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절밥 한 그릇 - 우리 시대 작가 49인이 차린 평온하고 따뜻한 마음의 밥상
성석제 외 지음 / 뜨란 / 2011년 8월
품절


언니를 따라 올해 들어 자주 절을 찾았다. 몸이 좋지 않아 멀리는 가지 못하고 근교에 있는 봉은사, 길상사, 조계사 등을 잦게는 한 달에 2번 적게는 한번 씩이라도 들렸던 것 같다. 따지고 보면 교회에 출석한 날 보다 절에 가서 앉아있었던 적이 더 많았을런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변심인 것은 아니지만 종교의 하이브리드라고 당당히 말하는 한비야씨나 이해인 수녀님처럼 그저 타 종교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정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병원에 입원 하기전까지 종교는 스무살 이후부터 내게 늘 고민거리였다. 산사에 절에 가 앉아 목어소리를 듣고 있으면 편안해지기도 하고 자연의 품에 담긴 그 자태에 넋이 나가 절로 수양이 된다고 믿었던 때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아하게도 절밥은 단 한번도 먹어보질 못했다. 그래서였을까. 내 인생의 절밥 한 그릇이 어떤 의미가 되는지 가깝게는 언니에게 그리고 책, 내 인생의 절밥 한 그릇을 통해 간접적인 경험을 하고 싶어졌다.



1996년부터 불교잡지에 연재되던 글들을 엮어서 그런지 어설피 중복되는 듯한 내용이 많이 보인다. 중복이란 말은 저자들의 이야기들을 따로 저술한 책에서 이전에 보았던 적이 있었다는 의미다. 그렇다고 새롭지 않다거나 고개가 끄덕여지는 일화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와 닿았던 글은 밥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채움의 욕구이기에 비움을 강조하는 절과 상반되는 의미일수도 있는데 오히려 채움으로써 비움의 공을 쌓을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기 때문에 비우기 위해 필요한 채움이지만 조금 부끄러운 곳이라는 의견이었다. 비움을 위한 채움. 일상에서 절밥이 아닌 매끼 식사때 우리는 채움을 위한 채움으로써 밥을 먹는다. 그렇기 때문에 밥먹는게, 푸짐하게 한상 차려놓고 찬을 남기는 것이 전혀 부끄러운일이 아니게 밥을 먹는다. 그것은 죄스러운 것이 아니라 당연한 것이라는 의미가 날적부터 박혀있었기 때문이다.



절밥 한 그릇에 깨달음의 편린이라도 주어담은 사람들이 이토록 많다는 것을 몰랐다. 대부분이 문인들이라 그런지 글솜씨도 수준급이라 읽는 내내 절에 가서 밥 한 그릇이 아니라 공양 한 번 받잡고 와야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내 이것도 욕심인 것 같아 마음을 접었다. 서점에 가면 절밥이라고 해서 요리책에 가까운 책들이 많아 뜻이 아닌 외형만 알리는 듯도 싶고 깨달음이 아니라 건강만을 강조한 책들이 많은 것이 아쉬웠는데 간만에 진짜 '절밥'을 만난 것 같아 반가움이 든다. 그 때가 언제인지는 몰라도 진정한 내면의 비움을 원할 때 혹은 그럴만한 공덕이 쌓였을 때 그때는 누구 손에 이끌려 가거나 그저 편안함을 쫓는게 아닌 밥먹으러 절에 다녀와야겠다.




p.35
그것은 우리를 황홀하게 만든 햇살이며 바람 그리고 겹겹이 펼쳐진 오대산의 능선들은 아니었다. 부처님의 말씀을 따르려는 어느 노수행자의 마음이었다. 나는 그것을 먹은 것이다. 그 때문인가. 어느덧 3년 반이나 지났음에도 나는 마음의 배가 고프지 않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