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서기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희정 옮김 / 지혜정원 / 2011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을 읽다보면 너무 몰입한 나머지 내가 화자인지 독자인지 구분조차 가지 않을 지경에 이를 때가 있다. 그런 책을 만나게 될 경우 가장 위험한 것은 한동안 그 소설에 빠져서 허우적대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맘에 드는 결말이 아닐 때 문제가 심각해진다. 나였다면 그렇게 하진 않았을텐데라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기 때문이다. 책, 홀로서기는 하필이면 딱 그런책이다.

 

서른 여덟살의 올가는 어느 날 저녁 남편에게 이별통보를 받는다. 너무나 일방적이며 마지막 까지 자신이 모든 책임을 가지고 있다는 듯 비겁하게 그녀를 남겨두고 떠나버린다. 일주일 정도 아이를 보러 들리지만 굴욕적인 상황에 더이상 참을 수 없었던 올가를 남편 마리오는 아에 연락도 끊어버린다. 그 사이 올가는 차츰 망가져간다. 아이들 돌보는 것도 귀찮고 마리오가 아이들을 위해 선물했지만 결국 자신의 로망을 위해 데려온 늑대개 오토또한 그녀에게는 버겁다. 자신의 감정을 추스리는 것도 벅찬 그녀에게 그녀나이 8살 때 남편의 배신으로 자살한 이웃집 여인이 자꾸 나타난다. 그녀의 모습을 통해 반추되는 것일 수도 있고 실제 그녀의 눈에 보이는 것일지도 모르는 그녀를 바라보며 올가는 다짐한다. 자신은 절대 그녀처럼 자살하지 않겠다고. 당당하게 지금의 슬픔을 이겨내겠다고. 하지만 실연하는 모든 여성들이 그러하듯 당당해졌다가 일탈을 시도했다가도 또다시 좌절하고 눈물흘리고 폭력적으로 변하게 되며 급기야 주변에서 그녀를 도와주려는 모든 이들이 그녀에게는 적으로 느껴진다. 그렇게 힘겨워 하는 올가의 모습을 작가는 마치 자신이 멀지 않은 과거에 직접 겪었던 일인냥 세세하게 서술해간다. 때문에 읽으면서 올가와 함께 나는 분노에 휩싸였다. 올가가 마리오와 스무살짜리의 그의 새연인과 함께 있는 장면을 목격했을 때 그녀에게 손을 대지 못한 사실에 올가보다 더 억울하고 속상해졌다. 나였다면 마리오를 좀 더 박살낸 후에 난 반드시 그녀의 귀에서 마리오 할머니가 물려진 귀걸이를 빼앗았을 것이다. 그녀의 귀가 찢어지도록 피가 나든 말든 그건 내 알바가 아니다. 아마 올가의 마음에서는 그 이상의 피눈물이 흐르고 있었을테니까. 읽다보니 올가의 비이성적이고 상스러운 말들이 자연스럽게 나도 나올 것 만 같았다. 그리고 반복되어 생각하는 상상은 내가 올가였다면, 내가 그녀였다면 이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일이 점점 비극적으로 치닫는다. 처음에는 올가에 눈치를 살피던 그녀의 아이들이 차츰 마리오와 함께 있는 시간들이 늘어나면서부터 자신의 엄마를 비난하고 심지어 올가를 그지경으로 내몰았던 그녀와 비교까지 하며 무시하기 시작했다. 소설이라고는 해도 현실에서도 그런 경우는 많다. 아이들은 아직 성숙한 이성을 갖지 못했고 심지어 그들에게는 죄도 없다. 부부의 문제로 인해 이리저리 오가는 것도 스트레스인데다가 어찌되었든 아이들은 제 엄마의 불행보다는 자신들 앞에 놓인 불행에 당연히 민감해질 수 밖에 없다.

 

책의 내용은 막바지에 이르러 점차 자신의 일을 찾고 이웃집 남자와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려는 올가의 모습을 보여주며 끝이나지만 정작 독자인 나는 여전히 올가의 억울함과 제대로 하지 못한 복수에 열을 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렇게 이야기가 끝나서는 안되었다. 유치하고 통속적이긴 해도 좀 더 통쾌하게 마리오와 그녀에게 복수해야 한다. 물론 마리오의 체형이 점차 다시 이전의 마리오의 모습으로 되돌아오고 아이들 양육문제로 새롭게 시작된 관계가 흔들리고 있음을 고백한다고 해도 그정도로 끝나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서명이 홀로서기이긴 해도 무언가 그녀가 내뱉었던 그 잔인하고 적나라한 복수는 다 어디로 간것일까. 무언가 아쉬운 결말에 기운이 빠졌다. 오토의 죽음을 둘러싸고 그 많은 페이지를 할애했으면서 정작 올가가 홀로서기에 이르는 과정은 지나치게 짧고 간결한 것이 이책의 가장 큰 아쉬움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