 수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범인이 나열해놓은 그 수많은 장서와 장치를 내가 어찌 열거 할 수 있겠는가. 특히 사건의 바탕이 되는 파우스트는 아직 완독하지 못한 책이었는데 다시금 미완의 독서를 통탄케 했다.
이렇게 적으면 이 작품이 꽤나 난해하다보다 아주 사람 답답하게 만드는 책인가보다 싶어 겁내고 물러설까봐 몇마디 더 붙이자면, 근래 보았던 셜록홈즈, 밀레니엄의 기자와 천재해커 소녀를 떠올려보면 좋을 것 같다. 포스트잇으로 사건을 하나하나 인물도 하나하나 벽에 붙여놓고 따라가며 이 책을 다시 찬찬히 공부하듯 읽어보고 싶을정도의 매력은 가진 책이다. 무엇보다 이책을 읽고나면 접하지 못한 명작들도 만날 수 있는데 작가가 픽션으로 탄생시킨 작품들이 아니란 사실이 더 매력있게 느껴졌다. 그리고 또 하나. 페이지를 넘기다보면 살인사건의 정황을 엿볼 수 있는 판화가 등장하는데 피가 난무하고 실사를 담은 사진도 아닌데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는 오히려 흑백이미지 속에서 더 잔혹함을 갖게 만든다는 점이다.
고저택, 흑사관이라는 흑사병과 관련된 괴기스러운 별칭이 붙여진 그곳에서 일어나는 살인사건. 단순한 트릭도 가벼운 원한으로 풀려지지 않는 난해함. 별거 없는 흰 뼈에 얽힌 근육과 조직들처럼 붙어있는 끝없는 이야기들. 어떤 독자가 전쟁이 날 경우 그 어떤 책보다 이 책 한권을 가지고 가겠다는 까닭을 이제야 알 것 같다. 이 책은 몇 번을 읽어도 질릴수도 시시해질 수도 없기에 독자를 끊임없이 빨아들이는 힘을 가진 책이다. 물론 난 포스트잇으로 탐정흉내를 내보려는 흑심을 숨기지 않겠다. 그리고 한마디 더, 역자 김선영님 정말 애쓰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