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철학 이야기 100 - 깨달음과 해탈의 철학
왕혜천 외 지음, 송춘남.송종서 옮김 / 서책 / 2011년 7월
절판


이전에 출간된 유교철학과 선철학에 이어 불교철학 이야기까지 읽게 되었다. 이전 시리즈와 비교했을 때 책의 내용구성이나 난이도는 크게 어렵지 않았다. 허나 철학서라서 쉽게 쉽게 쓴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한참을 생각하고 이해하느라고 마냥 쉽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옛 이야기를 듣는 듯한 포근함 또한 변함없어 찬찬히 느린 호흡으로 며칠에 걸쳐 읽었다. 비록 종교는 다르지만 반감이라던가 선입견 그리고 편견없이 이야기를 듣고자 하니 더위도 괴로움도 무상에 대한 끊임없던 갈급함도 적어도 책을 읽고 있던 그 순간만큼은 덜어낼 수 있어서 좋았다.

익히 알고 있었던 이야기와 교리도 있었으나 이번 기회를 통해 새로이 알게 되거나 오해하고 있었던 것에 대해 바로 잡을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나이를 먹다보니 이래저래 괴로움이 많아졌다. 그것이 끝없는 욕망과 탐욕, 그리고 우매한 어리석음이란 것을 알면서도 쉬이 놓아지지가 않았다. 심리에 관한 서적도 자기계발서도 그때 뿐이라 결국 늘 나의 용서를 기도하며 매일 밤 잠드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그나마의 참선이었다. 종교가 다르다고는 해도 놓아야 할 것, 내려놓을 것, 비워야 할 것은 다 같은 의미였다. 지금 내게 닥친 시련이 너무도 커서 당장 삶을 놓으려 할 때도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죄를 짓는다하여 구원받지 못한다고 말한다. 불교에서는 이를 한낱 미물의 命도 귀하니 인간의 생명은 아니 귀할 것이냐고 묻는 듯하다. 결국 스스로 목숨을 내어 놓는 다는 것은 절개와 정조를 지켜가는 것일 수도 있으나 지금 시대의 우리에게는 비움과 내려놓음이 아닌 포기하고 놓아버리는 것이 된다는 것도 깨달았다. 읽으면서 성경구절 말씀과 자연스레 비교하게 되었는데 그 어느 쪽이 더 우위에 있다고 판단하거나 그렇게 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물론 선한 의미는 같으나 다소 그것을 가르키는 손의 방향이나 매개체가 사뭇 다름을 느끼는 부분도 많았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종교의 시선이 아닌 이론과 바른 말을 접하는 마음가짐으로 대하니 서로 다른 종교에 대한 차이가 아니라 다름을 자연스레 인정할 수 있게 되었다. 100가지의 이야기 중에 지금의 내게 꼭 필요한 말씀은 해인해기(害人害己)남을 해치고 자신도 해치다 였다. 마음속에 심어진 나쁜 기운은 그것을 현실화시킨다. 화제가 되었던 시크릿을 비롯하여 근래에 출간된 마음치유 도서들에서도 공통된 의견이 바로 해인해기 였다. 코가 아름답지 못한 부인을 위해 타인의 코를 베어내 붙여주려 했던 어리석은 남자는 결국 부인의 코도 베었지만 그자리에 붙일 수는 없었다. 그는 자신의 부인에게도 코를 베어낸 그 여인뿐 아니라 스스로에게도 해를 가하게 되었다는 내용인데 때때로 나의 경우가 그렇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가진 좋은 것과 은혜받은 것은 제쳐두고 타인의 더 좋은 것을 탐내는 내 모습이 엿보여 뜨금했던 것이다. 비단 나 뿐이 아니라 그로인해 내 지인들까지 해를 입게 된다는 것을 몰랐던 것은 아니다 글로 보니 한 번 더 되새기게 되었다.


기도를 하고 관련 서적을 읽고 좋은 말씀을 책을 통해 반복해서 접해도 인간이 갖고 태어난 업 혹은 죄를 닦아내고 용서받는 동안에도 우리는 또 다른 죄와 업을 쌓아가게 된다. 이전에 읽었던 유교철학이 학교 선생님이고, 선철학이 인생을 오래 사신 어르신들의 충고라면 불교철학은 성경말씀과 표현이 상이한 결국 비슷한 인간이 살아가는 삶의 지표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내가 믿고 있는 종교에 대해서도 그리고 불교에 대해서도 이제 막 하나하나 알아가는 과정이라 더 많은 것을 느꼈어도 제대로 표현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지금의 내마음을 어지럽히고 내 시야를 멀게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그것을 사라지게 해야 하는 방법 또한 내안에 있음을 깨닫게 해주는 좋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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