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일 브러시, 오래된 사진
와루 글 그림 / 걸리버 / 2011년 7월
품절


고백하자면 책의 내용을 거의 알고 있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러면서도 이 책을 꼭 읽어야지 하고 맘 먹은 것은 클래식 피아노위에 올라앉은 말갛게 웃는 아이의 모습이 오래도록 남을 것 같았다. 마치 이렇게 얘기하면서. "너... 말이야. 그러니까 너... 있잖아. 내 책 안읽으면...죽어-_-+"하고.
이야기는 와루의 유년시절 부터 근래에 찍은 서른 여덟장의 사진과 관련된 이야기와 작가가 평소에 생각했거나 독자로 하여금 생각케 하는 여덟개의 이야기, 그리고 앞서 그 어떤 이야기에도 흔들리지 않았던 이들을 울렸을 번외편 장발과 저자의 마지막 이야기로 구성되어있다.

여덟개의 사진이 탄생하게 된 배경은 작가와 비슷한 시기를 살아와서인지 공감되는 것도 있고 성별의 차이로 잘 알 수 없었던 남자들 만의 세(?)계의 이야기도 엿볼 수 있어 재밌었다. 그래서 책에 담긴 이야기 중 기억에 남는 느낌별 베스트5로 정리했다. 우선 나를 가장 웃겼던 베스트 사진은 스무번째 사진 취미 였다. xx토가 되려는 후배의 전조현상을 전혀 의심없이 지켜보다가 사진 한장에 넉다운 된 와루를 보면서 읽다 말고 책을 덮고 배잡고 웃었다. 어찌보면 막 웃긴 이야기는 아닌데 메일을 클릭하려는 장면에서 어찌나 긴장했던지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후배한테 같이 당한듯한 배신감과 리얼하게 xx토가 되어버린 사진에 진짜 사진을 보는 것 같은 기시감이 느껴졌다고나 할까. 반대로 나를 가장 슬프게 했던 사진은 서른번째 사진 강아지 였다. 예전에도 이와 비슷한 주제를 다룬 만화가 있었는데 그때는 매를 맞고 사는 엄마와 강아지의 처지를 비교하는 내용이었다. 그때 결국 그 개는 복날 죽는 것으로 끝나고 그나마 엄마는 지아비를 뿌리치고 새출발을 하는 것으로 끝나 불행 중 이었다. 반면 와루의 사진 속 강아지는 다시 돌아오는 것에서만 끝나서 더 맘이 아팠다. 바보 이야기도 현실에 짓눌려 기타를 몰래 쳐야 했던 와루의 아버지의 뒷모습도 마음이 애려왔다.

가장 통쾌하다고 느꼈던 사진은 덩치 였다. 성인이 되어 화장실에서 만난 그 나쁜 동창에게 썩소를 날려주는 와루씨의 표정은 배워야겠다 싶을 정도였다. 물론 나의 경우는 어릴 적이 훨씬 덜 무시당하는 외모를 가졌었기에 그 썩소를 배워도 써먹을 기회가 거의 없겠지만 무언가 의기소침해지거나 불합리한 현장에서 살아남았을 경우를 대비해서 꼭 기억해두고 싶었다. 네번째로 많은 생각과 지난 날을 돌이켜 보게 만든 그야말로 추억의 사진은 열한번 째 겁쟁이 였다. 마지막으로 나를 울컥하게 만든 사진은 스물여덟번째 사진 할머니 였다. 예전에 집이 경기도일 때 직장을 서울로 다니며 출퇴근 시간이 왕복 3시간이 넘는 곳으로 다녀야 할 때 이따금 서울 중심가에 있는 외할머니 댁에 들려 맛난 법을 얻어먹고 으쌰으쌰 기운 냈던 적이 있었다. 불과 10년도 지나지 않았는데 이제는 그럴 수 없다. 그사이 큰 수술과 잦은 입퇴원으로 할머니는 이제 혼자 드실 수 있는 밥상조차 차릴 기운이 남아있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그때 할머니가 차려주신 그밥상, 그저 자주 들러 먹어주기만 해도 오히려 고맙다고 하셨던 그 밥상을 난 열손가락에 꼽힐 정도 밖에 먹질 못했었다. 나름의 베스트5 사진을 고르긴 했지만 오래된 사진에 담긴 사연들에 맘이 가지 않은 사진은 단 한편도 없었다. 노력끝에 잡은 참새를 놓아주던 와루의 모습도 길치였던 와루의 모습도 자주 가던 할머니 밥집을 더는 갈 수 없게 되는 와루의 모습에도 내가 보였다. 반면 번외편을 제외한 나머지 이야기들은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이야기를 하려다가 멈춘 듯한 것이 여운이 아니라 내게는 다소 답답함으로 느껴졌다. 아직 삶의 단면만 보고 사는 것인지 반드시 명쾌하게 인과관계를 밝혀주어야만 이해가 가능한 아둔함이 가득찬 까닭인지는 알 수 없지만 역시 만화는 그림으로 이해할 수 있는게 좋았다. 

이 여름 어디론가 떠나고픈 마음에 휴가가 있는 사람들도 없는 사람들도 몸이 꿈틀거린다. 그럴 때 와루처럼 오래된 사진첩을 펼쳐놓고 사진 한장 한장을 들여다보며 나만의 추억에세이를 적어보면 어떨까. 글재주는 없어도 내 마음을 기억해내고 그들을 추억하는 데 본인만큼 제대로 실력발휘를 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으니 맘편하게 그리고 솔직하게! 참, 왜 와루작가의 머리가 여인이라 착각될 만큼 계속 기르기만 하는 지가 궁금하다면 꼭 읽어보길 바란다. 책 한권에서 느낀 감동과 울먹임도 놀랍지만 장발의 이유가 더 와루라는 작가로 하여금 친근하고 손내밀고 싶어졌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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