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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여자, 혼자 떠나는 유럽
유경숙 글 사진 / 끌리는책 / 2011년 10월

축제기획자 유경숙의 여행에세이라고 하기에는 여행정보도 많고 무엇보다 여행경험이 많은 그녀의 살가운 충고도 많은 책이라 단순히 에세이라고 말하자니 아쉽다. 이책을 본격적으로 읽기 전에 대충 훑어봤을 때의 감상은 내가 기대했던 여행책이 아니라는 점이 었다. 화려하게 불꽃을 쏘아올리는 축제의 피날레를 표지로 사용했으며 표지하단에는, 간절히 그리워했고 까지는 좋았으나 돌아올 수 있어 행복했던 축제의 시간이라고 적혀있었고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바로 '돌아올 수 있어 행복했던'에 책의 요지가 전부 포함되어 있다고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원했던 달달하고 소소한 이야기도 아니고 그렇다고 여행정보를 해박하게 꽉꽉 넣어준 정보책도 아닌 어중간함이 싫어 한동안은 계속 읽기를 미루어두었다기 보다 거부한 상태로 방치했었다.
그러다 작년 이맘때즘 언니와 함께 여행루트를 정하고 짐을 꾸렸던 그때...즘의 한기가 드디어 시작된 까닭에 내 맘보다 내 손이 먼저 이 책을 집어 들었다. 중간을 넘어서면서 까지 내가 책을 잘못봤구나. 내가 저자 유경숙씨의 의도를 오해했구나 하면서 신나게 읽었다. 밤이 깊어 내일 일이 중복으로 잡혀있어 오전부터 서둘렀어야 하는데도 무작정 읽어갔다. 리뷰를 적기위한 준비도 없이 그렇게 오래도록 나의 스탠드는 어둑한 나의 침실을 적당히 조도가 맞춰진 책방의 한구석이 되어주었다. 특히 늦은밤 유럽의 한적한 마을에서 만난 세명의 천사들의 이야기라던가 카펜터라는 어감을 좋아하는 나처럼 그녀에게도 그런 느낌을 피부로 느끼게해주었던 목수와의 만남, 무엇보다 포르투갈에서 만난 사랑을 할줄알고 받을 줄 알았던 할머니의 이야기와 한이 가득 서려있어 자국의 문화를 다시 보게 해주었다던 파두공연 관람까지 그녀의 이야기는 내 머릿속에서 다 읽고 난 뒤에 나도 그녀에게 엽서나 메일을 띄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까지 들게했다.
하지만...거기 까지였다. 점점 뒤로 갈 수록 지나치게 한 곳만을 보고, 자신이 받고 있는 그 아름다움에 취해있는 듯했다. 표지에 적혀있었다 '돌아올 수 있어 행복했던'이란 문구가 그제서야 제대로 내 머릿속에서 고개를 처들었다. 저자에게 있어 여행은 돌아올 수 있어야 떠날 수 있는 여행인데 내 머릿속에, 내 맘속에 그려져있는 여행은 돌아오는 것을 계산하면서 떠나는 것은 여행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물론 아무생각없이 회사를 때려치고 여행이나 가자라는 식의 목적없는 여행은 별다른 도움이 안되고 오히려 돈날리고 시간날리고 그 이상의 것을 상실할 수도 있다는 점은 크게, 아주 많이 동의한다. 하지만 반드시 그럴까. 지금 내가 돌아왔을때 아무것도 변화되지 않을 뿐 아니라 심지어 퇴행처럼 보이더라도 내 마음속의 큰 응어리가 사라지고 내 머릿속에 한계가 조금 더 넓어진다면 돌아와서 또다시 구직사이트를 뒤적이고 집에서 '찬밥신세'로 전락하더라도 다녀와야 하는게 여행이라고 생각한다. 여행이 축제라고 하던 그녀의 말은 어느새 즐길 수 있는 레벨과 선을 그어놓고 제대로 자신의 자리를 확보하지 못한 이들에게 그 권한을 앗아가는 듯한 기분까지 갖게 했다. 실제 여행을 떠났을 때 만난 20~30대의 여성들의 80% 이상이 퇴사 혹은 이직하려는 그 텀을 이용해 날아온 이들이 많았지만 그들의 한숨은 커녕 오히려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쉽게 말해 돌아가는게 정답인지도 모르는 그 상태에서도 충분히 빛나고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결론, 무작정 떠나려 했던 이들에게 이 책은 분명 큰 도움이 될 것이고 무모하려 했던 자신의 태도를 반성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해 줄것이다. 또한 현명하게 여행을 떠나려 하는 그 시점에서 이것저것 계산해보고 돌아왔을 때 반드시 달라져있을 자신을 확신하는 이들에게는 지원군, 응원군 뿐 아니라 동지를 만난 느낌도 받을 것이다. 하지만 여행이라는 것이 반드시 돌아올 수 있어 행복하다고 느낀다는 그말이 목에 걸린 아주 작은 가시처럼, 종이에 손이 어설프게 베어 물이 닿거나 할 때마다 조금씩 쓰라려 오듯한 느낌을 가진 이라면 과연 이책을 두 번 펼쳐볼지는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