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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트 씨네 ㅣ 지만지 고전선집 158
외르케니 이스트반 지음, 정방규 옮김 / 지만지고전천줄 / 2008년 7월
구판절판

토트 씨네, 이런 폭력을 만나본 적있는가!
외르케니 이슈트반의 작품을 토트 씨네를 통해 처음 접하게 되었다. 독일문학 및 작가를 좋아하기에 드문 경우긴 해도 헝가리 문학을 접할 기회는 있었지만 이처럼 정신적인 폭력에 대해 웃기면서도 중간 중간 소름돋을 만큼 절묘하게 묘사 한 작품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처음인 것 같다. 아무개 '소령'을 만나게 되더라도 토트 씨네를 떠올리지 않을수는 없을 정도다.
화려하거나 특색있는 마을은 아니지만 나름의 질서와 평안을 유지하는 마트라센탄나의 모범스러울 정도로 화목한 가정 '토트 씨네'에게 놀랄만한 손님이 방문하기로 되어있다. 다름아닌 마을 최연소로 군에 징집된 아들의 상사인 버로 소령의 방문이 그러하다. 단순히 군에 입대한 아들도 아니고 전시중인 경우라 토트 씨네 부부와 그의 누이동생은 소령의 방문이 커다란 중대사일 수밖에 없다. 뿐인가. 마을의 60% 이상의 성인남성이 군에 소집된 상태라 마을 잔치라고 부를 정도의 큰 일이었다. 토트 씨네는 나름 자부심도 생기고 부디 소령의 방문을 통해 자신의 아들의 안위가 어느정도 안정되기를 기대하며 최선을 다하려고 맘먹지만 그랬다면 애초에 '폭력'이란 것이 등장 할만한 자리가 남아있지 않았을것이다. 신경쇠약, 언제 빨치산이 침입할지 모르는 전시상황에서의 군인의 심리상태는 겪어 본 적이 없어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환한 대낮보다 적군과 아군을 분별하기 어려운 한밤이 더더욱 긴장되기에 버로 소령의 신경쇠약과 밤에는 더더욱 깨어있으려는 그의 상태는 전시중이라 해도 전혀 전쟁의 테두리 안에 속해있지 않는 살던 '토트 씨네'에게는 버거운 상대였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외르케니의 다른 몇몇 작품과 함께 연극무대에까지 올려졌던 작품으로 소설 내용만 봐도 눈앞에서 등장인물들의 걸음걸이, 상자를 접을 때의 차마 웃지못할 상황등이 펼쳐졌다. 상자접기에 이어 가로등불에 비춰진 그림자를 개울이라 착각하고 뛰어넘는 소령과 토트씨의 모습은 연극으로 꼭 만나보고 싶을 만큼 웃음이 나기도 했다. 하지만 웃음이 나는 것은 순간이고 점점 괴로워하다 못해 변소에서 그나마의 평안을 찾는 토트씨의 모습을 볼 때마다 모든 것을 다 집어삼킬 수 있을만한 폭력이란 것이 가히 어떤 정도인지를 짐작조차 할 수 없게 만들었다. 심지어 그 폭력의 힘은 그저 텍스트를 읽었을 뿐인 나에게마저 전이되어 왔다. 마지막 결말을 마주할 때의 통쾌함이 바로 그것이었다. 통쾌함이라니. 도대체 폭력의 영향력은 머뭇거림도 제한성도 없었던거다.
서문에서부터 폭력의 주제임을 드러내놓을 뿐 아니라 전장, 군인, 소령 그리고 죽음이 끊임없이 등장하는 이 책의 경우 정신적인 폭력이 아니라 신체적인 폭력을 떠올릴 확률이 높을 것 같다. 너무 잔인하거나 징그러우면 어쩌나하고 걱정도 했는데 진정한 폭력은 눈에 보이는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폭력만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우편의 수신여부가 우편부가 수신인을 좋아하는지의 여부에 달라진다는 것은 어쩌면 독자의 모습을 염두해 둔 설정이 아닌가 싶었다. 단순히 더이상 소령에게 안절부절 할 필요없음을 알리지 않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독자가 이 작품을 마주했을 때 어떤 기분을 갖느냐에 따라 서문에서 물었던 '그'러한 폭력의 존재 여부에 대한 답변이 달라질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나의 대답은 'Yes'다. 그것도 Absolu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