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왕 지만지 고전선집 646
장시궈 지음, 고혜림 옮김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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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가장 착한소설, 장기왕





소설 장기왕은 중국의 손꼽히는 작가 중의 한사람인 장시궈의 대표작이라고 불리지만 내게 있어서는 지금껏 내가 만나본 가장 착한 소설이라고 말하고 싶다. 잔인한 장면도, 성적으로 야한 농담이나 외설적인 표현도, 불륜을 포함 그 어떤 세상의 잣대를 들이댄다해도 도무지 걸릴게 없는 내용을 담았으면서도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 갖게되는 많은 의문과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생겨나는 희노애락을 제대로 담아냈기 때문이다. 뿐만아니라 이와 같은 내용은 기구한 삶을 살아가는 한 인간을 통해서라던가 인간승리를 보여주는 계산된 주인공이 아니라 뜻밖에도 12~13세 가량의 오목신동-작품내에서 줄곧 신동으로 불리운다.-과 아이를 바라보는 칭랑을 통해 깨닫게 했다는 점이 장시궈라는 작가의 놀라운 필력을 증명한다.

신동의세계라는 TV프로그램에 출연예정인 오목신동과 꿈은 화가지만 현실에 부딪혀 광고회사일을 하는 칭랑과의 만남을 칭랑의 시선통해 이야기는 시작된다. 알고지내는 PD에게 별기대없이 신동에 관한 이야기를 꺼낸것이 실제 프로그램화가 되면서 자연스레 새로운 출연자인 오목신동의 이야기를 나누게 된 것이 PD를 비롯하여 다른 관계자들이 눈치채지 못한 신동의 예지력을 칭랑형제가 제일 먼저 알게되면서 사건이 시작된다. 처음에는 예지력을 지닌 신동의 '비밀'과 함께 신동의 안위를 지키려던 것이 점차 칭랑의 욕심과 입방정으로 주변인들이 하나씩 알게되면서 문제가 커지게 된다. 그 문제란 것은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신동의 예지력을 돈버는 수단으로 사용하거나 자신의 학구적 욕망을 위해 이용하려는 칭랑과 주변인들의 태도다. 흥미로운 것은 칭랑의 심경변화에 있다고 생각한다. 줄거리는 단순하지만 신동을 대하는 칭랑의 마음가짐이 처음에는 단순하게 신비로운 아이를 만난 것에 대해 동생과 자신만의 비밀스런 호기심이었지만 일순간 탐욕의 대상이 되기도 하다가 또 마지막에는 마치 자신도 역시 그 아이를 진심으로 걱정한것은 아니라고 고백하는 듯 하면서도 결국 각자 자기의 일에 최선을 다하면 그만이라는 식으로 마무리 한다. 처음에는 그런 그의 태도와 결단이 현재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적용되는 단순하지만 뼈있는 결론이라는데 동의했다. 그것은 류교수가 칭랑과의 언쟁에서 거듭주장하는 것처럼 사람뿐 아니라 사람에게 주어지는 자유조차 돈에 의해 결정된다는 이론에 반하는 것으로 상대적으로 류교수와 적의 관계에 놓여있는 칭랑의 면모가 훨씬 '착한 사람'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끝으로 갈수록 허풍이 강한 류교수의 진정성이 단순히 돈이나 사람을 부리는 위치에 대한 자랑에 머물지 않고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 피할수 없는 것이 바로 '관계'라는 것이며 저마다 그것을 적극적으로 하든 소극적으로하든 각기 존중되어야 한다고 밝힘으로써 역으로 칭랑의 고민도 해결도 나 홀로하자라는 식의 결론이 맘에 들지 않았다. 물론 결과적으로보면 관계는 반드시 존재하게 된다는 류교수의 말과 세상의 그 누구도 타인의 걱정은 둘째치고 자신의 걱정도 지나칠필요없이 최선을 다해 살아가면 된다는 말은 다 맞다고 느끼며 누구나 저마다의 철학안에서 다들 제대로 살아가고 있구나를 깨닫게 되었다. 내가 그토록 고민했으며 지금도 고민하던 문제가 결국은 너도 나도 다 하게 되는 것이기에 오히려 더 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에 안도감까지 느끼게 되었다면 말장난이라고 느낄지도 모르겠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문제에 직면했을 때 해결할 수 있을지말지에 대한 두려움은 스스로가 만들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작품을 읽기전에는 장시궈가 대만SF소설의 창시자로 보아도 될 것이며 과학을 인문학으로 풀어낸 수작이라는 말에 더 기대가 되었는데 막상 다 읽고보니 전혀 불필요한 부분이라고 느끼지는 않지만 굳이 창링 동생의 철학이론의 등장이 장시궈의 필력을 대단하게 만드는 요소는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간혹 등장하는 이공계 학문의 이론이나 비유는 다소 작가로 하여금 류교수에서 느꼈던 약간의 허풍이 보여졌다. 어짜피 작가 장시궈도 대만의 지식인이자 가진자 쪽에 가까우니 이런 느낌이 크게 틀리지는 않았다고 본다. 하지만 칭랑이 신동에게 예지력이 아직도 남아있느냐는 마지막 질문은 대답과 관계없이 독자 누구라도 꼭 물어보고 싶었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지난 해 다녀왔던 타이페이의 풍경이 어설프게나마 그려지면서 칭랑이 배고파 뛰어가 먹었던 간식천국의 녹두죽과 만두가 심히 먹고 싶어지는 친근한 소설이자 착한소설이라고 말하고 싶다. 타이페이의 녹두죽(위위안)이란 표현은 다소 아쉽기도 했지만 역자 고혜림씨의 간결한 문체 또한 이 소설이 착한소설이 되는 것에 한 몫했다고 본다.







 
p.178  호랑이가 어디 있는가?

         사람이 스스로 두려워해서 산을 오르지도 못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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