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사의 회전 세계문학의 숲 6
헨리 제임스 지음, 정상준 옮김 / 시공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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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시각에 따라 전혀 다른 상반된 결말의 작품은 작가의 위대함도 느껴지지만 애매모호한 결말이라는 삐딱한 시선으로 견주자면 혹평을 벗어날 수 없는 작품이 되기도 한다. 나사의 회전은 그렇다면 전자와 후자중에 어느쪽에 속하는 작품인것인가. 일단 헨리제임스라는 네임벨류만 놓고 보자면 세상에 처음 공개되었을 당시야 비평가의 혹평을 받았다해도 현재의 시점으로 보면 그는 위대한 작가중에 한 사람이다. 그렇기에 논란의 여지가 많은 작품을 꽤나 싫어하는 나 같은 사람도 읽고 싶게 만들었다. 고딕양식의 성이 등장하고 이 모든것을 소유한 매력적인 남성이 등장하고 어슴프레 호러의 기운이 물씬 감도는 까닭에 읽기 전부터 포우어셔가의 몰락, 메리 W. 셸리프랑켄슈타인 그리고 복잡하고 난해하며 음울한 호러를 유쾌하게 비틀어 독자로 하여금 후속작을 기대하게 만들었던 최제훈퀴르발 남작의 성까지 차례대로 떠올려졌다.

우선 작가가 의도했던 대로 독자가 생각할 수 있는 아주 고약하고 무서운 상상의 결말을 나름의 방식으로 토해내자면 가정교사가 보았던 유령이 환상이었든 어떻든 유령이 존재했다고 생각한다. 그녀가 비평가의 말처럼 성적으로 고착되었거나 결함이 있었다고는 해도 존재하지 않는 실체를 존재한다고 강력하게 믿고 그것을 타인에게 압력을 가할 정도라면 존재했다고 보는편이 맞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여기서 과연 두 남매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가 중요한 것이다. 왜냐면 화자가 환영으로 보았다고 해서 유령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볼 수 도 없는것 아닌가. 그녀 눈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남매눈에는 보였을 수도 있기에 남매의 거짓유무에 난 더 관심을 기울일 수 밖에 없다. 화자와 그 남매의 첫만남을 보면 그것은 단순히 스승과 제자와의 만남으로 보기도 어렵고 고용주와 고용인의 관계로 보기도 어렵다. 성에서 유일하게 남매와 대등한 위치에 있던 그녀라도 어쨌든 그녀역시 고용인에 지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연인을 만난 것처럼 자유롭게 첫 인상에 대해 서술한다. 환영을 작정하고 만들어 낼 수는 있어도 자신도 속을 정도의 환영에 사로잡힐 정도로 나약한 존재는 분명 아닌것이다. 뿐만아니라 나중에 더글라스가 가정교사에 대한 애정을 애틋하게 묘사하는 부분에 있어서도 과거의 '잘못'을 어느정도 시인하는 부분이라는 분석에 힘이 실어진다. 설혹 남매가 유령을 정말 보지못했더라도 그녀가 그들에게 쏟은 애정과 눈길, 평화를 쉽게 깨고 싶지 않은 아이들이 갖는 순수함을 떠올린다면 없던 존재라도 동조해주었어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미안함의 반증이라고도 생각이 된다.

물론 작가의 의도가 '사고하는 독자'를 위한 작품이었기에 저자의 의도를 백분 살려주기 위함이라면 어떤 것이 맞는 결론인지 우리는 다툴필요가 없다. 유령의 존재여부 역시 각자의 의견을 나누는 것에 그쳐야지 논란이 될 까닭도 없는 것이다. 그저 저자가 한껏 여유를 부리며-작가의 말의 뉘앙스가 나의 기준에서는 분명 여유로웠다-결말을 독자에게 던진 것 처럼 21세기에 그닥 소름돋지도 않는 유령이야기에 열을 내는게 쉽지 않다. 오히려 유령의 등장보다 그녀가 묘사하는 사람들과의 첫 대면에 대한 소감이나 스스로의 대한 자화자찬등에 소름이 돋았다. 재미난 구성에 열린 결말, 그것도 각각의 주장을 뒷받침 하는 근거가 타당한 완벽한 명작임에는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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