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린 - 어느 기지촌 소녀의 사랑이야기
이재익 지음 / 황소북스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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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0년이 지났다. 대학 재학시절 사회문제론 강의시간에 소설 아이린의 소재가 되었던 윤금이씨 사건을 접한 후 나는 발표주제로 삼았었다. 같은 사건을 두고 학생이었던 내가 할 수 있는건 해당 강의시간에 앉아있던 80여명의 학부생들을 상대로 그저 '현실 바로 알기'정도에서 그쳐야 했고 작가 이재익은 전 국민들을 상대로 문학적 장치를 이용해서 덜 잔인하게 그렇지만 더 오래 뇌리에 남을 수 있도록 재구성 한 것이다. 어느 쪽이 더 효과적인지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 난 발표이후 아에 그 사건을 덮어두려고 애썼기 때문이다. 너무 괴로웠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약한 당시에 내 모습에 자괴감만 들었기 때문이다. 당시에 내가 저자처럼 소설로 써볼 생각을 했었더라면, 문학적 재능여부를 떠나서 그럴려고 노력만 했었더라면 현재까지도 일어나고 있는 불합리한 수많은 사건의 판결들을 조금 바꿔놓을 수 있었을까? 문제는 사건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과 피해자 대다수가 소수자란 이유로 제대로 보상은 커녕 가해자들에게 제대로 된 형을 내릴 수 없다는 것에 있다고 본다. 이런 시선으로 이 책을 읽게 될 것이 두려워 읽기 전에 많이 고심했었다. 읽을까? 말까? 내 선택은 보시다시피 전자였다.

 

이야기의 시작은 윤금이씨의 사건을 가상으로 재현한 듯한 장면에서 그녀를 사모해왔던 소년의 독백이다. 나중에 이 소년이 자라 어느 누가 되었는지는 아직 읽지 않은 독자들을 위해 밝힐 수가 없다. 파주 미소속 부대 캠프 험프리스에 카투사 신병들이 들어온다. 배경이 된 캠프 험프리스는 저자가 실제 카투사로 복무했던 곳이라니 세월이 흘렀어도 큰 변화가 없는 특정장소라는 점을 미루어 거의 흡사하게 그려냈다는 현실감을 느낄 수 있다. 양공주였던 엄마와 그런 엄마를 비난하면서도 닮아가는 누나, 그로인해 무조건 적인 성공만이 살길이라고 믿는 정태, 그와 동기란 것만 빼고는 자라온 환경이나 성격이 밝은 민성 그리고 그둘보다 먼저 입대한 승훈 등의 세사람의 카투사와 승훈의 절친 코트니, 이들의 상관 제니 마지막으로 정태를 비롯 한국이란 나라 자체를 혐오하는 마르끼즈 등이 이야기의 중심축을 이룬다. 물론 소설의 타이틀이자 정태와 함께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혜주-아이린이 주요인물이다. 줄거리를 대략 적으로 소개하자면 카투사와 미군들 사이에 일어나는 작은 마찰, 한국인이 아닌 미국을 비롯 해외의 보통 시민들의 시각으로 바라봤을 때의 언제 전쟁이 발발할지 모르는 종전이 아닌 휴전 국가인 한국의 모습, 그리고 나라를 위한 지키기 위해 주둔해 있는 미군의 본 모습과 그들 안에 끊임없이 생존하는 무법천지의 모습이 반복해서 등장한다. 핵심 이야기는 혜주를 그녀의 기둥서방인 로드리게즈로 부터 지키려는 정태의 모습이 그려진다. 한국의 절제되지 않는 그저 영어를 배울 수 있다는 이유로 쉽게 몸을 허락하는 일부의 좋지 않은 클러버들과 그들의 문화, 어리고 부족했기에 저질렀던 젊은 시절의 악몽으로 인한 트라우마 까지 이야기는 단순하면서도 인간이 갖게 되는 감정의 여러갈래를 다루고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초반에 중심이 되었던 사건이라던가 양공주들의 애환보다 오히려 정태와 혜주사이에 일어날 암울한 미래에 더 마음이 쓰였다. 이상했다. 나란 인간이 지금껏 책을 보아오면서 지나치게 사건을 확대시키거나 옆길로 빠져나가 허우적거리던 때와는 달리 오히려 소설의 등장인물들의 사건에 왜그리 목메이고 있는지를 몰랐다. 그러면서도 늘 하던 습관, 뒷페이지부터 보기도 하지 않았다. 알고 싶지 않았다. 미리 알고 볼 수가 없었다. 그들의 미래가 어떤지 보고나면 그 이후로 이 책을 더는 읽을 수 없을 것 같아 그냥 그대로 불안해하며 조바심 치며 읽어만 갔다. 아주 다행스럽게도 결말은 내가 원하는 딱 그 정도의 선을 지켜주었다. 작가에게 이런 이유로 감사해하는 것도 처음이었다. 내게 별스런 독서행위를 하게 하고 또 그만큼 유난스러울 정도로 감정적이게 만든 소설 아이린은 때문에 쉽게 추천할 수 있는 책은 분명 아니다. 하지만 추천할 수 없는 것과 읽기를 원하지 않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아이린을 읽으면서 영화 '이태원 살인사건'이 계속 떠올랐다. 그 영화는 영화자체에 대한 비평보다는 일단 많은 사람들이 봐주기를 바랬던 내용이었다. 픽션이라고 감독이 말해도 분명 그것은 논핀셕이었다. 아이린도 마찬가지다. 차라리 100%픽션이길 바라지만 논픽션에 가까운 이책을 많은 이들이 꼭 읽어봐주길, 그런 내 바람이 이 리뷰에 실려져 있길 내가 바라는건 이마음 하나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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