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흔 개의 봄 - 역사학자 김기협의 시병일기
김기협 지음 / 서해문집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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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의 시병일기는 어떻게 다를까. 병중에 계신분도 국어학자고, 그 자식도 학자이니 일반 사람들과는 달리 고통도 감내하고 오가는 위로의 말도 시적일까 싶은 호기심이 들었다면 거짓말이고 몇해전 엄마를 간병하던게 떠올라 좀 더 담담하게 무엇보다 많이 배운 학자라기 보다는 모친과의 갈등을 병간호를 통해 풀어냈다고 해서 더 궁금해졌다. 나이들수록 엃힌 타래를 풀기는 철없을 적보다 수천배 어려운 것을 알기 때문이다.

아흔 개의 봄은 김기협의 모친, 국어학자 이남덕님의 연세를 뜻한다. 그분이 맞이하신 봄이 아흔번이나 되는 것이다. 때문에 그분을 통속적인 시선으로만 평가할 수가 없다. 저자인 아들이 젊은 시절 그분의 연애관과 결혼관이 이해되지 못해 그분을 미워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시선'의 중요성을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아내가 있는 남성과의 연애는 속된말로 불륜이다. 도덕적으로나 한때는 법적으로도 위법인것이다. 학자인 저자에게는 아마 보통인 우리네보다 더 엄마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이중적이다 란 표현이 그시절 그에게는 그 어떤 표현보다 적절했고 그만큼 엄마인 이남덕님에게는 상처가 되었을거다. 세상의 불편한 시선을 감내하고 결혼했지만 피난시절 사랑하던 남편을 떠나보낸 이남덕님은 이후 세아들과 딸아이를 기르기 위해 자신의 본성을 깊은 곳으로 숨겨두게 된다. 뿐만아니라 남편을 닮고, 자신을 닮은 첫째와 둘째를 더 어여삐여기는 것 같아 남은 딸과 아들은 더더욱 엄마품이 그립고 그 그리움이 미움이 된것이다. 지금에 와서야 그 아들의 존재를 애뜻하게 여기고 당신의 입에서 셋째가 없었으면 어쨌을까 싶다는 말을 얻어내기 까지 저자 김기협의 간병은 그토록 진정성을 가진거라고 본다.

시병일기이면서 동시에 아흔 개의 봄은 부모 혹은 가족간의 갈등을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형에게 적은 메일내용, 또 그 형이 동생에게 감춤없이 털어놓은 속내가 책에 그대로 드러난다. 애초에 이 글들이 책을 펴내기 위함이 아닌 자신과 지인들, 그리고 어머니의 이야기를 남기고자 하는 순수한 목적성을 갖춘 블로그에 올려졌기 때문이었을것이다. 뒷장에 추천사에도 적힌것처럼 내어머니의 고고한 모습을 담지않은 것도 이색적이다. 타인의 불편한 시선아래 살아오신 그러면서도 학자로서 끊임없이 존경을 받는 이중적인 모습은 아에 없이 그저 아들의 방문을 기다리고 종교에 귀의하여 '아이'가 되어버린 노모의 모습은 잠자코 떠올려보니 늘 곁에 계셔주는 우리 부모님들의 모습이었다.

한 권의 책이 당장의 부모와의 갈등을 풀어주고 힘겨운 병간호의 날들이 일 순간 가벼워지는데 도움을 주진 못할 것이다. 다만 생각을 달리 해볼 수도 있고 그 옛날 나의 부모가 그러했듯 밥한 숟가락을 떠먹여드리는 일조차 내가 먼저가 아닌 우리의 부모가 내게 먼저 해주었던 사실들을 떠올릴 수 있는 그로인해 몸은 몰라도 마음만큼은 다소 가벼워지게 만들어 주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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